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와이드(336x280)_상단 2개


북한가요 "휘파람"이 금지곡??? 그리고 "기쁨조" 남북한 문제

북한가요 "휘파람"이 금지곡???

그 "유명한"(??) 조선일보 등이....북한에서는 "휘파람"이라는 곡이
북한사회와 맞지 않는 곡이라며 금지곡이 되었다는
그런 내용의 보도를 이미 수차례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연구자의 기사에 의하면.....
그런 보도들 모두 명백한 "오보"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남한의 무지랭이 맹꽁이 국민들은 그런 "오보"들을
북한사회에 관한 진짜 진실인 줄 착각하며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또 한 가지 웃기는 것은...
탈북자 배우라는 김혜영이라는 사람이....자신도 "기쁨조"에 들어가려고
여러번씩이나 시도하였는데....번번히 실패하였단다.

"기쁨조".....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상식적 지식은???
그저 거짓말 "반공교육"에 의해 세뇌된 내용들 뿐이다.

내가 알기로 아마....."기쁨조"란 그저....김일성인지, 김정일인지에
""을 바쳐 충성하고자 하는 얼굴 예쁜 여성들이 모인 집단 정도로
나는 알고 있다.

알기쉽게 비유하자면...옛날 조선왕조의 "후궁들"의 아류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탈북자 배우라는 김혜영이라는 여성은....
자진해서 김정일에게 몸바쳐 충성하고자 "기쁨조"에 들어가고자
그렇게도 안달했던 것일까???
너무나.....아리송하다.

과연.,...."기쁨조"에 대한 진짜 진실은 무엇일까???


탈북 배우 김혜영의 거짓말..

번호123561  글쓴이푸르허  

탈북 배우 김혜영의 거짓말.. <휘파람> 과연 금지곡일까?

 

<유영호의 북한영화 바로보기> 탈북자의 거짓말 ④

2009년 01월 30일 (금) 16:20:20유영호 tongil@tongilnews.com
평양연극영화대학교 출신으로 북에서 영화배우를 하였다는 탈북자 김혜영의 증언을 기록한 자료를 보면서 북한영화에 대하여 공부했던 필자는 일단 의문점이 생겼다.

하지만 거의 모든 남쪽 국민들이 북의 영화에 대하여 어떠한 정보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증언을 하는 사람이 북에서 영화배우를 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증언에 대하여 신뢰를 보낼 것이다.

이에 필자는 그의 증언에서 진위가 의심되는 부분들을 확인보고자 나름대로 관련 자료를 좀 더 깊이 검토하여 보았다.

먼저 탈북자 김혜영이 자기 신상과 북의 영화에 대하여 증언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이무철, 1999)

영화배우 출신 탈북자 김혜영의 증언

 
 
▲ 영화배우 출신 탈북자 김혜영. [자료사진 - 유영호]

첫째, “’1호 배우’는 김일성과 김정일 등 김일성 가족을 형상화한 배우들을 말한다. 그들은 이 배역 외에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없다. 그렇지만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둘째, 자신은 대학 2학년 때부터 대학 내 '청소년창작단'이 만든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는 <여의사>, <산울림>, <다시 돌아온 초소장> 등 3편”이다.

셋째, 북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배우는 선망의 대상이기에 때문에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는 “노동자를 비롯한 최하층에서는 학생들이 선발되지 않는다.”

넷째, 자신은 7살 때 ‘전국유치원어린이축전’에 나갔는데 당시 김일성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서 눈에 띄어 17살까지 통상 남쪽에서 말하는 ‘기쁨조’가 되기 위한 특별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거기서 자신은 남쪽에도 많이 알려진 북의 가수 전혜영(휘파람 등을 부른 가수)과 함께 최종 결심까지 올라갔지만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친척들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이 1등을 하고도 뽑히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1992년에도 또 한번 기쁨조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또 탈락되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위의 탈북자 김혜영의 증언에서 필자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네 번째 항목으로 그가 ‘기쁨조’에 지망했다가 탈락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증언의 진위 여부에 대하여 판가름할 수 있는 곳은 개인은 물론 대한민국 어느 국가기관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개의 증언에 대하여서는 영화에 관한 것이라 나름대로 자료 등을 조사해보면 확인 및 추론이 가능하다.

첫 번째, ‘1호 배우’라고 불린다는 김일성 주석의 가족을 형상한 배우들이 다른 배역을 맡을 수 없으며,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는 그의 증언은 거짓이다.

 
 
▲ 예술영화 <두만강 기슭에서>(2003)에 등장하는 김정숙.김일성의 배역을 맡은 두 배우들의 이름.
이 영화는 김정숙 85돌 기념으로 제작된 것으로 그 내용은 조선혁명군의 조국진출을 앞두고 엄혹한 정세에 김정숙이 적구에 내려가 조선인 경찰을 교양개조하고 또 대담하게 적지휘부 습격전투를 전개하여 사령관인 김일성이 주도하는 사지봉회의를 무사히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자료사진 - 유영호]

 
 
▲ 예술영화 <푸른 소나무>(1984)에서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 어머니 강반석, 할머니 리보익 등 그 배역을 맡은 영화배우들의 이름.
이 영화는 김일성 주석의 부친인 김형직이 1930년대 숭실학교에서부터 시작한 학생운동활동과 그 이후 조선국민회 창건에 이르는 반일혁명 투쟁기를 그린 영화이다. [자료사진 - 유영호]


위의 영화 <두만강 기슭에서>(2003), <푸른 소나무>(1984)에서 보여지는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통상의 배우들과 다름이 없으며, 각기 그 이름 앞에 인민배우, 공훈배우 등 그 지위를 달리함을 알 수 있다.

또 <푸른 소나무>(1984)에서 각각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과 할머니 리보익의 배역을 맡은 김선남과 리순정은 이런 김일성 주석의 가계와 관련된 영화 이외에도 여러 편의 영화에 많이 출연하고 있다.

참고로 북한영화에서는 통상 김일성, 김정숙의 이름은 표기하지 않고 위의 사진에서처럼 그 배역을 맡은 사람의 이름만 노출된다. 또는 아예 배역을 맡은 영화배우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두 번째, 탈북자 김혜영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는 <여의사>, <산울림>, <다시 돌아온 초소장> 등 3편의 영화는 필자가 확인할 수 없었다.

북에서 평양연극영화대학의 '청소년창작단'이라고 하는 위치는 다른 창작단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우수한 실력을 갖고 있으며, 이 창작단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다른 창작단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조선예술』, 『조선영화』 등 영화관련 서적에 대부분 기록이 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김혜영이 증언하는 위 3편의 영화는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참고로 우리 남쪽 사회에서도 많이 알려진 북의 예술영화가운데 <도시처녀 시집와요>(1993), <노래여 너와 함께>(1996) 등이 김혜영이 활동했다는 '청소년창작단'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청소년창작단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좀 더 자세히 논하기로 하겠다.

세 번째,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는 “노동자를 비롯한 최하층에서는 학생들이 선발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필자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 대학 학생들의 출신성분 및 가정형편에 대하여서 통계화된 정보를 구할 수는 없지만 이곳 출신 영화인들의 이력을 보면 위의 주장에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 북한 유명 배우들. 왼쪽부터 홍영희, 김룡린, 김정화.  

인민배우 홍영희. 선반공 출신으로 인민배우에 오른 홍영희. 그가 처음 출연한 영화 <꽃파는 처녀>(1972), 꽃파는 처녀는 현재 북의 1원짜리 지폐의 모델이다.
인민배우 김룡린. 탄광 굴진공 및 벌목공 출신의 인민배우 김룡린. 그는 <이름없는영웅들>(1979~1980)의 주인공 유림으로 출연하여 일약 스타가 되었다.
인민배우 김정화. 운전수 양성교육을 받다 영화의 길에 나선 인민배우 김정화, <이름없는영웅들>(1979~1980)의 여주인공 순희로 출연했다. [자료사진 - 유영호]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김일성 주석 원작의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1972)에서 주인공 역을 한 인민배우 홍영희는 당시 16살의 선반공 출신이었으며, 그 뒤 1972년에 김혜영이 다녔다는 평양연극영화대학을 입학하였다.

또 <이름없는 영웅들>(1979~1980, 20부작)의 주인공 ‘유림’으로 유명한 인민배우 김룡린은 경성탄광 굴진공, 경성임산사업소 벌목공 등의 경력으로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입학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순희로 나오는 인민배우 김정화 역시 청진고등운수학교에서 운전수 양성교육을 받다가 1973년 평양연극영화대학을 입학하여 그 뒤 유명배우가 되었다.

(이들 신상에 관한 정보는 코리아콘텐츠랩(www.kclab.com)에서 제공하는 ‘북한인명사전’을 이용한 것임)

북한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필자가 예로 든 홍영희, 김룡린, 김정화라는 영화배우를 모를 리 없을 만큼 북에서는 그 지위와 유명세가 대단한 배우들이다.

 이러한 사례로 미루어 보아 “노동자를 비롯한 최하층에서는 학생들이 선발되지 않는다”는 김혜영의 증언에 대하여 필자는 부정적 견해를 표하고자 한다.

한편, “노동자를 비롯한 최하층”이란 언급은 논리모순이 아닌가를 생각해 본다. 북은 사회주의국가로서 ‘온 인민의 노동계급화’를 구호로 채택할 만큼 노동계급을 중시하는데 '노동계급=최하층'이라는 그의 생각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는 북이 겉으로는 온 인민의 노동계급화를 외치지만 그곳 역시 자본주의 계급사회와 아무런 차이 없이 노동자를 천시하고 있다는 것을 남쪽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현실은 그의 증언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가요 <휘파람>, 과연 금지곡일까?

 
 
▲ 가수 인민배우 전혜영. [자료사진 - 유영호]

위에서 탈북자 김혜영이 자신과 함께 ‘기쁨조’에 최종 심의까지 함께 올라갔다는 북쪽 가수 ‘전혜영’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기회에 그가 부른 유명한 북쪽 가요 <휘파람>(1991)에 대하여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휘파람>은 1991년 보천보 전자악단에서 창작한 노래이며, 혁명시인 조기천 작사, 리종오 작곡의 노래로 악단 소속 가수 전혜영이 불러 남쪽에도 꽤 많이 알려진 노래이다.

최근에는 이 노래가 남쪽 핸드폰 컬러링으로도 서비스 되고 있으니 아마도 북의 노래가운데 <반갑습니다>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노래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북은 『문학예술사전』에서 가요 <휘파람>에 대하여 “우리 당의 품속에서 행복하게 자라나는 로동청년들의 애정세계를 노래한 생활적이며 대중적인 통속가요”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가사에서는 조국건설을 위한 생산경쟁에서 혁신자의 영예를 안고 사랑을 더욱 꽃피우려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고상한 사상감정과 그 생활을 생동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문학예술사전, 1993)

이리하여 <휘파람>은 “우리 시대 청년들의 아름답고 고상한 정신세계를 지극히 소박하고 생활적인 시어를 밝고 발랄한 곡에 맞추어 생동하게 형상한 것으로 하여 나오자마자 청년들과 근로자들 속에서 널리 불리여지고 있는 명곡으로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리석순, 1990)

 
 
▲ <휘파람> 악보. [자료사진 - 유영호]

그런데 이처럼 소개된 북의 가요 <휘파람>에 대하여 남쪽에 전혀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992년 6월 4일 남쪽 언론에서는 북쪽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이 노래가 혁명성이 없어 민심을 동요시키고 사상해이를 초래하여 인민들을 바보로 만들 뿐만 아니라 조직의 기강과 규율을 깨고 있다”는 이유로 북에서 금지되었다고 보도하였다.

 
 
▲ 북에서 생활가요 <휘파람>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는 1992년 6월 6일자 <조선일보> 보도기사. 젊은이들의 사상적 해이를 이유로 김정일 위원장이 전 행정기관에 금지시키도록 지시하였다고 전한다. [자료사진 - 유영호]


물론 이러한 보도기사는 당시 <내외통신>의 6월 4일자 798호 기사에 근거하여 여러 언론사들이 보도한 것이었지만 명백한 오보였다.(신진화, 1992)

왜냐하면 <휘파람>이란 가요가 북에서 금지되었다는 오보가 나간 뒤에도 북의 <평양신문> 6월 19일자에서는 TV노래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곳에 <휘파람>이 들어있었을 뿐만 아니라,

1993년 제작된 북의 예술영화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들>(2부작)에서 주인공인 홀아비 강선달은 대동강 유람선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많은 승객들 앞에서 <휘파람>을 부르며, 자신의 노래 뒤에 승객 가운데

유치원 원장 조복금 할머니를 불러내어 노래시키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두 노인은 서로를 사랑하는 계기가 되고, 이후 이 두 노인을 사이에 두고 재혼 이야기가 자식들과 함께 벌어지는 즐거운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노인들의 재혼문제를 소재로 삼은 예술영화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들>

(1993)에서 유람선장 강선달(인민배우 김룡린)이 남쪽에서는 금지곡으로 보도된 노래 <휘파람>을 승객들 앞에서 부르는 모습(좌)과 승객으로서 강선달 선장의 요청으로 불려 나와 손풍금을 켜며 노래하는 조복금(공훈배우 한길명) 유치원장. [자료사진 - 유영호]


이처럼 <휘파람>에 관한 남쪽의 보도가 오보임이 밝혀졌음에도 그 뒤 어느 언론사도 이 선정적인 보도가 명백한 오보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처음 잘 못 보도된 기사를 근거로 오히려 더욱 그러한 오보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조선일보>, 1992.10.15자, 2005.11.21자 등의 신문)

남쪽 사회에서 그 동안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던 언론은 그렇다 치고, 이러한 오보가 나간 뒤에도 북에서는 계속 <휘파람>이 방송되자 북한영화 연구자들의 글 속에서는 ‘90년대 초반’ 또는 ‘한 때’ 금지되었던 노래라는 식으로 그러한 오보는 수정되지 않은 채 변형되어 그대로 연구자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이명자, 2007)

<참고문헌>

『문학예술사전』(평양 사회과학출판사:1993)
코리아콘텐츠랩(www.kclab.co.kr) ‘북한인물사전’
이무철, 「탈북인사대담 32 - 전 북한 영화배우 김혜영」, 『통일한국』(평화문제연구소:1999.2),
리석순, 「휘파람」, 『문화어학습』,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1990.3)
신진화, 「금지된 곡 ‘휘파람’은 오보였다」,『월간 사회평론』, 92권, 8호, 54p
이명자,『북한영화사』(커뮤니케이션북스:2007), p.174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3561



덤으로.....
이번 오바마의 한국방문은....한국을 완전히 개무시하는 이상한 형식의 방문이었군요.
그러한 사실들을 낱낱이 까발린 좋은 기사를 아래 소개합니다.


이례적인 실무방문, 이상한 정상회담

(주의: 아래는 기사 전문이 아님, 극히 일부만 퍼온 것임)

그는 국빈방문(state visit)에 준하는 의전격식을 갖춰 3박4일 동안 중국을 방문하였다.
일본 방문은 공식방문(official visit)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 방문은 21시간 머물다 떠난, 격이 가장 낮은 실무방문(working visit)이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자기 임기 중에 처음 방한할 때는 국빈방문 격식을 갖추었던 것이 관례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중 첫 방한을 국빈방문은커녕 공식방문도 아니고
가장 격이 낮은 실무방문으로 정하였으며, 그것도 형식적인 정상회담만 하고 떠났다.
한중일 연속방문을 모두 국빈방문으로 할 수는 없었다 해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국 방문을 공식방문도 아닌 실무방문으로 격을 낮추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알맹이 없는 정상회담을 하였다. 아래와 같은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첫 방한을 성의 없게 진행한 것으로 봐서, 그가 국빈방문으로 서울을 다시 찾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는 국빈으로 방한하지 않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왜 서울공항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에 서울공항이 있다. 한국 공군이 관할하는 서울공항은 대통령이나 고위관리가 드나드는 의전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공항이 건설된 뒤로,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은 그곳을 이용하여 이 땅에 드나들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서울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공군이 주둔해있는 오산기지를 이용하였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오산기지를 통해 이 땅을 드나든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이다.

만일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때 하네다(羽田)공항을 이용하지 않고 주일미국군 공군이 주둔해있는 요코다(橫田)기지를 이용했다면 일본 정부와 국민이 가만히 있었을까? 정상적인 외교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도, 친미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청와대, 국회, 언론매체들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산기지를 이용한 것은 의전관례를 무시한 행동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다르게 오바마 대통령은 왜 정상적인 외교관례를 벗어난 이상행동을 보였을까 하는 것이다. 이상행동을 보인 원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통령 특사파견을 중시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보스워즈 특사의 임무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사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보스워즈 특사는 2009년 8월 4일 평양을 전격방문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사표시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응답을 전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한다고 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담판 형식으로 한반도 근본문제를 일괄타결하자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면, 그들이 애타게 고대해온 핵포기 의사를 표명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던 것으로 보인다.

핵포기 의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표명할 수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에서만 핵포기 의사를 표명할 것이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7497#



(뱀발)

아래 기사에서...."그 어떤 군대"란....사실상 "미국군대"를 가리킨다.

불과 최근년에만 해도....북중관계는 상당히 험악한 편이었는데
중국이 왜 갑자기 그와 같이 완전히 북한측에 붙어버린 것일까???

그 이유는.....중국은 이미....한반도 상황이 조만간 어떻게 변화해갈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즉,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북한에 의해 완전히 주도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만일.....북한에 의해 주도되는 한반도 상황....즉, "통일된 한국"이라는
엄청난 새로운 강국과 중국이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만 자국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다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만일....통일한국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환경조건에서
중국이 그러한 통일한국과 서로 "적대적"이 된다면
그것은 중국에 어마어마한 부담으로 작용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중국이 새로이 국제거물로 부상되는 통일한국과
매우 가까운 동맹관계로 간다면....
그것은 중국 국경주변에서의 군사적 충돌 위험을 현저히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항하는 데 있어서도.....압도적으로 유리해질 것이다.

따라서.....근래 들어 중국이 북한측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는 현상은
국제정치적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북한측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中 국방부장, “北-中 군사동맹 막을 세력 지구상에 없어”

뉴시스 | 이남진 | 입력 2009.11.23 14:12

량 부장은 22일 환영식에서
"지구상의 그 어떤 군대도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동맹관계를 훼손하지 못할 것"이라며
"양국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또 "중국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보들의 영문법 카페(클릭!!)

오늘의 메모....

시사평론-정론직필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sisa-1

바보들의 영문법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babo-edu/

티스토리 내 블로그
http://earthly.tistory.com/

내 블로그에 있는 모든 글들과 자료에 대한 펌과 링크는 무제한 허용됩니다.
(단, 내 블로그에 덧글쓰기가 차단된 자들에게는 펌, 트랙백, 핑백 등이 일체 허용되지 않음.)

그리고 내 블로그 최근글 목록을 제목별로 보시려면....
바로 아래에 있는 이전글 목록의 최근달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제목을 보고 편하게 글을 골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블로그내 글을 검색하시려면 아래 검색버튼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가가챗창

flag_Visitors

free coun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