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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비날론, 그리고 이승기 박사 역사 문제

북한의 비날론, 그리고 이승기 박사

요즘 북한 관련 뉴스들에서 "비날론"에 대해 상당히 요란한 편이다.
김정일이 비날론 공장을 무려 연거푸 두번씩이나 방문하며 기뻐했다던가....어쨌다던가...
심지어 어느 게시판에서 "기술원"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은
북한의 이번 비날론이....우주공학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신소재라던가....뭐라던가...
그래서 게시판에서도 그와 관련된 게시글들이 여러개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나....솔직히 나로서는 그런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어제 서프에 올라온 관련 게시글 중에 유독 나의 눈을 끄는 부분이 있어서
아래 소개하고자 한다.



이 승기 박사의 비날론

(서프라이즈 / 진정한 지식인 / 2010-2-11 22:07)

최초의 공학박사 리승기의 생가는 어느마을에 있는지요?

질문자 인사

당신이 진정한 지식인~

북한 과학계를 대표하는 리승기는 남한에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북한과학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자서전인 '과학자의 수기'를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일본어로도, 국내에서는 출판되기도 했다. 그동안 리승기는 북한 연구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더욱이 지난 2000년 8.15 이산가족 상봉 당시 그의 미망인인 황의분 여사의 방문으로 언론계가 리승기에 대해 크게 보도하면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일본 최초의 한국인 공학박사 리승기는 1905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서울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으로 유학을 가 마쓰야마(松山)고등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공업화학과에 진학했다. 한때 아스팔트 강화연구를 하여 일본 특허도 취득하게 되지만, 그의 관심은 오로지 섬유 연구였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기타의 도움으로 교토제대 부설 일본화학섬유연구소에 연구강사로 임용되면서 합성섬유 연구에 점진할 수 있었다. 리승기는 1939년에 훗날 ‘비날론’으로 불리게 되는 ‘합성1호’를 발명했다. 이 업적으로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일본에서 최초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교토제대 교수로까지 올랐다.

연구를 위해 북한으로

해방 후 귀국한 리승기는 경성대학 이공학부 교수가 되었고, 1949년에는 서울대 공대 제2대 학장을 지냈다. 국대안 파동으로 한때 낙향하기도 했지만,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을 논의하는 주요 회의에 참여하는 등 남한정부에 상당 기간 협조적이었다. 리승기는 여러차례 월북 제의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때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서울에 머무르고 있던 리승기는 김일성의 위임을 받은 리종옥의 권유로 결국 1950년 7월 31일 뒤늦게 월북하게 되었다. 북한에서 비날론 연구를 전적으로 보장해주겠다는 제의를 해옴에 따라 북행을 감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리 박사는 1905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츠야마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뒤 1931년 교토제국대학 공업화학과를 졸업했다. 훗날 그가 쓴 자서전에 따르면 가난한 형편 탓에 대학 시절 결핵을 앓기도 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

원래 리 박사가 연구하기 원했던 분야는 합성섬유였지만 조선인 출신이 일본에서 직장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도 교수였던 기타(喜田)의 추천으로 처음에는 아스팔트를 연구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아스팔트와 관련한 다수의 특허를 취득하는 성과를 올린 리 박사는 곧이어 자신이 원하던 합성섬유를 연구할 기회를 잡는다. 바로 교토제국대 부설 일본화학섬유연구소에 연구강사로 임용된 것이다.

1938년 미국 듀퐁사가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을 개발하면서 세계 각국에 합성섬유 연구 열풍이 불었다. 원래 세계적인 비단, 면직물 수출국이었던 일본도 합성섬유 연구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달리 일본은 폴리비닐알콜(polyvinylalcohol, PVA) 계열의 고분자 화합물을 원료로 쓸 수 있는지 연구했다. 나일론은 석유를 원료로 필요했지만 폴리비닐알콜은 석회석을 원료로 했기 때문에 석유가 나지 않는 일본에 적합했다. 또 PVC로 만든 합성섬유는 나일론이나 아크릴 섬유에 비해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뛰어나 면직물을 대용하는데 유리했다.

마침내 1939년 리 박사는 PVC로 ‘합성섬유 1호’를 개발했다. 합성섬유 1호는 단순한 개인적인 영광 그 이상의 것이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리 박사가 거둔 성공은 조선인의 자랑이 되기에 충분했다. 과학잡지 ‘과학조선’은 조선인 과학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리승기를 지목했고, 종합잡지 ‘조광’(朝光)도 ‘세계의 학계에 파문을 던진 합성1호의 기염-리승기 박사의 고심 연구달성’(1939년 12월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이를 두고 리 박사는 자서전에서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거론하며 자신의 연구 성과가 일본 과학의 성과로 귀속된다는 사실에 무척 안타까워했다. 게다가 리 박사의 연구가 공업화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는 했지만 완전한 실용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우선 합성섬유 1호는 뜨거운 물에 닿으면 쉽게 수축됐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열처리를 하는 경우 착색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리 박사는 제조 공정 중에 포르말린 대신 아세트알데히드를 넣는 방법을 고안해 1942년 무렵까지 합성섬유 1호의 대부분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가 서둘러 상업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당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어서 자신의 연구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품 생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리 박사의 의도대로 합성섬유 1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업화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편 리 박사는 헌병에게 “일본은 패망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빌미로 일본 오사카 감옥에 갔다가 거기서 광복을 맞았다. 고국으로 돌아온 리 박사는 서울대 공대학장, 대한화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지만 얼마 뒤인 1950년 7월 31일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평양에 간다. 리 박사의 월북 배경을 둘러싸고 어떤 이들은 그가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에 기울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네다섯 차례에 걸친 끈질긴 월북 권유를 물리쳤고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의 이념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은 사람이다.

다만 당시 남한은 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반면 북한은 해외에 거주한 조선 과학자까지 초빙해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지원했다. 아마 리 박사에게 흥남의 질소비료공장에서의 근무와 비날론연구소 설립을 제안한 것이 그가 월북한 가장 큰 요인으로 추측된다. 흥남의 질소비료공장은 당시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대공장으로, 카바이드와 아세틸렌, 아세트산, 아세트알데히드 등을 생산했다. 이들은 모두 합성섬유를 만드는 원료였다.


김일성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1년 연간 2만톤의 비날론을 생산하는 공장이 완공됐다. 석회석과 무연탄, 전기를 이용해 만든 카바이드를 기본 원료로 삼아 만드는 비날론(Vinalon)은 비닐알코올을 축약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비닐론(Vinylon)이라 불린다. 그 뒤 ‘주체사상’이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비날론은 ‘주체섬유’로 불릴 만큼 획기적인 성과였다.

무엇보다 비날론은 조선인인 리 박사가 개발했고, 질감이 조선의 전통 옷인 면과 비슷하며, 북한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회석을 원료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공업화와 체제 건설의 역사와 나란히 서술되고 있다. 북한 정권은 리 박사에게 노력영웅 칭호와 제1회 과학부문 인민상을 수여했다. 병으로 드러누웠을 때 김일성이 그에게 100년 된 산삼을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광복 이후 남한에서 과학자를 우대했다면 리 박사가 서울대 응용화학과에서 길러낸 제자들과 함께 집단으로 월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미군정이 한국을 일본의 영토로 간주해 서울대의 학제개편을 미국식으로 강요한 탓에 담양으로 낙향했을 때도 “아편쟁이가 아편을 잊지 못하듯 비날론을 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한국인 과학자의 해외 두뇌유출을 걱정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위 기사에서 나의 눈길을 강하게 잡아끈 부분은 바로
미군정이....한국을 일본의 영토로 간주했다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미국이나 맥아더에게 당시 한국이란
단지 패전국 일본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으로서 일본 영토의 일부인 한국을
지네들 "식민지"로 간주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그것은 맥아더의 "포고령"을 보아도 그렇고....
미일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보아도 그렇고
2차대전 종전후 미국의 한국 군정 식민통치 과정을 보아도 그렇다.

미국의 그러한 관점은.....2차대전 이후 계속돼온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즉, 그러한 관점에서....미국은 한국을 "막후통치"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일컬어 미제국주의의 "신식민통치"라고 부른다.

그리고....이승기 박사가.....서울대 출신 제자들과 함께
집단으로 월북했다는 말은....
당시만 해도....."공산당"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말들에
일반인들이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긴, 그래서 독립투사들 중에도 김일성 등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쨋든, 해방전후만 하더라도 소위 "빨갱이"니 뭐니 하는 현재의 혐오증 같은 것은
당시에는 아예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이 자진월북했던 것이다.
아마도 친일매국노들이 설치고 미국이 식민지 취급하는 남쪽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추측된다.

(참고로....
"독립운동"을 하는 무장투사들 중에는....의외로 "공산주의자"들이 많다는 사실.
쿠바, 베트남 등등등.....)

이왕 비날론에 대해 쓰는 김에....비날론에 대해서도 좀 알아보자.

비날론 머가 문제인가?

(서프라이즈 / 나이곱 / 2010-2-12 01:50)

다른글에 있을테지만

만약 없다면 여기는 무뇌들만 드나드는곳.

비날린이 뜻하는것이 무엇인가?
풍부한 전력생산을 뜻하는것이다.

비날린=전기잡아먹는 생산품.

풍부한 전력하면 멀 상상할수 있는가?

핵발전소 외에 머 있겠나?

핵발전소 하면 또 생각나는것은?

핵순환 싸이클일 건데.

그럼 핵순환 싸이클로

풍부한 전력,풍부한 고농충우라늄, 플루토튬,

핵무기, 핵잠수함 이런거 아니겠는가?

사진에서 김정일이가 박장대소하는 모습이며

발걸음 돌려 또 찾아가 좋아했을 수밖에 없는거다.

물론 사기가 아니라 사실이라면 말이지.

조만간 핵오도바이도 나오는거 아니냐?

김정일에게 밞히기 싫으면 얼렁 우리도 핵무장해라.

니가 진정한 보수우파라면

머리 박박깍고 태극기 둘러매고  종로를 뛰어다니며

우리도 핵무장을 외쳐야 하는거다.

못하는 당신은?

보수우파는 무슨~

매국노나 아니면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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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기술원"의 글..)

 

기술원님 답글이네요 (판단은 알아서들 하세요)
 
 한국의 언론을 보면 비날론이 무어라고 난리냐고 비아냥합니다 .과연 비아냥 할문제인가?
아니다 입니다. 북의 비날론 하면 우선 승기박사 입니다. 이승기는 1940년 전으로 무기물에서 PVA와 그후 PVC 폴리찌렌 창조 후 즉 나이론 혁명과 아세틸론 혁명 이라고도하는 무기물 고분자분야에서 일대혁명을 하였습니다. 그 후 북으로 들어온 후 이승기박사의 업적이 별로 소개된것이 없습니다. 왜서일까? 여기에 주목을 하셔야합니다. 이 문제을 알면 우리민족이 간단한 민족이 아니다라는 답을 가지게 되는데, 지금 북은 비날론에대하여 자부심을 가지는것이 다만 천 문제가 아니다 입니다. 우주로가는 길에서 사람 생명의 첫 순서인 무엇을 다량 생산 할 수가있는 길을열어 놓았다 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가 즉 투명물체에 탄알도 못뚤고 방사능에도 잘견디는 금속도 아니요 직물도아닌 무엇을 다량 생산 할 수 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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