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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미국에서 전해드리는 소식(결) / 슬픈미소 종교 개혁

(펌)미국에서 전해드리는 소식(결) / 슬픈미소

서울의 4대문 안과 밖, 그리고 서울에 우마차가 다니던 시절을 기억하시는 재미동포라니
아마도 매우 연로하신 분이 쓴 글 같습니다만.....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여기에 퍼옵니다. 요즘 젊은 분들에게는 약간의 참고라도 될까하여....


미국에서 전해드리는 소식(결) / 슬픈미소 - (서프라이즈 / 구팽 (niebuhr7) / 2010-9-25 09:39)

미국에서 전해드리는 소식(결) / 슬픈미소


지금 밖엔 비가 내립니다.
어제까지는 비가 바람을 몰고 오더니
온 종일 우중충한 날씨의 고요함이 청승맞기까지 합니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의 나뭇잎은 본격적으로 옷색갈을 바꾸겠지요.
      -----------                                     -------------

가화만사성 님과 저는 어린 시절 태어나기는 같은 시간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죽을 때는 함께 죽자는 맹세를 했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통하면서도 의기가 통했지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냥 웃어 넘겼지요.
그러나 우리가 의기가 통하고 뜻을 함께하게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의 뜻을 세우게 된 동기를  두 집안의 식구들 모두가
전혀 알지를 못했습니다.


당시의 선생 님들께서는 거의 모두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교과서에서 이미 없어져 버린
귀한 사실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런 우리민족의 역사를 배우면서 자부심을 또 한편으로는 울분을 
느끼곤 했었지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

당시의 서울의 인구가 얼마되지를 않던 시절,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대문 밖의 둥그래산 (아현동 굴레방 다리라는 곳 가기 전)
남대문 밖 
동대문 밖 숭인동?
돈암동 전차 종점
경무대 뒤 자문 밖
이곳을 문 밖이라하고,
이곳에서 시내로 들어 오는 것을 문안 간다고 하던 시절,

서울의 한 복판에서는 검은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무슨 말을
한국인 통역을 통해 열심히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선교를 하는 서양의 목사, 또 신부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는 첫마디가 여러분들이 말하는 단군은 미신이다.
죽어서 지옥가지 않으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통역을 맡은  한국인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치도록 유도 했습니다. 
박수를 치면 박수를 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먹을 것이라야 거칠게 갈린 옥수수가루 한 컵 정도 였습니다.
참 비참하고 당장 때울 끼니가 없던 시절
이 보잘것 없는 것은 이들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또 오늘 밤 어디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면
또 이 먹을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최면에 걸린 아니 스스로 이유도 뜻도 모르는
마비된  존재로 변해 갔습니다.
이것을 뭐 특히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후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어떤 말(정보)을 수집하기 시작 했습니다.
누구네 집에는 오래된 대대로 전해지는 족보가 있다,

또는 오래된 그림이 있다,
오래된 글씨가 있다,
오래된 어떤 물건이 있다,
심지어는 자기가 가본 어디에는 무었이 있다등,

한 예로 서울의 지금 교남동 부근의 무슨 비(비석)가 있었지요.
글씨가 패이고 일부 깨진 것이었는데
저 자신 그비가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이 비는 이들이 가져갔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 정보에 의한 것을 
어떤 방법으로던지 수중에 넣었습니다.
이같은 일들이 벌어지기는 지방도 같았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 한복판에는 우마차가 주요 교통 수단일 때였습니다.
종로 한 복판 전차길을 가로 질러 거름을 실은 우마차가 다녔지요.
즉 소가 끄는 똥 마차지요.

우리는 정동에서 이 외국인 선교사들이 수십대의 우마차를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오래된 문화유산들을 싣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들은  인천을 통하여 해외로 가져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6,25 후
여의도 미군 비행장이 있던 시절
군용기에 무지막지하게 실려가는
우리의 문화재를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없지만
동종, 불상 도자기등 수없이 볼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선생 님께 말씀을 드리기도 했는데
선생 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실 뿐이었습니다.

(당시 눈물을 흘리시던 선생 님(김 진영)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뜻을 세워 죽기를 맹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화만사성 님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혼도 모두 훔쳐 갈 것이다.
이들로 부터 지키고 약탈 당한 우리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을 알아야 한다.
이들을 이겨야 한다 였습니다.

가화만사성 님은 천재 였습니다.
가화만사성 님이 미국으로 유학을 오시게 된 동기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해방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신
안호상박사님께서는  많은 조언도 해 주셨지요.

지금의 어떤 분은 이런 말도 했어요.
배부르니까 꽤나 할일도 없다고
지금도 생존하는 유명인사지요.

어떤 젊은 분은 이런 가화만사성 님을 고리타분한 사람이라고 하기도 했어요.
공교롭게도 이곳 미국의 대학에서 가화만사성 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가화만사성 님은 우리의문화재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확인하거나
확인이 안되면 자세히 기록하여 보관했습니다.

3년전 제가 참 힘든 일을 격을 때 이런 말을 했어요.
미국의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는
일본이 가지고 있는 것의 10배가 넘는다고....

여러분
제가 뭐라고 과거를 설명해야 할까요?
사실 저의 식구 형제들도 실은 제가 미국에서
한국 말을 하는지,
쏘련 말을 하는지,
벙어리가 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말을 잃어버린
무뇌인 으로 생각 할지도 모르지요.

묘하게도 같아도 
가화만사성 님과 저는
이렇게 같을 수가 없어요.
돈버는 재주 없지요.
가지고 있는 우리의 뜻을 버릴 줄도 모르고,
융통성 없기도 똑같지요.
우리가 6개월,  1년 또는 2년만에 만나면 하는 말이 있었어요.
이번 생은 돈을 버는 재주가 없어 뜻을 펴지 못했으니
다음 생에는 돈버는 기술을 배워서 뜻을 이루자구요.

가화만사성 님에겐 두분의 자제가 계십니다.
두 자제분은 가화만사성 님이 핏덩이를 데려다 키운 자식인데
한국혼을 잊은 미국인이 되어 있지요.
그것을 가화만사성 님은 제게 항상 미안하다고 했지요.
먼저간 가화만사성에게 미안 한것은 난데......

조만간 제가 이 카페의 가입한 E -Mail address 를 돌려 드려야 되겠습니다.
허락을 받았어도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것이 illegal 이라고 합니다.
다녀와서 다시 소식 드리겠습니다.

슬픈 미소드림
김회정 http://blog.daum.net/free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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