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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속 만주 조선인 - 간도 역사 문제

한국전쟁 속 만주 조선인 - 간도

아래 글들은....사료적 가치가 있어 퍼서 옮겨 둡니다.

요즘 한국내 조선족동포들의 일부가 맘에 안드는 짓을 한다고 해서
일부 멍청이 한국인들은 중국동포들에 대해 극단적 혐오증을 유포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한민족 이간질책동으로서 간첩, 매국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래 글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당시 만주 즉, 동북지역은 거의 대부분
항일독립투사들을 후원하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마을 전체가 왜놈 군대에게 초토화되고 몰살당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항일독립투사들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원하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살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바로 오늘날 "조선족"이라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 조선족들 중에는.....이름이 드러난 유명한 독립투사 후손들도 많지만
그러나 이름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독립투사들의 후손들도 많을 뿐더러
무장독립투쟁에는 직접 참여를 안했다고 할지라도 물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투사들을 후원하던 사람들의 자손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하고.....그들을 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타, 북한을 장악한 권력층이 당시에 만주를 어떻게 생각했었는지도
아래 글들을 통하여 알 수 있군요.

사실 중국놈들의 패권주의 본능을 생각해본다면
6.25 한국전쟁이 없어서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중공은 어떻게 해서든 만주를 지네들 수중으로 빼앗아 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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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속 만주 조선인 - (서프라이즈 / 간도 / 2010-9-3 19:52)


한국전쟁 속 만주 조선인


【 또 하나의 한국전쟁 】염인호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한국전쟁은 북한의 인민군과 남한의 국군이 각각 중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벌인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이 전쟁에 뛰어든 또다른 한국인이 있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사라진 만주 조선인이 그들이다.


‘또 하나의 한국전쟁’(염인호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사의 일부가 된 만주 조선인들의 삶과 투쟁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옌볜, 지린, 무단장시 등 현지에서 발행된 한글신문들, 중국 당국의 문서 자료 등을 통해 만주 조선인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만주 조선인들은 일제 시기 3·1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등 강한 조국애와 민족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해방 전 중국 관내 지방과 소련에서 활동하던 조선의용군·동북항일련군 출신의 조선인 지도자들은 해방과 함께 만주로 들어와 조선인사회를 이끌었다. 이들은 만주를 조국통일 역량의 산실로 키우자며 만주 기지론을 주창했다. 국공내전을 통해 청년들을 단련시켰고, 북한과 옌볜 각지에 정치군사학교를 설립해 혁명간부를 양성했다. 이렇게 단련된 만주 조선인부대는 1949년 7월부터 순차적으로 입북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남진한 북한 인민군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는 만주 조선인 부대였다. 이들의 입북을 중공의 파병으로 간주해온 기존 견해와 달리 저자는 조선인의 귀환이라고 주장한다.


전쟁 초반 북한 인민군에게 유리했던 전세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역전되고, 이어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하면서 만주 조선인사회에는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국공내전을 지원한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았던 만주 조선인의 위치가 흔들리면서 중국 내 여타 소수민족과 마찬가지로 중국 일반 사회에 흡수됐다.


한편 재중 한국독립당의 우익세력도 만주 조선인에 대해 북한과 비슷한 맥락의 통일전략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과 합작해 민주세력을 마련해놓고 남한과 호응해 북한의 공산세력을 몰아낸다는 전략이었다. 만주의 국민당 점령지역 곳곳에서 한독당은 조선인 사회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그러나 1947년 공산당의 하계 공세 이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결정적인 수세에 몰리자 한독당의 활동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1948년 고립된 채 중공군에게 포위된 선양시 인근 국민당 지구 조선인들은 대탈출을 감행했다. 1만여명의 탈출자들은 톈진에서 배를 타고 남한으로 귀국했고, 남겨진 민주자위군 대원들은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3만 8000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904016003&s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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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조선인의 ‘지워진 9년’을 아십니까
한국전쟁기 북쪽 주력부대 ‘절반’
‘이중 사명 의식’ 지닌 투쟁적 삶
‘한국사의 일부’로 조망하는 시도
한겨레 허미경 기자 메일보내기
 
» 태극기를 든 조선의용군. 8·15 해방 뒤 길림성 화전에서 창설된 조선의용군 제7지대. 만주로 들어온 조선의용군은 대부분 태극기를 앞세워 활동했다. 이 사단들이 한국전쟁 발발 직전 북한으로 들어가 주력군의 일부가 되었다. 역사비평사 제공
〈또 하나의 한국전쟁-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
염인호 지음/역사비평사·3만8000원

역사학자 염인호(서울시립대 교수)씨가 쓴 <또 하나의 한국전쟁>은 이 나라가 해방을 맞은 1945년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를 다룬다. 이 시기, 만주지역 조선인들의 삶과 투쟁. 이들의 ‘선택’과 ‘조국’에 대한 생각을 화두로 부여잡은 책이다.

» 〈또 하나의 한국전쟁-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

지은이는 책이 다루는 1945~53년을 ‘국공내전·한국전쟁기’라고 부른다. 만주 조선인의 처지에서 이들의 선택과 삶을 들여다보려는 까닭에서일 것이다. 그는 해방 이후 만주 조선인 역사를 “한국 현대사 최대 사건인 한국전쟁이라는 큰 호수를 향해 치달은 한 줄기 강물”이라고 비유한다. 이를 조망하기 위해 그는 조선의용군 출신을 면담하고, 그 지역에서 명멸했던 조선인 신문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기록 등 방대한 1차 자료를 섭렵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북한 인민군 주력부대의 절반은 만주에서 건너온 조선인 부대였다. 전체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다. 1945~49년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국공내전)에 참전하여 단련된 부대다. 남북 대결로 출발했다가 국제전으로 변화한 한국전쟁에서 남북 대결은 사실, 남한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 및 만주 조선인 사회를 일방으로 하는 양 세력의 대결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만주 조선인 부대의 뿌리는 일제 패망 직후 치안이 무너진 가운데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된 조선인들의 자위 무장대오에 있다. 8·15 뒤 중국 관내지방에서 들어온 ‘조선의용군’과 소련에서 들어온 동북항일련군 조선인 대원들은 이 자위 무장대오를 흡수·개편했다. 이 부대들이 성장하여 4만~5만명에 이르는 만주 조선 청년들이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다. 이상조·주덕해 등 조선의용군 지도자들은 1945년 그어진 38선을 ‘제국주의 반동 진영’과 ‘민주 진영’ 이 맞붙는 경계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만주는 100만 동포가 거주하고 조선의용군과 관계가 밀접한 팔로군이 점령하고 있으니 만주를 남북통일의 기지로 삼는다는 ‘만주기지론’을 주창했다.


1945~49년 만주 조선인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보려면 이 만주기지론과 함께 만주에 혁명근거지를 세워 국민당과 겨룬다는 중국 공산당의 동만근거지론, 그리고 조선인들의 ‘이중 사명의식’을 살펴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만주 조선인들은 한반도 조국에 대한 애착 못지않게 만주 현지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는 의식도 강했다. 이중 사명의식이다. 이들의 국공내전 참전은 이른바 조국통일 준비이기도 했지만, 만주에 뿌리내리려는 의지의 결과이기도 했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이 시기 북한은 만주 조선인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1948년 말 중국공산당은 만주 조선인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며 조선인은 이 조국을 보위할 국방의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만주 조선인의 (중국과 북한) 이중국적 상태를 인정한 셈이다.

중국공산당은 왜 중국의 여타 소수민족과는 달리, 만주 조선인들에게 이런 특수지위를 인정했을까. 지은이는 이를 만주 조선인과 북한 지도자들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채권자 의식’으로 설명한다. 곧 일제하 항일투쟁과 국공내전에 참전하여 “중국 혁명을 위해 조선인들이 흘린 피의 대가”에 대한 요구다. 임춘추·김광협·임민호 등 조선인 지도자들과 북한 쪽은 이 채권자 의식을 발판으로 연변의 북한 귀속을 요구했다. 이들은 국공 내전중이던 1947년과 1949년 공식적으로 중국(중국공산당)에 항일투쟁과 국공내전 참전 대가로 연변에 자결공화국을 세우고 궁극적으로 연변을 북한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연변은 북한에 귀속되지 않았고 1952년 9월 자결공화국 대신 자치권한이 상대적으로 적은 연변조선족자치구가 건립됐는데, 이런 결정에는 한국전쟁의 추이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중국군이 한반도 전쟁에 참전하여 전황을 바꿔놓으면서 만주 조선인사회는 중국에 감사해하게 되었고 그 결과 채권자 의식이 약화되고 조선족자치구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물론 채권자 의식에 기반한 연변의 북한 귀속론도 사라졌다. 공식적인 조국관에도 변화가 생겨나 조선족자치구 성립 이후 한반도가 조국이라는 표현 대신 중국이 조국이라는 표현이 공식문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전 참전을 통해 중국은 연변 문제 해결이라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해방 즈음, 연변과 북만주, 남만주 등 만주지역에는 100만~200만명 가까운 조선인이 살았다. 만주는 일제 강점기 조선 항일독립투쟁의 기지였으되, 1945~53년 만주는 우리의 시야에서 공백상태였다. 이 책은 이 공백을 채우고 이 시기 만주 조선인의 역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시도다. 지은이는 이 시기 만주 조선인의 역사를 중국공산당이 이끈 중국혁명의 틀 속에서 중국사의 일환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역사는 조선 항일투쟁사의 연장선에 놓인 ‘한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82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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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를 조선인 자치구로 획정"


 


"간도를 조선인 자치구로 획정"

[YTN TV 2006-06-27 02:49]

[앵커멘트]

1948년 북한과 소련이 평양협정을 맺어 중국 동북지역을 조선인 자치구로 획정하려 했다는 당시 장개석 정부의 문건이 공개됐습니다.

평양협정이 실제로 체결됐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보도에 김재형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1948년 7월 당시 중화민국 국방부가 외교부에 보낸 내부 정보보고 문건입니다.

북한과 소련이 48년 2월 '평양협정'을 맺어 중국 동북 지역의 간도와 안동, 길림 등 세 지역을 조선인 자치구로 획정하려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북한 정규군 부대가 해당 지역에 주둔하고 있고 각 지역의 지방 행정도 조선인이 주관하고 있어 실제로 이 지역이 북한에 합병된 것과 같다는 의견도 덧붙입니다.

그러면서 평양 협정에 따른 조선인 자치구 구획선을 상세하게 명시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첫 지도로 알려진 1735년 프랑스 지도학자 당빌이 제작한 조선왕국전도와 비교할때 국경선이 거의 비슷합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지난 1999년 타이완 정부가 공개한 외교 관련 문서에 포함돼 있습니다.

[인터뷰:박선영,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간도 문제가 단순히 지금 말하는 연변지역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압록강 대안과 서간도 문제까지 포함하는 거여서 저희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줄 뿐 아니라 새로운 연구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실제로 북한과 소련이 평양협정을 맺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간도 문제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200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조선의 동의 없이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일방적으로 체결된 간도협약은 법리적으로 무효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 장관은 그러나 국제 정치현실 등을 고려할 때 간도협약과 영유권 문제는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습니다.

[녹취:이일걸, 간도학회 부회장]

"간도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간도 협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중국 정부에 외교 채널을 통해 통보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공개된 자료와 관련해 우선 북한과 소련사이에 실제로 평양협정이 체결됐는지가 밝혀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YTN 김재형[jhkim03@ytn.co.kr]입니다.


http://www.gando.or.kr/bbs/?doc=bbs/gnuboard.php&bo_table=history_data&page=21&wr_id=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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