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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명박은 미국알고나 사대하라! 역사 문제

<기고>이명박은 미국알고나 사대하라! 

멕시코란 나라는 오늘날 그 경제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지만
그러나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사회보장제도는 한국 보다 더 열악해서
일반 멕시코 민중의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걸핏하면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당하여 나라가 망하곤 하지요.

멕시코가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멕시코란 나라는.....숭미사대 매국노들이 기득권을 장악하고
일반 국민들을 기만하는 통치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멕시코 - 미국 FTA 등등을 통해 멕시코 경제의 알짜는 모두 미국유대자본들에게
점령당해 멕시코 경제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상태이지요.
그러니 그런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베네수엘라 차베스, 브라질 룰라 등등의 좌파정권들이 등장하여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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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명박은 미국알고나 사대하라! 
 
한국 기독교인 80%이상이 미국의 한 주가 되기를 열망한다고 한다 
 

김상일 교수


이명박 당선자(대통령)가 제시한 남북관계는 1960-70년대 대북 흡수통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단정하고 싶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문가들이 진단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여기서 더 첨언을 하지 않겠다.

한 마디로 말해서 매우 우려스럽다 아니 할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대통령)는 같은 민족끼리는 저리 하고 미국과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조여 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남북관계 나아가 통일관의 대종인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이런 방식은 잘못이라는 것은 역사를 통해 배워 알고 있는 터이다. 그가 이런 역사의 교훈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오히려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 민족사를 그렇게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외세에 완전 종속시켜서라도 경상도-기독교-강남부자가 삼위일체가 되는 천년왕국을 건설해 보겠다는 꿈 그것 밖에 머리 속에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삼각관계가 영원히 유지되자면 미일의 절대적인 지지와 보호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역사의 교훈으로 보아도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필부필부의 상식으로 보아도 그는 도가 넘는 민족사관과 국가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는 말이 인수위원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은 여기서 말 할 필요도 없거니와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알고나 사대하라고, 그리고 나아가 우리 자손들에게 더 고통을 남겨주지 않으려거든 미국의 정체를 한 번 알아보기나 하라고 이 글을 쓴다.

 

 

미국은 멕시코를 어떻게 기만하였는가?  

 

1846-1848년 이 기간은 미국 역사상 멕시코 전쟁 기간이다. 멕시코와 미국이 왜 전쟁을 했는가는 잘 알려져 있다. 원래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경계는 누에시스 강(Nueces River)이였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제임스 폴크는 국경선을 150 마일이나 남쪽인 리오 그란데(Rio Grande)로 일방적으로 옮기었다. 이에 멕시코가 그냥 있을 리 만무하고 멕시코는 자기 영역에 들어 온 미국 군인들에게 총격을 가했으며 이에 미국 군인들이 피를 흘리게 되었다.

 

그러자 폴크는 의회에서 “멕시코 군인들이 미국 땅에서 피를 흘렸다”고 보고 하였으며 마치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인 것처럼 보고하여 의원들과 미국 국민들은 흥분하였고 드디어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그 결과 멕시코는 자기 영토의 절반에 해당하는 텍사스, 애리조나, 뉴 멕시코,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코로라도의 일부를 모두 잃게 되었다. 미국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엄청난 땅을 이렇게 기만 행각으로 빼앗은 것이다

 

.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거의 강제로 땅을 강탈해 갔던 것이다.

 

미국의 이런 위장 깃발 행각은 일본으로 독일로 수출 되어 20 세기에 들어와 세계 양차 대전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쿠바를 어떻게 기만하였는가?  

 

다음은 미국이 쿠바에서 어떻게 위장 깃발을 흔들고 기만을 했는지 알아보자.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이 작은 섬 쿠바에 탐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쿠바를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상권 안에 집어넣으려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미국은 자기들이 쿠바를 통째로 삼키기 전에는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되기를 원하지 않아 1890년대 쿠바 독립해방 전쟁에 돈도 빌려주지 않았고 무기도 팔지 않았다.

 

그러나 상상 밖으로 1898년 쿠바가 승리를 하자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는 슬슬 위장 깃발을

꺼내들기 시작한다. 쿠바 지도자들의 의사에 거역하면서 위장 깃발을 흔들기 시작하여 드디어

미국 전함 매인(Maine)호를 쿠바 하바나 항에 보낸다.

 

그런데 이 매인호가 폭파되고 무려 260 여명의 군인들이 전사한다. 데오데르 루즈벨트 미 해군

부참사는 스페인을 규탄하여 “더러운 반역자다운 행동(an act of dirty treachery)”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신문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미국민들을 자극하는 “매인호를 상기하자, 스페인을 지옥으로”란 제하의 글을 연일 보도하였다.

 

드디어 위장 깃발을 흔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즉, 맥킨리는 의회로부터 전쟁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돈을 얻어 내는 데 성공한다.

 

비평가들은 매인호 사건은 완전히 미국이 저지른 자작극이라 했으며, 1976년 미 해군 당국의 자체 조사에 의하면 이 사건은 엔진에 가까이 둔 병기 창고에서 불이 나 폭발한 것이라 한다.

 

해군 자체 조사이기 때문에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스페인이 한 행동이 아닌 것은 분명해졌다.

아마 십중팔구 미국은 그 당시에 이 사건이 탄약 창고의 우연 폭발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우발사고를 스페인과 쿠바를 공격할 수 있는 구실로 삼은 것이다.

 

이제 미국이 흔든 위장 깃발은 한국 전쟁으로 오기까지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하고 공격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이제는 아시아 국가로 그 무대가 옮겨져 필리핀에서 일본을 거쳐 베트남,

한반도 그리고 드디어 아라크에까지 이르게 된다.

 

위장 깃발의 원조는 미국이며 미국은 건국의 초기부터 그리고 멕시코 전쟁 등에서 이 수법을 써먹으며 지금의 그 광활한 땅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이란 나라는 정상국가가 아니라 저열한 수법으로 남의 나라를 위장 깃발 수법으로 강탈해 세운 나라이다.

 

그리고 이 수법을 미국으로 배운 일본은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 써먹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이다. 우리는 미국의 수법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선 더 많은 사례들을 들어 보기로 한다.  

 

미국은 필리핀을 어떻게 기만 하였는가?  

 

1905년 미국과 일본은 소위 카스라-테프트 밀약 맺고 필리핀과 한국을 서로 나누어 가져 먹기로 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 밀약도 체결 20년 만인 1924년 발각되었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미국과 일본은 짜고 고스톱 치는 형국이었다.

일본은 일본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정당하게 침략할 구실만을 찾고 있던 중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단돈 20밀리온 달러로 사들였으나 필리핀이 독립을 요구하자 1899년 맥아더 장군의 아버지 맥아더는 경계 지역에 ‘파이프라인’이라는 것을 설치하곤 보초병들에게 접근하는 필립핀 군인들을 무조건 사살하라고 명한다.

 

1899년 2월 4일 4명의 필리핀 군인들이 접근하자 보초병들은 발포를 한다. 이를 ‘파이프라인 사건’이라 하며 발포 후 6시간 동안 교전이 있게 되며 결국 이것이 전쟁으로 확산된다.

미 국방부 비서는 “2월 4일 밤 타가로스 부대는 엄청나게 수적 우월을 가지고 열악한 필리핀 부대를 공격했으며 피를 많이 흘리고 격퇴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은 “전쟁은 모두 사전에 미리 준비되었고 발포도 미국이 먼저 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이 전쟁에서 25만명의 필리핀 군인들이 죽었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필리핀 섬에서 미국의 비열한 행동에 대해 신의 저주가 있기를”이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개전 명령을 내리던 날 아침 새벽 양심의 가책으로 고민의 고민을 하다 구약 성서에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는 장면에서 생각이 머물러 개전 명령을 내렸다고 술회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이교도를 죽이고 섬멸하는 것은 신이 내린 사명으로 생각했듯이 미국이 필리핀을 공격하는 것은 신의 도성을 건설하기 위한 불가피하다는 영감이 루즈벨트가 받은 영감이었다.

 

그렇다. 미국의 아시아-아프리카 침략은 선택된 민족이 이교도들을 정복하는 것과도 같은 신의 지상명령을 따르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합리화된다. 신의 복음을 전달하는 목적을 위해선 전쟁이란 수단은 합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필리핀 정복의 진정한 목적은 중국 상권을 장악하기 위한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군대(military)와 상권(merchant)과 선교사(missionary)라는 3M은 항상 행동을 같이 하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행위를 항상 합리화시키는 궤변을 조작해 낸다.  

 

 ▲  기독교가 국교인 미국은 양의 탈을 쓰고 양들을 잡아 먹는 늑대들은 아닌가? 
 
문제는 아시아에서 기독교 국가인 필리핀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선교사들을 통해 이런 미국을 불러들인 장본인들이며 미국의 위장 깃발을 뒤에서 숨겨주는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혀 눈치채지도 못하도록 위장하면서 말이다. 신의 의지와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 이런 위장 행위도 합리화될 수 있다고 보며, 이는 구약의 ‘야곱과 에서’의 설화에서도 얼마든지 정당성이 확보되고도 남는다. 동생 야곱이 장자 상속권을 물려받기 위해선 형 에서를 팥죽 한 그릇으로 속이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것이다.

 

 루즈벨트은 2월 4일 새벽 침대에 누워 성경에서 필리핀 침략의 모든 성서적 근거를 찾았다고 리차드 니버는 그의 책 ‘미국의 아이러니’에서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아시아 침략 정책에는 인종 차별적인 요소가 주류를 이룬다.

 

다시 말해서 자기들은 선민이고 아시아 국가들은 이교도들의 나라이기 때문에 정벌이든 학살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합리화될 수 있고 피해 국가들의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이런 짓을 신의 섭리라고 설교한다는 것이다.

 

 이들 목회자들은 전혀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미국이 가져다주는 원조물자와  

리 보장의 기득권에 크게 만족하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승만 같은 친미 기독교인 정치가들이다 

 

나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피 속에 과연 민족혼이 흐르고 있는지 늘 의심한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인들은 80% 이상이 미국의 한 주가 되기를 열망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미국은 신이 축복한 선택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와이에 한 한국 노인이 임종의 순간에 시민권이 나와 죽음의 침상에서 시민권 수여를 받았다고 한다.

 

그 노인의 마지 막 한말은 “미국 시민으로 죽는 것은 천국 직행”이였다.

 

우리는 이명박 당선자(대통령)가 하는 말의 진의를 파악하자면 그의 지역성 그의 종교성 그리고 그의 사회적 계급성을 함께 종합해 판단해야 올바른 결론이 나온다.

 

 무서운 미국 기독교의 제국주의 정신 상태, 바로 그것으로 지금 민족 문제를 풀고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루즈벨트나 된 듯이 말이다.  

 

2008년 02월 08일 김상일 교수

전 한신대 한국철학과 교수, 클레어몬트 과정사상 연구소 한국부 담당  

  
미국의 세계 침략사  (  펌  )

1.세기 최고의 침략국가의 태동

아메리카, 하와이의 원주민의 90%를 학살하며 세운 나라

아메리카 대륙을 얻기 위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의 90%를 학살하였다. 학살의 과정에서 천연두가 묻은 담요를 원주민에게 제공하면서 생화학전의 유례없는 승리(?)를 이룬 미국은 출발에서부터 잘못된 나라였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의 프런티어 정신은 자신의 이익이 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것으로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하와이를 얻기 위하여 미국에게 기대지 않는 원주민의 90%를 학살하면서


ꡐ죽은 자는 말이 없다ꡑ라는 명언을 신봉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국 이후 추악한 형태를 빠짐없이 나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지구의 청부 폭력배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세계침략은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낮은 단계에서는 정치,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가지만, 중간 단계의 침략적 형태로서 불법적 경제제제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경제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달성할 수 없을 때는 불법적인 군사지원뿐만 아니라 군사개입과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고: 전쟁중독(안드레아스)

2.베트남 전쟁-스페인 전쟁과 함께 현대사에서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두 전쟁 중 하나

공산주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우리의 편견과 짐승의 전쟁에 회생이 되었던 우리의 젊은 목숨 때문에 베트남 전쟁은 감히 쉽게 거론하지 못하다가 최근 몇 년간 한겨레신문사를 중심으로 새롭게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는 전쟁이다.

베트남 전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베트남 전쟁은 단순한 이념적 대결이 아니라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독립투쟁과 식민주의, 혁명과 반혁명, 통일과 분열, 자유와 억압, 황인과 백인, 서양과 아시아, 낙후와 현대, 농업과 공업, 원시적 소총과 현대식 폭격, 선입관, 사랑, 증오, 인권, 종교의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1) 1차 인도차이나 전쟁 -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 음모와 미국의 개입

2차 대전으로 인하여 베트남에서 물러났던 프랑스는 2차 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으로 물러나자, 베트남을 비롯하여 인도차이나 반도를 재지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식민지배의 음모를 실행하기 위하여 이전에 베트남에 했던 많은 약속을 파기해버린다. 하지만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고 하였던 계획은 베트남의 자주 민중에 의해서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었다.


결국은 프랑스에 대항하여 베트남 민중의 전쟁이 시작되고 54년 5월까지 프랑스는 40만의 군인을 동원하여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의 음모를 알고 있으면서도 프랑스와 베트남 전쟁을 내란으로 규정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른다.

미국은 정치적인 지원은 물론 군사 경제적인 개입으로 확대하며 프랑스를 지원한다. 22억 8천 500만 달러나는 거금을 전쟁 자금으로 지불하고, 나토라는 군사 동맹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군사적 개입도 계속 시도 하였다. 또한 동남아시아 방위 조약기구를 결성하여 인도차이나 국가들은 보호 지역으로 편입하여 이후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지 위한 틀을 만들어 내었다.

2)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과 전쟁 조작

베트남 민중의 자주적인 힘으로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 물러나자 미국은 민중의 삶을 무시하는 남베트남의 고 딘 디엠 정부를 배후 조종하면서 베트남을 식민지화 하려는 의도를 실행으로 옮겨갔다. 미국의 지원을 받던 디엠 정부는 베트남 민족해방 전선에 의해서 무너지게 되자 미국은 군부 쿠데타로 일어난 자들을 지원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지원하던 정당하지 못한 정부가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미국은 통킹만 사건이라는 조작 사건을 만들어 내고 베트남 전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른다.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개입을 하게 하는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었다.

기밀 해제된 <국방부 비밀문서>에 의하면 ꡐ북베트남에 대한 정교하고 은밀안 군사작전계획ꡑ은 64년 2월 1일 ꡐ34알파 작전ꡑ이라는 암호명으로 개시되었다.

※ 참고 34알파작전 계획의 주된 내용

①U-2정찰기에 의한 북베트남 공역 침입 및 정찰 강행, ②북베트남 내부 정보 수집을 위한 심리작전 및 특수요원(스파이)의 투하, ③정보수집을 위한 북베트남인의 납치와 유괴, ④북베트남 오지 중요시설 파괴를 위한 파괴반 투입, ⑤철도와 교량 파괴를 위한 해상으로부터의 남베트남 군부대의 기습공격, ⑥소형 고속정에 의한 북 베트남 연안시설의 포격

3) 결과 -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 VS 베트남 민중의 자주의지

잘못된 시작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전력으로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인류의 양심을 비웃듯 대량살상 무기와 생화학 무기(네이팜탄과 수많은 비치사성 생물무기, 고사용 화학 무기)를 동원하며 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라는 미국의 패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베트남 민중의 반제국주의 자주역량을 높았다.

 

 결국 지상병력 54만을 동원하며 문명의 석기시대화를 만들어 내려던 미국은 73년에 만신창이가 된 모습 군사간섭을 중지하고야 말았다. 수백년간 외세의 지배 속에서 외세에 기대면 망한다라는 베트남인들의 민족 해방의 신심이 베트남을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정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 베트남 전쟁 (리영희)

3.라틴 아메리카에서 이루어진 수탈과 학살 말행

미국의 세계 침략사에서 중남미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중남미 지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미국의 만행에 대하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중남미 지역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높은 수준의 문명(잉카문명 등)을 물려 받았으며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남미지역의 경제상태는 좋았다.

 

하지만 제국주의자들의 수탈로 몰리면서 그들의 경제상황은 급속히 악화되어갔다. 전체적인 생산량은 높아갔지만 그 나라 국민들의 소비량을 줄어들었다. 질 좋고 값 싼 1차 생산량은 계속 늘어갔지만 이들의 이윤은 미국 기업과 친미 독재자의 배만 불려 주었다.

미국 정부가 만들어내고 지원하는 독재자가 국민을 억압하고, 고문하고, 살인하는 것에 대하여 미국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미국이 그들이 독재자이건 아니건 그들이 쉽게 조종할 수 있을 때 그들은 미국의 ꡐ좋은 이웃ꡑ이 된다. 


일찍이 경제학자 에드워드 허먼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고문과 미국의 원조 사이에 폭넓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투자가의 요구에 맞추기 위하여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수출용 농작물을 생산해야 했다. 그러기 위하여 자신이 먹어야 하는 농지를 줄여야만 했다.

 
더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는 모델로 인하여 GNP는 꾸준히 올랐으나 대다수 국민들은 굶주리고, 교육 등의 공공 서비스는 계속 감소하는 그야말로 ꡒ경제기적ꡓ을 이루어 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 반발을 없애고, 노조나 진보단체를 없애기 위하여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고문과 테러밖에 없었다. 미국의 배후조종으로 중남미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고문과 살인, 테러는 일찍이 보고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은 주로 불법적인 경제 봉쇄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식민지화 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IMF(약소국에만 적용이 되고 미국에는 적용되지 않는) 규정에 이르는 여러 가지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그들의 경제력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독재자에게 군사적인 원조를 진행하거나 군사위협, 군사개입 등을 진행하면서 독재정권을 유지하는데 갖가지 술수를 부렸다.

 

만약 그 정권이 민심과 완전히 떨어지면 다른 대리 정권을 세운다. 미국의 의사를 거슬리는 지도자라면 그 나라를 침공하여 납치하고 그들의 법대로 처벌해버린다.

1)엘살바도르 -미국이 지원하는 독재자의 학살을 고발한다.

엘살바도르에는 아들라카틀(Atlacatl) 부대는 1981년 3월 미 육군 특수부대 학교가 반게릴라전 전문가 15명을 엘살바도르에 파견함으로써 창설되었다. 미국교관들조차 이 군인들은 ꡒ유별나게 잔인하며.... 우리 교관들은 포로들의 귀만 잘라오지 말고 산 채로 잡아오라고 설득하는 데 항상 애를 먹었다ꡓ고 하였다.(노암 촘스키 저,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1996)

1981년 12월부터 이 부대는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대부분이 여자와 어린이, 노인들이었으며 1000여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들은 13세정도의 어린이까지 동원하며 강간, 폭력 등의 나치 친위들의 과정처럼 악마적 심성으로 무장한 군인으로 만들었다.

예수교 잡지 <아메리카>에 실린 군사훈련의 결과를 하나 소개한다.
어느 날 한 농부여인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세 어린 자식과 자기 어너마, 여동생이 식탁 주위를 빙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 자시의 잘려진 머리를 몸뚱이 앞에 식탁에다 조심스레 올려놓고 그 위에 손을 얹고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ꡒ몸뚱이들이 각자 잘려진 자기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ꡓ 엘살바도르 방위군에서 파견된 이 살인범들은 18개월짜리 아기 머리를 똑바로 세우기가 힘들지 아기의 두 손을 아예 머리 위에다 못 박아 버렸다.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큰 플라스틱 대점에는 먹음직스런 국이라도 담긴 듯 붉은 피가 가듣 담겨 있었다. 산티아고 신부(엘살바도르에서 일하던 카톨릭 신부)에 빠르면 이런 소름 끼치는 현장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노암 촘스키 저,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1996)

2)니카라과 - 가난한 자들의 성공을 증오하다.

나카라과에는 소모사라는 학살자가 있었는데 미정부가 지원하던 그는 산디니스타에 의해 위기에 몰렸다. 미국은 자신들의 말을 듣는 독재자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니카라과를 점령할 기반마련을 위하여 소모사의 친위대인 방위군 지휘관들을 적십자 표시가 달린 비행기에 실어 출국시켜주었다.


(전쟁범죄에 해당) 미국은 엄청난 군사비와 아르헨티나의 신나치 장군들을 동원하여 콘트라(테러조직-이름은 자유의 투사)를 배후조종하며 니카라과에 대규모 테러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미국의 세계개발 기구인 옥스팸이 나카라과를 지원하고 있었고, 세계개발은행 등은 나카라과를 지원하여 국민들은 기아상태를 벗어나고, 건강, 교육 등의 인간존엄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었다.


미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이 침탈할 수 없는 경제체제에서는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한 어떠한 성공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첫째, 세계개발은행과 인터-아메리칸개발은행 등에 압력을 가하여 모든 사업과 원조를 중단하도록 하였다. 둘째, 테러조직을 동원하여 갖가지 개혁조치와 경제발전이 물거품이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불매운동을 벌여서 조그만 나라를 철저히 짓밟았다. 셋째, 미국은 정부와 평화협상을 하였으며 전국적인 선거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테러단체인 콘트라에 지원을 세배로 늘렸으며 민주세력인 산디니스타가 선거에서 이기면 경제봉쇄와 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공정하지 못한 선거에서 산디니스타는 40%나 지지를 받았다. 미국의 성공은 니카나과의 불행이었다. 악랄한 학살은 말할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은 철저히 짓밟혔다. 미국은 자신의 말을 들어서 실패로 이어지지만 자시의 말을 듣지 않고 성공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성공을 거두었다.

3)파나마 침략

1_미국의 중남미 전초기지 파나마

중남미 중에서도 콜롬비아와 맞닿아 있는 파나마는, 1903년 운하확보를 명목으로 개입한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한 후 중남미 정부의 감시와 탄압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다. 그러나 파나마는 근래 미국주도하에 자행되고 있는 약소국 인권유린의 역사이다.
19세기말 당시 카리브 해와 태평양을 다같이 세력권에 넣고서 점차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미국에게 운하의 필요성은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콜롬비아로부터 반란을 일으킨 파나마에 해병대를 개입, 독립을 도왔다.

 1903년 파나마와 미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에 의해 파나마는 1,000만 달러와 연간 임대료 25만 달러를 받는 대가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16킬로미터 폭의 운하지대를 영구조차지로 미국에게 임대했다. 후에 운하는 1914년에 완공되었다.


1914년 8월 15일 미국배 ANCON이 운하를 최초로 통과함과 동시에 파나마운하는 미국의 완전주권하에 영유하에 되었다. 결국 미국은 일국의 독립을 담보로 이 전략적인 80Km의 수로와 1,426㎡의 요새를 자신의 수중에 넣은 것이다.

2-파나마 침공(노리에가 체포)

미국은 노리에가 집권당시 파나마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수행 노력을 평가, 수십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파나마와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1972년에 이미 노리에가의 마약 밀매 관련 사실을 알고 있었고, 1983년 미 상원에서는 마약의 근원지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1986년 노리에게가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CIA와 법무부 등은 그를 집중비호 하였다. 1988년 노리에가가 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을 때 단 하나의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1984년 전에 저질렀던 죄이다.


노리에가는 1984년 부정선거로 당선이 되었지만 미국은 적극적으로 비호하였다. 하지만 나카라과의 콘드라를 돕지 않는 등 미국의 눈 밖에 나는 행동으로 인하여 미국은 더 이상 그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1990년 우하 관리권이 이양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친미정권이 들어서야만 했다. 그러기 위하여 미국은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였다. 경제제재를 실시하여 파나마의 경제를 사실상 파괴하였고, 미국은 1989년에는 군사 쿠테타를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결국 자신의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하여 노리에가가 마약 밀수에 개입했다는 혐의 등을 뒤집어 씌워 지난 89년 겨울 파나마를 침공, 노리에가를 체포해 미국법정에 세웠다.


이 사건은 미국의 마약퇴치 명제 하나가 무차별 침공을 통해 약소국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했다는 점,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 의해 응징되고 있는 후세인, 밀로세비치, 그리고 노리에가 모두가 과거 미국의 지지를 받던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결국 정의 보다는 미국의 자국논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참고로 노리에가는 자신이 멕시코 정치모델에 따라 정치를 했을 뿐 마약거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참고자료 :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노암 촘스키)

3.미국의 이라크 침공

1)역사적 배경

중동지역은 유목민족의 특성상 다양한 인종이 존재하였지만 국경선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주요 인종은 셈족, 아리아족, 우랄알타이족이고, 셈족에는 아랍인, 시리아인, 유대인이 있고, 아리아족에는 이란인과 아프간족이 있고, 우랄알타이족은 터키족으로 대표된다. 중동은 유사 이래로 지리적 특성상 '중동을 다스리면 세계를 다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중동지역은 역사의 전개에 따라 계속해서 이합집산을 거듭해왔습니다.

 이러한 중동지역에 가장 강력한 역사적인 사건은 마호메트의 출현으로 인한 이슬람 문명의 탄생이었다.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아랍세계는 하나가 되었고, 다른 문명과 인종도 포용하는 이슬람의 특성으로 인하여 이슬람은 계속 팽창되었다. 이슬람을 침략했던 몽골이나 투르크 역시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어 이슬람은 더욱 확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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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년간 중동 대부분을 통치했던 오르만 투르크 제국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에게 패하면서 중동지역은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에 들어갔다. 그리고 제국주의자들은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하여 인종이나 종교적, 지리적 환경들을 모두 무시하고 중동을 분할하였다. 중동지역의 국경이 자로 잰 듯 직선으로 되어있는 것은 바로 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고, 이후 중동지역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
제1차 세계대전중 영국은 아랍인을 이용하기 위해 아랍국가의 독립을 약속. 그러나 그 후 이번에는 유대인을 이용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국가 건설 인정선언을 함. 그 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아랍연합군이 패배하며 45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

레바논 전쟁
1920년 프랑스는 시리아의 통치를 위해 레바논을 만듦. 그 후 기독교와 무슬림의 의석수를 6:5로 하는 ꡐ국민 협약ꡑ을 만듦. 그러나 기독교 세력이 부정선거까지 하자 무슬림들은 무장 봉기를 일으킴. 그러자 미국은 제6함대 해병대를 파견하여 반대세력을 무력진압. 미국이 무력 개입함으로서 레바논 내전을 더욱 악화 시켰다

쿠웨이트

쿠웨이트는 수백 년간 이라크와 같은 행정구역에 속해 있었고 지리적으로도 이라크에 편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석유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로 쿠웨이트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1960년 쿠웨이트는 영국의 속국에서 독립하게 되는데 미국이 개입하여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부족이 아닌 엉뚱한 부족장을 국왕으로 세우며 친미대리정권이 형성되었다.

2)미국의 이라크 침공

영토문제와 종교간 갈등 등으로 인하여 8년간 이란과 전쟁을 벌여온 이라크는 미국과 쿠웨이트의 정치적,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전쟁을 하였다.

영토문제와 종교간 갈등 등으로 인하여 8년간 이란과 전쟁을 벌여온 이라크는 미국과 친미대리정권인 쿠웨이트의 정치적,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전쟁을 수행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 미국은 이라크를 배후조종하면서 석유를 확보하고 싶어하였다.
1989년 6월 사담 후세인의 초청을 받은 미국 경제 사절단(미국의 거대 석유회사들이 포함되어있는)이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후세인은 미국정부에 전후복구와 이라크 개발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미국 사절단은 투자에 앞서 조건을 내세웠다. 이라크 정부가 대외 채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절단은 후세인 정부가 채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국영 석유산업 민영화'를 제시했다. 후세인이 국가 주권의 상징이자 정권의 돈줄이기도 한 석유산업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정부는 후세인에게 약속했던 23억 달러 차관을 동결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군사적 긴장을 놓이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 언론에는 이때부터 이라크의 재무장을 경계하라는 보도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하여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는 친미정권인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무너뜨리기 위하여 비정상적으로 원유값하락을 주도하였다. 석유

수출국기구(OPEC)의 합의를 깨었기 때문에 1990년 7월에는 원유값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이 쿠웨이트의 반칙에 반발했지만 쿠웨이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이라크와 석유수출기구에서 제안하는 협상도 거부하였다. 조그마한 소국인 쿠웨이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배후조종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3)후세인, 미국의 '불간섭 약속' 믿고 쿠웨이트 침공

이라크는 쿠웨이트의 변심 때문에 피를 말리는 위기에 몰렸다. 원유 수출 가격이 곤두박칠치면서, 빚을 갚을 수 있기는커녕 식량 수입마저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이라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쿠웨이트를 점령하여 원유를 적정가격으로 다시 수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7월27일 후세인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 글라스피를 만나 쿠웨이트 분쟁은 미국의 국익에 무관하며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도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의 군사 작전에 미국은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 담긴 이 날의 면담 기록을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 후에 공개했다.

부시(현 조지 W.부시 대통령의 아버지)는 이 문서가 날조된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그 내용은 1년 후 미국 의회에서도 사실로 인정되었다.


미국의 비열한 침공유도 작전에 이라크는 오히려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 우선 쿠웨이트의 왕족부터 잡아 인질로 삼으려고 하였지만 이미 미국이 사우디로 피신시켜 놓았다. 둘째, 쿠웨이트를 침공하자마자 1천억 달러에 이러는 이라크 자산을 동결하였다. 셋째, 쿠웨이트를 점령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침략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넷째, 미국은 다국적 군을 동원하여 이라크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였고, 엄청난 인명손실과 함께 많은 피해를 입었다.


곤경에서 벗어나려는 이라크는 미국과의 비밀회담 기록을 공개하였고, 사실상의 항복선언으로 쿠웨이트에서 철수 하였다. 하지만 이 항복선언은 어떤 소녀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종합병원 산부인과 병동의 조산아 보육기(incubator)에 들어있는 갓난아이들을 집단 살해하는 만행현장을 목격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이라크의 항복선언은 무효화된 것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항복선언과는 무관하게 계속되었고, 1991년 2월 28일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전을 선포하기까지 이라크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만신창이가 었다. 미국에서 전쟁 지지 여론에 불을 지른 소녀가, 실은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며 이 인터뷰도 날조극이었다는 것은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다.


이후 이라크는 미국의 강도 높은 경제 봉쇄 조치로 인하여 의약품과 식료품조차 수입하기도 힘이 들었으며 이로 인하여 많은 이라크 어린이들이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유엔을 앞세워 이라크를 완전 무장해제하였고, 지난 3월에는 이라크를 침략하여 다시 이라크 민중을 유린하였다. 우리는 전쟁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날조하고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미제국주의자들을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침략 전쟁을 막는 최선의 길은 미국이 이야기하는 거짓된 평화가 아니라 그들을 타격할 수 있는 무력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남 따라 장에 가면   남미의  가장 타락한 자본주의인 공산주의 같이 몇명만 배불리고 대다수가 고통받는  

타락한  자본주의로  전락하게 됩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  속지 말고 

일본놈  일어 서니                                 조선사람  조심 합시다. 

 

해방 후 널리 회자된던 말이죠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10046


덧글

  • 박구위瓠公 2010/09/04 08:12 #

    미국 없이 중국 북한 일본을 다 견제할수 있을까요?
  • 정론직필 2010/09/04 10:20 #

    그런 질문은 마치.....

    한반도를 식민지로 처먹고자 하는 왜놈들을 두고
    힘센 왜놈 국가를 힘약한 조선왕조가 버틸 수 있을까요???

    (그러니 나중에 기회를 보기로 하고, 일단은 조선왕조를 왜놈들 식민지로 넘겨줍시다.)

    라고 하는 것 같다.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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