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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 친일매국노 -이승만 -미군정 역사 문제

반민특위 - 친일매국노 -이승만 -미군정

친미 끄나풀 노릇을 하던 자들을 이라크 대통령으로 내세워
이라크 꼭두각시 정권을 막후에서 조정하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겉보기에는 현재의 이라크 대통령은 "자유직접 민주선거"에 의해
이라크 국민들에 의해 직접 뽑힌 자주독립국가적 대통령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건 모두 미국의 공작에 의해 이라크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는 결코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운명이다.

얼마전에 오바마가 이라크내 전투부대를 모두 철수시킨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직접 전투를 하는 부대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라크 국정을 막후조정할 수 있는 담보력으로서의 미군은 앞으로도 계속 주둔시키겠다는 말이다.
아마 2~3만명 규모의 미군은....앞으로도 이라크에 계속 주둔하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은....일제패망후 한반도 남쪽에서 벌어진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말하자면.....당시 이승만은....현재의 이라크 대통령과 정확히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런 이승만을...한국의 "국부"니....당시 정부수립일을 "건국절"이니 등으로 부르자고
주장하는 자들은 아마 친일매국노들 후손들이 틀림없을 것이다.

서프에 반민특위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서 아래 소개한다.

[기획]이북정부와 그 정체성을 알아본다④

"친일파 청산하고 민족정기 살려 온 민족구심이다

‘반민족행위처벌법기초특별위원회’(약칭 반민특위)의 폭력적 와해


‘반민족행위처벌법기초특별위원회’(약칭 반민특위)는 미군정에 의한 이승만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1947년 친일잔재청산을 위하여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 법안이 미군정의 동맹세력인 친일경찰, 친일관료, 친일정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준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친일파 청산의 과제는 남한 정부수립 후로 넘어가게 되었다.

 
반민특위 구성후 초기에 친일분자 재판모습
남한 국회는 처음에는 남한 민중들의 요구를 의식하여 1948년 8월 헌법 제101조에 의거하여 국회에 반민족행위처벌법기초특별위원회를 구성되고, 이어 9월 특별위원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일단 통과시켰다.

이 법에 의하면 국권피탈에 적극 협력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의원이 된 자,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박해한 자는 최고 무기징역 최하 5년 이상의 징역, 직•간접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재산몰수에 처하도록 하였으나 이것은 형식에 불과했다.

일단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5일 중앙청 205호실에 사무실을 차리고 8일 박흥식을 체포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자 이승만은 담화를 통하여 견제하기 시작했는데, 그 요지는 반민특위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반되며 안보상황이 위급한 때 경찰을 동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장(반민특위특별재판부장) 김병로는 반민특위활동이 불법이 아니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정부의 협조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은 계속 비협조로 일관하더니 2월 24일 반민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반민법 법률개정안을 제2회 39차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결과는 부결되었으며, 특위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 특위의 활동성과는 총 취급건수 682건 중 기소 221건, 재판부의 판결건수 40건으로, 체형은 고작 14명에 그쳤다. 실제 사형집행은 1명도 없었으며, 체형을 받은 사람들도 곧바로 풀려났다.

결국 미국과 이승만 세력은 폭력을 자행해서라도 친일파 청산을 가로막아야 한다는 심보였다. 그 결과 반민특위는 국회프락치사건과 6•6경찰의 특위습격사건을 겪으면서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국회프락치사건이 친일파 척결의 주도세력이었던 소장파의원들을 간첩혐의로 체포함으로써 반민특위를 위축시켰다면, 특위 산하 특경대에 대한 경찰의 습격반민특위의 폐기법안을 통과시키게 함으로써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벌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이북 동포들이 1946년 친일매국노들을 심판하라고 촉구하는 시위
이승만 세력과 미국은 남녘 민심과는 거리가 먼 행위로 나갔다. 8•15광복 직후 무엇보다도 신속히 친일파를 척결함으로써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초기에 기회를 놓쳤고, 이후 미군정은 남한에 반공국가를 수립하여 미국의 패권주의를 확장하기 위하여 이북 사회주의세력에 대항한다는 구실로 친일파를 등용하여 이용하려고 반민특위 활동을 반대했다.

따라서 친일파의 청산은 미국의 국익과 배치된다는 논리에 의해 진전되지 못했다.

이러한 논리로 미군정은 일제강점기의 통치구조를 부활시키고 친일파를 대거 등용하였다.

이어 이승만 정권을 하수세력으로 내 세워 미군정의 통치구조를 그대로 이어받게 하였고, 친일파를 기용하여 이승만의 정권장악을 도모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도록 공작했다. 또 이를 위하여 이승만은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고 무력화시켰다. 그 결과 친일파 청산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반민특위의 활동은 실패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친일세력이 그 후에도 남한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길을 열어준 것은 물론이고, 남한 민족주의의 좌절과 단절을 맛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10184

▲ 박정희는 청와대 시절 일본 군가를 부르는 등 자주 '일본 향수'에 빠졌었다고 한다.
사진은 박정희가 60년 후반 청와대에서 말을 타는 모습. (출처: http://blog.daum.net/rlawjdgml1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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