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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회의를 좋아하는 북한사회 북한 사회의 실상

토론과 회의를 좋아하는 북한사회

대체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들이 토론과 회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얼핏 생각하면.....
자본주의 국가들이 더 "민주적 토론"이 활발할 것 같고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독재정치적" 체제라는 선입견이 있어
토론이 별로 활발하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와는 반대인 것 같다.

하긴, 공산주의, 사회주의란 근본적으로 "노동자, 서민"이
그 사회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회라니, 국가적 의사결정과정들이
어쩌면 밑바닥 계층의 토론과 회의로부터 의견들이 집약되어 상부로
올라가 최종결정되는 시스템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에 반해 자본주의 사회란 사실 자본가, 기득권층이 주인된 사회로서
그저 상명하달식 일방적 명령체계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데, 한국의 내노라하는 재벌회사들만 보아도
그 시스템이 얼마나 권위적으로 경직되어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만 해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정부권력 체계 조차도 거의 대부분 상명하달식, 군대식 명령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의가 반영될 수 있는 경우란....고작해서
국민들이 직접 투표를 할 때 뿐인데, 대개의 경우 정당들과 정부의 언론장악을 통한
대국민 세뇌로 멍청이 국민들이 되어, 그들의 농간에 휘둘려지고 만다.
그래서 자신의 사회적 계급에 반하는 정강정책을 가진 정당이나 정치인에
몰표를 몰아주곤 해왔던 것이 현재까지의 한국역사이다.

즉, 남한사회에서의 "민주주의"란.....사실상 허울좋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거의 대부분은 정치권력과 돈의 권력의 권위주의적 명령체계 속에서
신음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개성공단....

기사들을 통해서 보면....남한의 중소기업인들이
개성공단에 가서 사업하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 가장 큰 이유들 중에 하나는
북측 근로자들은 걸핏하면 자기들끼리 모여 무슨 토론이니, 회의니를 하곤 한다고 한다.

그리고 작업이 끝나면....그 날 작업에 대한 "총화"라는 토론과 회의를 또 하는 모양이다.
그들 북측 근로자들은 작업이나 기타 업무 등등에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집단적 토론과 회의를 통해 해결하곤 하는 모양이다.

특히, "총화" 시간에 그날 잘못한 개인들이 있다면
그는 "자아비판"도 해서 스스로 반성해야 하는 모양이다.

북측 근로자들이 그렇게 토론과 회의를 좋아하니
남한 기업인들의 비합리적이거나 권위적, 일방적 명령 및
근로자 착취적 조치들은.....당연히 토론을 통해 걸러지고 거부될 것이다.

따라서 남한사회에서는 그동안 자본가 마음대로 일방적 지시와 명령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었던 그들 기업인들로서는 북측 근로자들의
그러한 행태들이 매우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그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단지 북측의 근로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북측의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 및 학자들도
그런식 토론문화가 생활화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북측의 토론과 회의를 좋아하는 그런 풍토는
도대체 어디에서 근원하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김상일 교수님이 잘 제시해 주었기에
아래 소개하는 바이다.


김일성 사령은 왜 그렇게도 많은 회의를 했나?

(서프라이즈 / 푸르허 / 2010-11-8 13:15)


김일성사령은 왜 그렇게도 많은 회의를 했나?


-사람이 회의를 위해 있나, 회의가 사람을 위해 있나-


-우리는 G-20 회의를 회의 한다


  김상일(전한신대학교 교수)


  왜 회의를 하는가?


 지금 남한에서는 G-20이란 단군 이래 최대의 국제회의가 소집된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사람을 위해 회의를 하는 건지 회의를 하기 위한 회의를 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회의도 시작하기 전에 회의장 주변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못하게 하고, 청사초롱을 든 쥐를 그린 대학 강사를 구속하겠다고 한다. 어느 한 이주 노동자는 피신하다 추락사 까지 하였다.


과연 2012년 정권재창출 용도이외에 또 무슨 의미와 의의가 있는지를 모르겠다.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국민들의 동의 없는 회의를 왜 하는가?


회의를 핑계 삼아 집시법이란 영구 장치를 만들어 정권재창출 용으로 써 먹으려고나 하는 지 의구심 속에 G-20 대 회의 날짜는 눈앞에 다가 오고 있다. 열리는 회의 자체를 회의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 항일유격대 안에서도 ‘회의’ 자체에 대한 회의가 확산된 적이 있었다. 그 때 김사령은 어떻게 대원들을 설득을 하여 16년간 유격활동을 해 올 수 있었던가? 오늘 우리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즉, 하도 많은 회의가 열리자 “우리가 왜놈들과 싸움하러 유격대 들어 왔지 회의하러 왔나” 이런 목소리가 1930년 대 말부터 김일성 항일 유격대원 가운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일성 사령은 오백룡, 한태혁, 오중흡 등 소수인원을 이끌고 남패자회의에 참가하려 밤길을 걷고 있었다.


사령관이 이런 소인원들과 함께 밤길을 걷는 다는 것 자체가 여간 모험이 아니었다. 회의장 까지 가자면 70리 길을 밤새도록 걸어야 한다.


명월구 회의 직후인 1931년 늦가을에도 오늘과 같은 밤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유격대원들이 고즈넉한 달밤을 걷노라면 온갖 회상이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가고, 가슴 속은 온갖 감상들로 미여지는 밤이다.


죽은 철주동생, 그리고 김혁과 최창걸, 뭇 먼저 간 동지들의 얼굴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떠오르는 밤이다. 이것은 김일성 사령뿐만 아니라 같이 걷는 모든 동지들의 마음들이기도 하다.


김일성사령은 가든 길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남패자라...” 하면서 더 말을 못하고 우두커니 선다. “그렇지” 또 한 마디하곤 별들만 쳐다보고 있다.


“우리가 가는 그 곳에서 인간이 무엇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지” 지금 우리가 왜 남패자로 가기 위해 밤길을 걷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마음속에서 찾은 것이다. 단순한 정치회의, 그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무수한 별들을 하나하나 셀 듯 허공을 투시하며 서 “남패자” “인간” 이 두 마디 말을 되풀이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인간이 무엇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그 날 밤길을 걸으면서 하늘의 별들이 계시해 준 말이었다. 그 소리를 김일성 사령 이외에 다른 동지들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 때 들은 소리는 평생 그의 통치 철학이 되었다.


김일성 사령이 한참동안이나 먼 하늘만 쳐다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리자 가까이 따라오던 오백룡과 한태혁도 따라 멈춰 설 수 밖에 없었고, 좀 떨어져 오던 오중흡도 함께 섰다.


김일성사령은 딴 청을 하면서 “우리가 장백현에서 나와 동기토벌을 할 때에도 늦가을 이 때쯤이었지요.” 오백룡이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자


“‘3.1월간’ 편집을 끝내고 돌아 올 때에도 이런 달밤이었지요. 참 좋은 밤입니다. 내일 회의만 아니면 이렇게 밤새도록 숲속을 거닐어보고 싶습니다.”


다 20, 30 대 젊은 나이에 이성을 사랑하고 문학 소설이나 읽으며 낭만을 즐길 나이에 이렇게 조선의 젊은이들은 70리 밤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달밤에 그것도 새소리도 잠든 숲 속을 걷고 있자니 온갖 회한들이 가슴 속을 밀물 같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오백룡은 세 번이나 “70리, 70리, 70리” 하면서 어쩌자고 이 위험한 길을 경위부대도 없이 밤에 걷느냐고 항의조의 말을 한다. 이러다가 토벌대를 만나 습격을 받는 날은 그 자리에서 지휘부가 몰살을 당할 형편인데 말이다.


그러나 김일성 사령은 소부대를 이끌고 가는 날은 적에게 비밀이 새어나갈 수 있고, 부대 내에서도 소문이 나면 안 되기 때문에 극 소수 간부급 인원들을 이끌고 비밀리에 남패자 회의장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현명한 판단이라고 본다.


무슨 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관록이나 되는 냥 자랑하는 행세주의자들에 비교할 때에 매우 현명한 판단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 이 번 남패자 회의에 가는 목적은 ‘인간이 무엇이라는 것’ 을 보여주려 가는 것이다. 떠날 때도 미처 몰랐던 밤하늘의 별들이 계시해준 신탁과도 같았다.


회의를 하러 가는 목적 자체가 중요하지 그 곳에 간다고 과시힐 필요가 없다. 인간을 위해 회의하러 간다는 것이다.


  “나는 왜놈들과 싸우러 왔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한태혁이 불만 어린 목소리로 “사령관 동지, 저...” 하자 김일성 사령은 “뭘 그러오?” 하고 부드럽게 대답을 한다.


한태혁은 드디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사령관 동지, 왜 회의를 합니까? 회의는 얼마나 오래 갈 겁니까?” 다소 뜻밖의 질문이었다.


“그건 어째서 묻소?” “하도 이상해서 그럽니다. 우리가 싸우러 왔지 회의하러 왔습니까? 유격대에서 회의를 이렇게 오래 자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유격대에서 싸움만 하는 줄 알았지 이렇게 회의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허허, 유격대에서 이렇게 회의를 자주, 그리고 오래 할 줄 몰랐단 말이지? 허허, 일리가 있는 말이요.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 설마 사령관 동지도 저희들과 같은 생각을 하실 리야 없었겠지요?”


다음 김일성 사령이 한태혁과 그의 일행들에게 들으라고 한 말은 회의의 본질과 회의를 왜 하는 가에 대한 설명이다. 그의 말 속에는 그의 인생관 그리고 정치 철학이 듬뿍 담겨져 있다.


잘 들어 보고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이것이 북조선이 지금까지 회의를 하는 목적이고 의의이다.


유격대가 회의를 많이 해야 할 이유를 김사령은 다음과 같이 한태혁에게 설명을 한다. “사령관이라고 해서 어떻게 만 사람의 마음속을 일일이 다 꿰뚫어 보겠습니까?


그러나 서로 같지 않던 사람들의 마음이라도 지금은 꼭 한마음 한뜻으로 만들어야 하겠으니 오래 걸리더라도 회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말을 알만 합니까?


한태혁은 사령관의 얼굴을 쳐다보며, “글쎄 알 것 같기도 합니다만...” 하곤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면 다시 묻는다.


“회의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아직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태혁의 발언은 결코 그 혼자의 것이 아니다.


실은 심지어는 박덕산이나 최춘국 같은 간부급 인물들도 회의 그 자체에 대하여 의문 부호를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 사령은 조성된 정세의 준엄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의문이라고 의문 부호 자체를 무시해 버릴 수도 있었다. 닥쳐올 혁명이 몰아칠 시련을 생각하면 회의를 백번 해도 안 될 것이지만 이를 이해 못하는 동지들의 행동을 앞세우는 논리를 무시하고 넘어 갈 수도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 팥죽같이 풀어지면?


그래서 김일성 사령관은 더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득시키기 위해 떠오르는 만월만큼이나 큰 웃음을 얼굴에 듬뿍 담고 말을 이었다.


“한태혁동지, 사람들의 마음이란 하도 다양하여 그것이 하나가 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례로 한태혁동지와 나 사이에도 의견차이가 있습니다.”


 “사령관 동지와 저 사이에 의견차이가 있다구요?” “그렇습니다. 실례를 들어서 동무는 지하정치공작 같은 것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는 동무와는 반대로 적들 속에 들어가 인민들에게 혁명을 선전하고 광범한 혁명력량을 묶어세우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일로 보고 있습니다. 어떻습까.


동무와 나 사이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한동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는 아직 그렇게 까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달빛은 교교히 두 사람의 얼굴을 조명하고 있다. 이 역사적 순간 앞에 달빛도 엄숙해 질 수 밖에 없는 듯 했다. “사람들의 사상만큼 힘찬 것도 없지만 복잡한 것도 없습니다.


사상이 뭉치면 강철보다 더 굳어지지만 자칫하면 팥죽처럼 풀어지기도 합니다. 매 사람들의 사상을 강철같이 단련해 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지 팥죽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게 끈기 있던 팥죽이 한 번 풀어지는 장면을 생각하니 인간의 마음이 한 번 매가리를 잃게 될 때가 이렇겠구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회의를 하는 것은 팥죽을 찰지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과 같겠구나 생각해 본다.



북의 회의 장면은 일사분란 쇼가 아니다.



드디어 한태혁은 김일성 사령이 회의를 하는 이유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혁명을 하자면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사야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야 사상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귀중한 교훈을 산 체험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게 하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회의라고.


그래서 사람을 위해 회의가 있는 것이지 회의 자체를 하기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태혁은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날 밤 한태혁의 깨달음은 곧 오늘날 지금 북조선 전 인민들의 깨달음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이 회의장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마음이 하나 되어 모인다. 이런 장면을 본 혹자들은 일사불란 쇼라고 한다. 그 뒤에서 얼마나 많은 소회의가 있는 줄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렇게 남패자 회의장으로 가는 길은 길 자체가 귀중한 회의장이 된 것이다. 양자 간에 대화가 끝나 갈 무렵 오백룡이 달려와 호랑이가 나타난 것 같다고 한다.


사방에 노린내가 진동을 한다. 김일성 사령은 호랑이 까지 만날 수 있다면 오늘 밤은 더욱 뜻 깊은 날이 될 것 같습니다. 하면서 모두 함께 한바탕 웃었다.


16년 항일유격대 기간 내내 남패자 회의를 비롯하여 명월구 회의, 다홍훼 회의, 등등 싸우기도 바쁜데 수많은 회의들로 점철돼 있다. 그런 회의를 김일성 사령은 마다 않고 일일이 참가를 하였다.


특히 다홍훼 회의는 민생단 문제를 다루는 회의였는데 열이 40도를 웃도는 몸을 이끌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가하여 중공당의 반민생단 도륙 행위를 질타하고 중공당의 사과를 받아 낸 역사적인 회의였다.


  남패자에서 무슨 일들이


끝으로 남패자 회의의 의의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남패자 회의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이다. 1938년 11월 25일부터 12월 6일까지 몽강현 남패자에서 진행되였다.


근거지가 창설된 이후 무장투쟁과 조국광복회조직이 급속히 확대되고 보천보전투를 비롯한 국내진공작전에 의하여 조선혁명이 계속 앙양되자


이에 겁을 먹은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과 인민들에 대한 대규모적인 토벌과 탄압 및 학살만행을 감행해 나섰으며, 다른 한 편 좌경모험주의자들의 책동이 전반적 항일무장투쟁발전에 엄중한 후과를 미치고 있던 시기에 소집된 회의였다.


회의에서는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고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반적 조선혁명을 계속적으로 힘 있게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대책 들이 토의 되였다.


김일성사령은 회의에서 “현 정세와 금후 항일무장투쟁의 전략적 과업” 이라는 연설을 하였다.


조성된 군사정치정세를 전면적으로 분석하고 특히 열하원정으로 항일연합군 안의 일부 부대들이 심대한 손실을 입게 한 좌경모험주의 노선에 대하여 심각하게 비판 하고 당면한 군사 정치적 과업들을 제시하였다.


특히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국경지대에로 진출시키고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이 대부대기동작전으로 넘어가 적들에게 섬멸적 타격을 주어 적의 공세로 파괴된 조직을 복구정비하고 인민대중을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대중 정치 사업을 벌이는 것에 대한 강조를 하였다.


남패자회의는 이렇게 일제의 반동공세와 좌경모험주의의 해독적후과로 말미암아 조성 되였던 난국을 타개하며 확고한 자주적 입장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비롯한 전반적 조선혁명을 줄기차게 발전시켜 나가는데서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는 회의를 회의한다. 화백제도를 생각하면서


이명박 대통령도 G-20 회의를 앞두고 왜 해야 하는 지에 관한 이유를 충분히 국민들에게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김황식 총리가 말한 대로 유래 없는 축제가 될 것이다.


지금 같아서는 그냥 밀어붙이기식 국제회의가 될 것이고 과연 30조나 되는 국익이 창출 될지도 의문이다. 과연 민족 자립 경제를 건립하고 노동자 농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회의인가?


김일성사령과 한태혁 간의 대화에서 우리는 쉽게 우리 문화 부호를 읽는다. 그것은 화백 이란 제도이다.


6부 촌장이 모여 만장일치의 결론이 나올 때 까지 토론의 토론을 하여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의사가 소통되게 하는 화백 제도 말이다.


이런 훌륭한 전통을 가지 민족에게 경찰이 벽을 쌓고 하는 회의가 무슨 의미가 있을 까?


지금이라도 남은 기간 동안 경찰의 삼엄한 경계망을 풀고 회의 주제에 대하여 자유토론을 하도록 하여 진정으로 단군이래 최대 성공된 대회가 되어지길 바란다.


그렇지 않을 진데 우리 국민들은 회의 기간 내내 회의를 회의할 것이다. 아니 회의가 끝난 다음에도.



(뱀발1)
몇일전 LA 해안가에서 발사된 미사일이.....아무래도 미국당국이 요격실험을 위해 실시한 것 같습니다.
미국본토에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그런 요격실험을 진행할 줄 미처 몰랐습니다.
하여튼, 그것이 실패한 실험이어서인지....미국당국은 미사일 발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미사일이 내뿜는 화염도....어쩐지 북측의 고체연료식이 아닌, 미국식 액체연료식처럼 보였습니다.

미국당국의 그 해안에서 미사일 실험에 대한 자료를 서프 "난리났네"라는 사람이
댓글로 올려주었습니다.
(참고: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15024 )

(뱀발2)
한은을 미국 frb처럼 혹시라도 민영화 하는 것이 아닐까...하여
많이 놀랐습니다만.....그런 것 같지는 않네요.
찌라시 기자가...기사제목을 참....뭣같이 뽑아놓은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 美 FRB 모델로 간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40135421

근데....현재 한은총재라는 사람의 이력을 살펴보니
참 가관이군요. ㅉㅉ
김영삼 시절에 경제비서관을 했고...기타 등등
참 그 실력을 믿을만한 구석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보이네요.

하긴, imf 주범들을  이번 정부에서 다시 기용해서 재활용하고 있는 지경이니
수구꼴통세력들에는 인물들이 어지간히 없는가 봅니다. ㅉㅉ

김중수 - 위키 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A4%91%EC%88%98

그런데....한은이란...."물가" 및 통화량 등을 담당하는 곳이지
실물경제 관련 지표인 "고용"을 담당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곳이지요.
그것은.....한은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넘어서는 주제넘은 짓이지요.

그런 짓은....멍청이 경제학자들인 "통화주의자"들이 하는 발상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한은은....고용이니 나발이니 실물경제적 지표에는 일체 신경을 써서는 안되며
오로지 물가 하나만 잡아도 그것으로 충분히 성공입니다.

더 이상은 필요 없습니다.
아....한 가지 더 있다면....
국가가 합법적으로 찍어내는 가짜돈들이 설치지 못하도록 해서
물가안정과 금융시스템 안정을 기하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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