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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봉건시대는 정말로 "암흑시대"였는가??? - zandy 정치, 경제, 사회

중세 봉건시대는 정말로 "암흑시대"였는가??? - zandy

서프 국제방에 잔디님의 좋은 글이 있어 전문을 퍼다가 아래 소개합니다.

변곡점
번호10959  글쓴이zandy  조회364  누리129 (129-0, 9:14:0)  등록일2010-9-17 02:12

1.
유럽의 중세시대, 소위, 우리가 알고 있는 <암흑의 시대>가 있었다. 종교가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서 인간을 유린하고 소위 <마녀사냥>이라는 것을 일삼던 시대이다.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논하기 위해 중세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암흑의 중세시대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그 당시 서양인들에게 어쩌면 가장 복된 나날들이 아니였을까 하는 점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현재의 유럽을 장식하는 거의 모든 건축물들이 언제 건축되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로, 그 암흑의 중세시대때 건설되었다. 어떤 문화적 장르의 차이가 있을 지라도 시대적 구분에 있어서는 중세라는 그 암흑의 시대에 그 <찬란한 문화유산>들의 대부분이 건설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중세시대때, 유럽의 대부분의 평민들의 경우, 일년에 1/4만의 노동을 하여도 나머지 3/4의 기간 동안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소위, 요즘식으로 하자면 일주일에 2일 일하고 나머지 5일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반대로 5일 일하고 2일을 쉬는 개념이다. 그것도 최근에 와서야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고육지책의 일환 중 하나의 시스템이다.  

하여튼, 중세시대때는 일년의 3/4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에 <무료>로 종교사원이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건립하는 일에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자원봉사가 <천국으로 가는 티켓>의 일종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시절이었음으로 순수하게 <자발적으로>그러한 일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지금의 유럽을 장식한 그 거대한 건축물들이 대부분이 거의 중세시대때 건립이 되게 된 것이다. 

자, 위의 얘기를 듣고 나면 한가지 드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일년의 1/4만 일을 해도 나머지 3/4을 먹고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 당시에는 왕과 귀족들, 그리고, 종교적인 권력자들 몇명만 먹여살리면 되는 구조였고 그 외의 시스템에 있어서는 거의 <착취>가 없는 <경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제 시스템의 요체는 <현물 거래>였었고, 기껏해야 왕에게 받치는 세금에 대한 편리성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된 <부절 시스템> 뿐이었다. 부절 시스템이란, 세금을 납부하면 그 납부 증명서로서 나무조각을 반으로 쪼개서 납세자와 정부가 각각이 한 조각식을 가지는 시스템이다. 일정한 크기의 나무를 세로로 자르기 때문에 거의 <위조>가 불가능하고 경우에 따라서 이 부절 조각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납부한 세금양만큼 <매매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부절 시스템이니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물 거래가 주를 이루다 보니 중간에서 삥땅 쳐먹는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즉, 누군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는 일이 없다보니 각자가 자신의 노동의 댓가만큼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보니 결과적으로 일년에 1/4만 노동을 해도 그 나머지는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세시대와 지금을 한번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금은 소위, 부부가 열심히 잔업 특근까지 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금의 이 시스템과 중세시대의 그 시스템의 차이는 <중간에서 누군가 농간을 부리는 것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교환>의 개념이 <돈>이라는 지폐로 바뀌면서 사기꾼들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결국, 그 조그마한 틈은 전세계 상위 1%가 전세계 부의 70%를 장악한 결과로 나타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난한 자일수록 돈은 더 궁해지는 시스템이 정착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의 머리위로 하루에 2500조의 돈이 휙휙 날아다니고 있지만 그 돈의 주인은 언제나 정해져 있고 그들이 부자가 될수록 우리의 <노동>의 양은 많아지는 시스템을 지금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가 암흑의 시대라고? 그것은 지금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당신을 마취시키는 말이라고 생각해라.  

일년에 1/4만 일해도 되는 시대와 일년 365일 일해도 점점 가난해지는 시스템을 비교하면 어떤 시스템이 더 <인간적>이고 더 <행복을 추구하는 시스템>인지는 명확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중세 시대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우리를 교묘하게 <속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더 나은 시스템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시스템으로 나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은폐하고,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참하게도, 그 세력들이 지금의 우리 머리 꼭대기에 눌러앉은 그 <기득권들>이라는 것이다.  

2. 

대나무가 자란다. 하나의 <마디>가 생성될 때마다 그것은 더 위로 자란다.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스템은 거꾸로 자라고 있다. 그 <거꾸로>의 핵심에는 <거짓>이 자리잡고 있다. 모두 거짓을 참말로 알아듣는 <충실한 노예의 뇌>를 교육 <받아>서 그 거짓말은 우리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 그 거짓말은 그래서 참말이 나타나면 <거부>반응을 일으키거나 굉장한 혼돈과 혼란을 우리 뇌속에서 야기시킨다. 

어쩌면 우리는, 솥 안에서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며 구워 삶아지는 그 개구리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중세시대때 가능했던 일들을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 두세명이 헉헉 거려도 안되는 그런 시스템에 살면서도 스스로 발전했다고 자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굉장한 왜곡임에도 불구하고 그 왜곡을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물의 온도가 올라가는지 모르는 개구리는 결국 삶아지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짓말에 길들여진 우리의 <뇌>는 서서히 삶아지는 그 개구리의 모습인 것이다. 

3. 

동학의 제 2대 교주 최시형은 이렇게 말했다.  

" 눈에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소위 말해서 양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음수다. 인간은 음수인 공기를 눈으로 볼 수 없다. 반대로 물고기는 음수만 볼 수 있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양수인 물을 보지 못한다. 즉, 물고기들의 눈에는 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동학의 제 2대 교주 최시형은 또 이렇게 말했다. 

" 인간은 양수인 물은 볼 수 있지만 물의 나머지 절반인 음수의 물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산 위의 연못에 물이 괴이는 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아래로 흐르는 물의 양수적 측면은 인간이 볼 수 있지만 음수로서 전환된 <위로 흐르는 물>은 인간이 볼 수 없음으로 <산 위에 물> 이라는 괴상한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물이 산 위로 <기어 올라갈 수 있는가?> 

물은 그렇게 <올라 갈 수 있다>. 다만, 인간이 제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양수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음수의 영역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서 우리는 이것을 <기화>라는 화학으로 처리한다.  

4. 

인간은 하늘이 될 수 있는가?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고 우리 <시대>가 인정해 줄 수 있는가? 당신이, 거짓의 교육으로 거짓말만 머릿속에 꽉 채운 당신이 인간이 곧 하늘이다, 라는 말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 말이다. 나는 이 물음에 대해 결단코 자신 없다, 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금은 이야기 하고 싶다.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자 내 개인의 진실한 <속>이다. 

5. 

<시대>와 <나>가 이렇게 <샴쌍둥이>로 서로 나뒹굴고 있다. 시대가 문제고, 그 시대 못지 않게 <나>가 문제다. 시대도 깨이지 못했고, 그 시대를 이렇게 깜깜한 절벽으로 몬 개인, <나>가 더 깨이지 못했다. <민주>니, <자유>, <평등>이니 하는 <거짓말>은 공기처럼 우리 주위를 감싼다. 우리는 오직 그 도덕 교과서적인 <말들의 향연>에 취해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가 민주니? 어디가 자유니? 어디가 평등이니? 다 <말>들 뿐이다.  

그토록 믿었던 <야당>이나 <진보적 시민단체들>마저도 그 시스템 안의 어떤 역할을 부여받은 하나의 또다른 <거짓말>임을 알았을 때 나는 거의 절망할 뻔 했었다. 태양은 빛나지만 우리의 태양은 검은 태양이였다는 것이 이 땅, 또는, <개인>의 불행의 시작점일 것이다. 

6. 

대나무의 마디가 선명해지면 그 다음은 <분명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남한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계가 변하지 않고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씩 근본적인 토대에 쩍쩍 금이 가는 형상이다.  

미국이 남한을 점령하고, 일본에 복무했던 기득권들을 그대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요직에 앉힌 그날부터 남한의 운명은 미국의 <사냥개>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 사냥개는 <사냥해야 할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주인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주인이 지금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에 빠졌다. 남한 입장에서는 발생해서는 안될 두 가지 중요한 상황 중의 하나가 발생한 것이다.  

발생해서는 안될 두 가지 상황이란, 첫째, 미국이 북한의 사냥을 끝마치는 것.... 그 사냥이 끝나면 남한은 소위 <토사구팽>의 지경에 몰린다. 즉,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구워삶아지는 것이다. 즉, 남한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인 미국의 입장에서는 목표를 달성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썼던 사냥개는 더 이상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에 의한 미국의 굴복이다. 이 경우, 남한의 <친일 세력들>은 거의 정리된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남한 자체도 그 생명력을 다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이 <생존>하기 위해서 조성해야 할 가장 최선의 환경은 미국이나 북한이나 서로 잡아먹을 수 없을 만큼의 <으르릉 거리는 상황>이다. 이 경우에만 남한 정권이 살아남는다.  

그런데, 좃나게도 지금 그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게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어느 한 쪽이 뭔가를 해치울 자세다. 남한으로서는 가장 곤혼스러운 상황이다. 특히, 기득권인 일제 부역자들의 입장에서는 입이 바짝 바짝 타 들어가는 상황이다. 미묘한 상황의 <추>가 어떤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리는 순간 남한이라는 나라가 없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사진은 <사냥개>인 남한의 입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다.  

1975년 8월말 한국을 방문,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한 슐레진저 당시 미 국방장관이 왼손에 담배 파이프를 들고 양복을 풀어헤친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습니다  (서프라이즈 국제방 <오만방자>님의 글과 사진 일부를 도용했습니다. 원글의 저자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1975년 슐레진저 미 국방장관이 남한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다. 손에 담배 파이프를 들고 있다. 남한은 그런 <처지>인 것이다. 9시 뉴스만 시청하는 남한의 무지한 국민들은 자신들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어떤 한쪽으로 무게추가 기우는 순간 남한은 어떤 경우든 <없어지는 수>에 해당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음수>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산 위로 기어올라가는 <물>의 역할인 것이다. 좋은 것은 마다하고, 나쁜 것만 취하는 그 버릇에는 소위 말해서 <무지>의 <만용>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눈으로 보는 것이 모든 것이고 진실이다라는 그 고집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눈은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눈이다. 그리고 그 눈은 남한 정부가 전달하는 9시 뉴스에 길들여진 눈일 뿐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측면, <음수>는 보지 못하는 눈인 것이다. 가볍게, 가볍게, <산 정상>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머릿속 나쁜 교육의 외침>에 발목이 잡혀 <노예>의 길을 연명하는 것이다. 

7. 

<핵>은 60년간의 분단이라는 <균형>의 <추>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 다음은? <추의 자유 낙하>다.  

8. 

사냥개로 삶아지는 경우도 비참하지만, 사냥개로서는, 사냥개로 사냥 당하는 경우가 가장 비참하다. 지금이 꼭 그런 상황의 시작점이다. 변곡점인 것이다. 대나무의 마디 부분이다.  

9. 

<북>은 이제 어떻게 할 수 없다. 60년 간의 남한의 <행복>은 북한의 <핵>이라는 것 하나로 끝난 것이다. 시계는 미국편도 아니고 더더욱 남한편도 아니다. 왜냐하면, <핵>을 가진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뻔하다. 주인이 죽든지, 사냥개가 죽든지, 아니면, 둘 다 죽든지. 

10. 

<변곡점>이다. 각자 개인적으로 잘 알아서 처신해야 할 <대나무의 마디>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10959


잔디님의 글에서....사회시스템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그 문제와 관련하여.....현재 한국사회 시스템이
돈없는 서민들에겐 얼마나 지옥같은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서프 글 하나를 링크로 소개하겠습니다.
참으로 우울하고, 좌절스러운 글입니다.

행복한 대한민국...만세.!!!!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10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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