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와이드(336x280)_상단 2개


대한민국 애국가 - 그 유래 역사 문제

대한민국 애국가 - 그 유래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왼쪽 가슴에 손을 얹는 동작도 미국식이라고 하네요.

김일성과 백범 김구 선생의 차이

위 두 사람의 공통점은....그들 모두 항일무장독립투사라는 점이고,
차이점은 김구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였던데 반해
김일성은 "민족대단결"을 부르짖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였다는 점입니다.

사실 당시 항일독립운동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사실 공산주의 계열이었고, 민족주의 계열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택동을 잡으려 들었던 중국 장개석 국민당 계열은 사실상 일제에 협력하던 자들이었는데
그런 국민당 계열과 긴밀한 관계를 갖었던 것이 바로 민족주의 계열이었고
일제와 적대적 관계였던 모택동 계열과 가까왔던 것이 바로 공산주의 계열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다른 특징은.....김구를 선두로 한 민족주의 계열은
무장병력은 거의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어서 실제 항일독립무장투쟁을 별로 해본 적이 없고
그저 고작해서 안중근 등을 비롯한 "테러적" 방법에 의한 독립운동을 주로 한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하여, 공산주의 계열 독립투사들은 실제 강력히 무장된 군대를 거느리고
일제에 맞서 무수한 전투를 벌인 것 같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차이가.....일제패망후 한반도에서 권력장악 과정에 있어서
김구와 김일성의 운명이 갈린 결정적 요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즉, 김일성은 무장된 부대를 이끌고 북측 지역으로 들어와 진주하며
일제군대를 무장해제 시키며 실권을 장악해간데 반하여
김구 선생은 무장병력이 없어 비무장 상태로 남한에 들어와
미국의 방해공작 책동들로 온갖 고초를 겪다 결국 암살당하고 말지요.

김일성 회고록을 약간만 살펴보아도....
그가 일반 대중들의 지혜를 얼마나 신임했으며
일반 대중들의 신임을 얻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아는 사람 같습니다.

즉, 김일성의 항일독립투쟁 조직들을 건설하고 운영해간 과정들을 살펴보면
마치 원불교 교주인 대종사 박중빈을 연상시킵니다.

원불교 교주 박중빈도 도통 이후에....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물이지요.
그리고 놀라운 지혜와 통찰력으로 대중들을 조직해 나갑니다.
(참고: 나는 원불교 교전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그러나 원불교 신자는 아님을 밝혀둡니다)

[2/2] 참고   61.101.186.200 작성일 2010년9월5일 10시35분

친일파 작사/작곡 애국가

지난해 10월 모처럼 뉴욕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마침 지난해 1월에 작고하신 고 임창영 박사의 추도식이 거행되어 참석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고 임창영 박사는 1930년 도미하신 이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시고 4.19혁명이후 수립된 민주당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역임하셨으며 5.16쿠데타로 제2공화국이 무너지자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미주동포사회의 원로이셨습니다. 평소 박사님과 함께 투쟁해 온 동지, 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인의 애국충정을 되새기는 귀한 자리였으며 특히 생전에 박사님과 직접 교분을 나누셨던 여러 원로들께서 각가지 일화와 말씀들을 전해 주심으로써 후배들에게 교훈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보스턴에 계신 박기식 선생께서는 임박사와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임박사께서 동향 2년 선배로 미국에도 2년 먼저 오셨기 때문에 안선생이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는 동안 여러모로 편의를 돌봐주셨으나 미국에서도 계속 일본식으로 표기된 ‘애끼따이’(Ekitai)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나무라셨다고 합니다. 고 임창영 박사에 따르면 청년 안익태의 소원은 ‘어전 즉 일본천황 앞에서 첼로 독주를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년전 박기식 선생께서 유럽 여행 중 안익태 선생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여생을 마친 스페인 마욜타섬 팔마시를 방문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팔마시가 안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한 ‘안익태 거리’의 스페인어 표기도 일본식인 ‘애끼따이’(Ekitai)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환상곡> <애국열사 추도곡> 등을 작곡한 세계적인 작곡가, 지휘자로 57년 문화포장을 받고 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일본식 표기인 ‘애끼따이’(Ekitai)라는 이름으로 생을 마치셨다는 사실은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애국가의 작사자는 미상으로 알려져 있으나 윤치호 선생의 작품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윤치호 선생은 1881년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을 다녀온 후 미국에 유학해 신문학을 공부하고 서제필 박사와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 『독립신문』의 제2대 사장을 역임했으며 대한자강회 회장, 대성학교 교장으로 교육사업에 힘쓴 우리 민족 개화기 선각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변절해 귀족원 의원을 지냈으며 해방 후 친일파로 규탄받자 46년에 자결하셨습니다. 생전에 윤 선생께서 “내가 작사자라고 하면 누가 애국가를 부르겠는가”라며 자신이 작사자임을 밝히지 말도록 당부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3·1절 제7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항거했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우리는 각종 행사들을 거행하며 애국가를 부를 것입니다. 노래를 비롯해서 모든 예술작품들은 일단 창작된 다음에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의 것이라고 하지만 애국가의 작사자가 친일파이며 작곡가가 죽는 날까지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1945년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3·1독립운동의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지 못하고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해방 50년이 넘도록 우리 민족의 현대사는 굴절된 채 아직도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대사가 이처럼 잘못된 것은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서부터 비롯됐습니다. 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구성된 국회의 반민특위는 친일세력의 견제, 이승만정권의 외압, 친일파 경찰들의 반발 등으로 발족 1년만인 49년 8월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친일행각에 대한 단죄는 겨우 집행유예 5명, 실형 7명, 공민권 정지 17명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실형을 받은 7명도 50년 봄 재심청구로 모두 풀려났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국가들의 전후 청산작업과 비교하면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당한 기간이 3년 미만인데도 사형 2,071명, 징역형 3만9,900명 등 나치에 협력한 자들에게 무자비한 형벌을 가했습니다. 벨기에에서도 5만5,000여명, 네델란드에서 5만여 명에게 징역형이 내려졌습니다. 패전국인 독일도 전후 30년 동안 9만여 명을 기소해 5,000여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으며 일본도 21만 명을 공직에서 추방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40년이 지난 85년 나치 게슈타포의 리옹 지역 총책 바르비가 프랑스 정보기관에 체포되면서 “과거는 과거다. 이제 과거는 역사 속에 묻어버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법정은 수많은 레지스탕스와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인간백정’을 용서하지 않고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며 그로부터 9년 뒤인 94년에도 게슈타포의 밀정이었던 투비에에게도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친일세력들은 청산되기는커녕 해방된 조국에서 오히려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정부수립 후 초기 행정부처의 과장급 이상 고급공무원 625명 중 47.5%가 일제 관료 출신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일제 관료 출신 중 4명이 장관, 15명이 차관을 지냈으며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의 경우 76.2%에 달했습니다. 이승만정권의 친일파 등용은 일제에 기생했던 대 지주와 상업자본가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일본 육사출신인 박정희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져 우리 민족은 친일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결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일제에 항거했던 3·1정신을 올바로 계승함으로써 친일잔재를 청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분단 반세기를 극복하고 통일된 새 나라를 건설해 친일파 작사, 작곡이 아닌 통일조국의 자랑스러운 애국가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1997.3.1>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10132

덧글

  • Cicero 2010/09/05 11:11 #

    국기에 대한 경례의 현 목례방식은 기존의 배례방식이 일본식인데가 특정종교 교리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해방이후 1공화국기에 교체된겁니다.
  • 정론직필 2010/09/05 11:17 #

    그러니까.....전에는 왜놈식었는데
    미군이 남한을 점령한 뒤로는 미국식인 개독교식으로 바뀌었다는 말로 들리네요.
  • Cicero 2010/09/05 11:25 #

    자체적인 근대화시기가 없던 국가의 입장에선 당연한 결과죠. 이전에는 국기나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지침이 없었으니 이전의 전통을 참조할순 없고, 그렇다면 기존에 있는 방식을 참조해야 할텐데, 일본의 유산을 택하는 것보단 차라리 입헌국가의 사례를 택하는수 밖에요. 게다가 굳이 핵심적이지 않은걸 두고 종교와 충돌할 필요도 없잖아요?
  • 정론직필 2010/09/05 11:48 #

    네...
    경례방식에 대해서는 사실 나도 별로 관심 없는 문제구요.

    다만, 중요한 것은....국기인 태극기 제정과정과
    애국가 제정 과정이 면밀히 재검토 되어 수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도 초기에는 태극기를 사용했음을 보면
    김일성도 항일무장독립투쟁 시절에는 태극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따라서 통일한국에서는 삼태극 등을 고랴해 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
    물론, 당연히 애국가 자체는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배례의식도 다시 검토해보고...
  • softman 2010/09/06 09:34 #

    국기를 향하여 경건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배례하는 현재의 의식이 매우 좋다고 생각 합니다.
    일본도 미국도 호주도 국기에 대한 배례에 일정한 지침이 없는것 같습니다. 애국심을 고취하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준다고 봅니다. 특히나 어려서부터의 훈련은 성인이 됐을때의 마음 가짐에
    좋은 영향을 미침다고 봅니다. 새로운게 좋다고
    마누라 빼놓고는 전부 바꿔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은 호의호식하고 남들이 자신을 시기한다고
    불만인듯 합니다. 안익태가 친일분자라고 했습니다. 친일분자가 만든것은 애국가로써 부적당하다?
    일본의 기미가요인지 애국가인지를 몇번 들었습니다만 애국가는 마음에 와닿는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 중국의 혁명가요를 애국가로 채택하겠습니까.?
    묵은솔이 광솔이야 하는 말이 있던데...

    태극기도 바꿔--
    어때서- 보기 싫어서-
    피카소는 당대의 거장입니다. 태극기엔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천지를 아우르는 의미가 있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조상대대로 이어온 우리민족 나라를 이목숨 다하도록 사랑 합세다.
    얼마나 좋습니까?
  • 정론직필 2010/09/06 10:17 #

    글쎄.....
    친일매국노 놈들이....양심에 털이 났는지 글쎄....
    독립투사들 영정 사진을 그리지를 않나....독립운동가 기념관 현판글씨를 쓰지를 않나..
    아니면, 애국가를 만들지를 않나....ㅉㅉㅉ

    나는....친일매국노들이 만든 모든 것들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일제잔재적 건물들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은 철저히 이 땅에서 제거되어야만 합니다.

    진정한 자주독립국가라면....그에 걸맞게 새로이 만들면 됩니다.
    단, 친일매국노, 숭미사대 매국노들이 그것을 만들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왜냐면 그들은 민족정신이 이미 썩은 자들이기 때문이지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바보들의 영문법 카페(클릭!!)

오늘의 메모....

시사평론-정론직필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sisa-1

바보들의 영문법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babo-edu/

티스토리 내 블로그
http://earthly.tistory.com/

내 블로그에 있는 모든 글들과 자료에 대한 펌과 링크는 무제한 허용됩니다.
(단, 내 블로그에 덧글쓰기가 차단된 자들에게는 펌, 트랙백, 핑백 등이 일체 허용되지 않음.)

그리고 내 블로그 최근글 목록을 제목별로 보시려면....
바로 아래에 있는 이전글 목록의 최근달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제목을 보고 편하게 글을 골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블로그내 글을 검색하시려면 아래 검색버튼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가가챗창

flag_Visitors

free coun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