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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공산당이 된 호지명(호치민), 그러나 애국심이 더 강했던 호지명 역사 문제

빨갱이 공산당이 된 호지명(호치민),

그러나 애국심이 더 강했던 호지명


소위 상류층 집안에서 태었다는 호지명.....그는 왜 빨갱이 공산당이 된 것일까???

당시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베트남은 원래 프랑스 식민지였다.
그래서 베트남 민중들도 당시 조선민중들처럼 온갖 착취와 억압을 당했었다고 한다.

바로 그런 시대적 배경이....그를 당시 "독립투쟁"에 더 유리해보이던 "빨갱이 공산당"에
마음이 기울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생각된다.

세계를 둘러보아도......식민지배국에 맞서 독립투쟁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이상하게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많다.

그것은......한반도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독립투사"들 중에는 정통 보수 우익 계열인 백범 김구 선생 계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좌파 빨갱이" 계열의 독립투사들도 많았던 것이다.

바로 그 "좌파 빨갱이" 독립투사들을 때려잡기 위한 조직이 "간도특설대"라고 하는 것이었다던가....

어쨋든, 베트남은......한국과 아주 유사한 면들이 참 많다고 느껴지는데....
우선, 티브이 화면 등에 비치는 베트남 거리들을 보면 눈에 많이 띄는 것이 "한자"들이다.
오늘날의 베트남인들이 여전히 "한자"를 많이 활용하거나, 잘쓰고 읽을 수 있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그러나 베트남인들의 이름은 사실 원래 "한자"로 되어있던 것을 베트남말로 읽은 것이 아닐까....생각된다.

그런데.....아래 소개하는 호지명 다큐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베트남인들도 원래 "유교"를 중시했던 듯 싶다.
그래서 조선시대처럼 베트남인들도 그렇게 "유학"을 배웠던 듯 싶다.

어쨋든....

식민지배국 프랑스에 기생하며 동족을 팔아처먹었던 매국노들이 장악했던 월남(=남베트남)엔
 프랑스가 물러가고 미군이 대신 새로운 주인으로 강점, 주둔하였는데
바로 그 미군을 쫒아내고 완전한 통일을 이루고자
북베트남(=월맹)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빨갱이 공산당 호지명 세력이 벌인 전쟁이 바로
우리가 아는 "베트남 전쟁"이란 것이다.

놀랍게도....
위와 같은 역사적 상황은.....한반도 상황과
너무나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베트남의 상황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빨갱이 공산당 호지명 세력이 통일한 오늘날의 베트남에서는....
과연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원칙이 얼마나 적용되고 있는지.....
나로서는 그것이 많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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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란..!^ㅎ^

(서프라이즈 / 증토방자객 / 2009-10-21 22:46)

먼저 알고있는 자는 모르는 자를 가르쳐야 한다!

혁명을 하고도 민중이 여전히 가난하다면 그것은 진정한 혁명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치있는 것은 진정한 "독립"과 "자유"이며 민중을 향한 "박애정신"이다.

베트남의 독립영웅 호치민...프랑스로 부터 식민통치종결과 그리고 미국을 유일하게 패퇴시킨..


 



 


호치민의 유언 중엔..

나의 무덤을 만들지 말고,화장해 달라. 동상은 세우지마라!

전쟁중에 전사한 군인들의 유가족에겐 최대한의 지원과 애정으로..

전쟁중 부상하거나 다친 상이용사에겐 국가가 최대한 우대하라!




1883년 프랑스의 무력 침공으로 식민지가 된 이후 베트남은 프랑스의 가혹한

식민 통치 아래 철저하게 수탈당했고, 국가 경제의 자생력을 잃어 갔다.


1890년 프랑스 지배를 받던 베트남 상류층 명문가의 막내 아들로 출생.

그의 아버지는 핍박 받는 베트남 백성들을 위해 공무원 직을 사퇴하고

전국을 떠돌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집안은 몰락했지만 지적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교 경전과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개혁적 성향을 본받아 프랑스의 가혹한 세금제에 저항하는 등

반체제 인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프랑스 본토에

만연돼 있던 자유주의와 급진사상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1차 대전 후 유럽으로 건너간 베트남 인들은 그곳에 만연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혁명 사상에 감화를 받고 귀국해 베트남의 독립 운동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들은 프랑스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지하에 숨어 들어 국민들을 계몽하며

게릴라와 테러 전을 수행한다. 인텔리와 청년 혁명가들이 주도한 이런

일련의 지하 독립운동은 이후 프랑스와 미국을 무찌르는 원동력이 된다.


호치민은 (그의 본명은 ‘Nguyen Ai Quo’라 함) 1911년 배 막노동꾼으로

취업해 프랑스로 건너간다. 파리에서 사진 보정 기술자로 일했고,

새로 창설된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한다. 이곳에서 체계적인 독학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터득했으며 혁명사상과 애국주의를 체득한다.

 



 

1919년 민족 자결주의를 발표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만행과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요구서를

넘겨 주려다 실패하고 말았는데, 그는 여기서 서구 열강들이 결코 평화적으로

식민지를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그는 동양의 공산 혁명가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세계 공산당 대회에서 제법 큰 발언권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소련으로 건너가 레닌 대학을 졸업하고 민족과 식민지 문제 연구소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후 공산당의 비밀 요원으로 랑군과 캘커타 등지에서 활약하게 되면서

당시 그는 첩보전과 교란에 발군의 실력을 보였는데, 귀신 같은 변장과

잠적으로 수없이 많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으로 기록됐다.


 1925년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을 위해선 먼저 지식인과 청년들을 대중 속에

보내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베트남 혁명 청년동지회를 결성한다.


  그리고 1929년에는 홍콩에서 인도차이나 반도 공산당을 결성, 군대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베트남 독립 운동의 주도권은 호치민이 지도하는

공산당으로 넘어간다.


1940년 2차 대전이 발발한 뒤 일본군이 베트남으로 진군, 베트남을 지배하던

프랑스 정권을 격퇴한다. 초기 베트남 인들은 일본을 해방군으로 오인했으나,

호치민은 일본 역시 제국주의자들과 한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베트남 독립전선을 조직, 일본군에 저항한다. 그러나 그의 게릴라 부대는

일본군에 패배를 거듭했다.


  이때 호치민은 자신의 공산주의 노선을 변경한다.

지주의 재산을 몰수해 농민에게 분배하는 전형적인 공산 혁명이 아니라,

제국주의자와 매국노의 토지만 몰수해 빈농에게 배분하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의 기득권 및 지주층에게 이대로 식민지배가 계속되면

결국 베트남인 모두가 공멸할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때부터 그의 게릴라 전술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1945년 호치민은 패망해 가던 일본군을 베트남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마침내 독립을 선포한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도 잠시, 쫓겨났던 프랑스 군대가

질서 유지를 보조한다는 명분 아래 베트남을 재침략 한다.


 1946년, 프랑스와의 결전을 앞두고 호치민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1명이 죽을 때마다 베트남인 10명이 희생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들은 패배할 것이고 우리는 이길 것이다."




 

호치민의 말은 현실화 되었다. 프랑스는 2차 대전에서 맹위를 떨친 비행기,

장갑차, 대포등의 막강 화력을 몰고 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 군은

패색이 짙어 갔다. 호치민의 군대가 이미 거의 모든 민중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호치민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농민들은 게릴라 부대에게 식량을 가져다 주었고,

도시의 시민들은 프랑스 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프랑스 군대는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1954년 베트남 군은 총반격을 개시, 디엔 비엔 후 전투에서 프랑스 군을

궤멸시키고 프랑스는 8년간의 전쟁 끝에 남부 베트남에 괴뢰 정부를 남긴

채 완전 철수 한다.


  호치민은 이제 베트남 민중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굳은 결의로 베트남을 독립된 국가로 재건하려 했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전략적 요충지로 여겼던

미국은 베트남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미국은 1955년 프랑스를 섬기고 있던 베트남의 꼭두각시 황제 바오 다이를

몰아 내고, 고 딘 디엠을 남 베트남의 대통령으로 삼아 새로운 남베트남

정권을 세운다. 그러나 딘 디엠의 남베트남 정권은 수많은 실정과 부정을

저질러 끊임없는 민중 봉기와 쿠데타를 겪어야 했고 붕괴 위기에 놓인다.


  미국은 남베트남의 위기를 북베트남의 침략과 공작으로 규정,

"남베트남의 민주주의와 자결권을 수호하기 위해" 베트남 전을 일으킨다.


  미국은 전쟁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베트남의 통킹만에 주둔하고 있던

미 구축함을 폭파시키고, 베트남 군의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고 사건을

조작하기도 했다. (일명 “통킹만 사건”)




 

베트남 전에 참전한 미군 측 군대는 100만에 달했다.

이들은 베트남 전역을 쉴 사이 없이 폭격해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이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쏟아 부은 폭탄의 양은 900만 톤으로 이는

2차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사용한 전체 폭탄의 양보다 많았다.


  그러나 호치민이 이끈 베트남 군은 굴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살육에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20년, 혹은 100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끝내 이길 것이다."

 



 

호치민의 군대는 소련이 지원한 전쟁 무기와 전국민의 지지 기반으로

미군을 쉴 사이 없이 괴롭혔다. 프랑스 군대와 싸울 때 발휘되던 게릴라 전술은

힘을 더했다. 호치민 군대의 정말 무서운 점은 포용력이었다.


  이미 거의 모든 베트남 인들을 지지자로 만든 호치민은 미군 측에 붙어

자신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동포마저도 포용했다.


  호치민의 해방전선은 자신들의 포로가 된 이들까지 용서하고 설득해 결국엔

남베트남 군이 미군의 등에 총을 쏘게 하는 결과를 이끌어 낸다.




 

1969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시체 때문에

한 뼘의 농지도 낭비할 수 없다며, 화장 시켜 작은 단지 안담아달라고 한다.


 1973년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 후 베트남에서 전면 철군한다.

그리고 호치민이 죽은 지 6년 뒤인 1975년, 그가 이끌던 군대는 사이공을

점령하고 괴뢰정부 남베트남을 궤멸시킨다. 이로써 완전한 베트남의 독립을 쟁취한다.  


 http://board2.finance.daum.net/gaia/do/community/read?bbsId=10000&articleId=444823&pageIndex=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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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돈키호테 2009/10/22 08:31 #

    그러나 베트남인들의 이름은 사실 원래 "한자"로 되어있던 것을 베트남말로 읽은 것이 아닐까....생각된다.

    -> 베트남 사람들은 원래 한자를 베이스로 만든 추놈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일본어 가나처럼 한자의 변형이라고 보면 되죠. 현재는 복잡한 추놈을 버리고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구요.

    그리고 말이 언제나 문자보다 앞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이름은 원래 베트남어로 되어 있던걸 한자로 쓴거죠.
  • 정론직필 2009/10/22 08:36 #

    오~ 그렇군요.
    그런데도 베트남인들의 이름이 어딘지....한자스럽게 느껴져서...

    한국도......만일 과거 고조선, 고구려 시절 등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좋았을 것을....

    중국식 3자 성명체계로 바꾸어 버리는 바람에....
    정체성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고구려나 그 이전 시절엔 한민족 개인들의 이름이 과연 어떠했을지
    가끔씩 궁금해집니다.
  • zzz 2009/10/22 09:20 # 삭제

    제3세계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오해가 전제되어 있군요..
  • 사론곡필 2009/10/22 10:29 # 삭제

    3자 성명체제는 흉노나 선비가 쓰던 북방식인뎁쇼? 정작 중국은 2자식이 더 많지 말입지요.
  • 나야스 2009/10/22 12:04 #

    틀린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음. 여전하네.
  • 들꽃향기 2009/10/22 13:01 #

    호치민 평전도 안읽고 쓴 티가 팍팍나는 이 병맛은 구수하기 그지 없다능. -.-
  • 갈매나무 2009/10/22 13:06 #

    도대체 이 글이 왜 밸리 대문에 떡 하니 올라왔느냐구요...아니 어떻게 올라올 수 있었던 거냐구요...
  • 나야스 2009/10/22 13:55 #

    이렇게 들어와서 읽어주고 리플을 달아주기 때문이죠.

    Don't feed this blog.
  • StarDust 2009/10/22 15:01 #

    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면 묘하게 계속 맡고 싶은 것과 비슷한 원리지요(?)
  • 이레아 2009/10/22 15:56 #

    헐... 스타더스트님 너무 적절하네효....(...)
  • 이레아 2009/10/22 15:57 #

    보세요 정론직필씨. 이것보다 내가 간절히 요구한 인증이나 좀 해주시죠? 어디서 주워온 지식 팔아먹지 마시구.
  • 我幸行 2009/10/22 16:55 #

    베트남 인민을 해방한 호지명이 북한에 환생하여 북한인민을 해방시켜 주리라 믿씁니다.
  • 천지화랑 2009/10/22 20:53 #

    정론직필씨, 도서관은 장식으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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