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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에 대한 또다른 시각 백범 김구 선생

김구 선생에 대한 또다른 시각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아마 아래 글 내용에 매우 놀랄 것이라고 본다.

사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로 매우 놀랐습니다.
그래서 아래 글을 자료보관 차원에서.....여기 퍼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래 글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혹시라도.....그럴 개연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니....김구 선생에 관한 자료들을 더욱 찾아보며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알아보자는 의미입니다.

남한 교과서들에서는 김구 선생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승만
박정희 조차도 매우 미화되어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그런 것이 모두 사실과 부합하는 것은 아님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압니다.

마찬가지로....김일성에 관해서도 북측의 자료들만
일방적으로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보다 더 객관적이고 깊은 연구자료들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구는 서북청년단의 피해자가 아니다.
번호21089  글쓴이 고양이  조회346  누리-1 (60-61, 5:10:8)  등록일2011-1-3 20:36


서북 청년당과 김구는 협력자 내지 동반자적인 경쟁관계였다.

김구는 개독교도 였으며, 이승만과 같은 교회에 다니며,노선을 같이 한다고 늘 말해왔다.

해방직후 미국의 조종으로 입국하였으며, 김일성 암살을 시도함으로써 남북간의 대결을 조장하였다.

김구를 암살했던 조직은 김구가 김일성을 암살하려고 가담했던 바로 그 조직이었다.

개한미gook 에서 김구 타령은 일종의 자위행위라고 보면 된다.

민족주의자연 하는 자들은 개한미gook 의 군대가 광복군을 계승하여야 한다고도 짖어댄다.

광복군 ?

미국의 지원으로 유지된 부패한 장개석이 지원했던 임시정부의 군조직이 바로 광복군이다.

일본군과 싸울엄두도 내지 못하고 병정놀이만 하던 .....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2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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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심사숙고 하겠지만  211.232.209.105    작성일 2011년1월3일 23시00분      
중국에서 장계석의 자금으로 독립운동 한건 맞습니다. 도올 김용옥의 강의에서도 들었습니다. 거기서 상당히 실망을 하게 되었는데...정황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건 어떤 책을 읽느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어떤것이 진실이냐가 중요하지요. 가짜 책을 읽은 사람은 오히려 무식한것만 못하고 진실된 책을 읽었다면 그건 진실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한에 책을 안읽어서 무식한사람보다 책좀 읽었다고 진실로 착각 하는 사람이 많듯이....

[14/16]   ㅁ  121.159.193.34    작성일 2011년1월4일 00시26분      
최상원

1923년 경상북도 경주군 출생
1942년 동경 철도고등학교 토목과 졸업
1945년 경주군 내남면 인민위원회 보안부장, 내남면 국군준비대지대장
1945년 조선공산당 입당
1947년 체포
1965년 경남 빨치산 출신 박순자 여사와 결혼
1972년 고정간첩단사건으로 체포
1976년 출소

백범 머리는 목침

당시에는 내가 경주군당에서 일할 때인데,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어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서가 발표된 후 애국세력은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을 결성하고 저들은 반탁비상국민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서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거기 속해 있던 임정파 중에 네 사람이 민전으로 넘어왔어요. 이들이 바로 장건상, 김성숙, 김원봉, 성주식 등 네 사람이었는데 당시 이것은 굉장히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인 장건상 선생이 2월인가 3월인가 경주에 왔어요. 그 모임을 어디서 했는가 하면 경주군 인민위원회 재정부장을 맡고 있던 박용술 선생 댁 사랑방에서 했습니다. 박용술 선생은 영천 자인면 태생으로 옛날에 천석꾼 부자였는데도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지요.

그때 장건상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민전으로 넘어왔는데 그 이유는 한마디로 민전의 노선이 자주독립하는 데 절대 옳은 노선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민전은 첫째, 친일파,민족반역자를 제외한 전 조선인민이 하나가 돼서 민주주의 독립국가를 수립한다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지지 실천하려 한다. 반대로 반탁비상국민회의는 국내외 정세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적인 애국주의자들이거나, 친미사대주의자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나는 탈퇴했다"고 했습니다.

이때 이른바 반탁진영에는 사실 김구 선생도 있었습니다.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렸을 때에 김구 선생은 이승만하고 계속 같이 붙어다니다시피 했고, 처음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승만한테 <<우남 형님, 우남 형님>> 하면서 따라다녔다고요. 그래서 우리 내부에서도 이승만하고 김구를 똑같이 매도하기도 했었지요. 그랬는데 뒤에 김구 선생이 그 오명을 벗게 된 게 언제인가 하면 이승만과 미국이 합작한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의 음모가 실현단계에 이르렀을 1948년 4월 경, 사태의 위급함을 절감하고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위하여 평양에 다녀온 후부터입니다. 그리고 안두희한테 희생당했는데 이때 완전히 누명을 벗었어요.

상황이 이런 때라 마침 얘기 도중 김구 선생 얘기가 나왔습니다.그래서 우리가 장건상 선생한테 <<백범 선생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물어봤지요. 그때는 이승만과 김구를 한창 사정없이 몰아칠 때이긴 했는데 어찌 됐든 장건상 선생은 김구 선생 밑에서 일하다 온 분이라 좀 점잖게 물은 셈이지요. 그러니까 장건상 선생이 방안을 둘레둘레 살피더니만 마침 방구석에 있는 목침을 가르키면서 <<저 목침이 바로 백범의 머리이다>> 그러더라고요.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정치적 식견은 부족하나 오직 애국, 애국 그저 덮어놓고 애국 그야말로 순수하게 감상적 애국을 얘기한다는 겁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조선민족을 살리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도 김구 선생은 신탁이라는 말만 듣고 이승만이하고 손잡고 결정 반대편에 서니 이 머리가 목침과 같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요.

(위 글 바로 아래에 같은 분의 글이 연속되어 있길래 퍼다가 이어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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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간디가 훌륭한 인물이라고라고라??
인도 간디의 훌륭한 점은 무엇이고, 누구에게 훌륭한 인물이란 말인가?

<비폭력 저항>- 간디에 대한 대명사이고 이에 대한 수식어가 <훌륭함>이다.

적대적 계급사회(노예제 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에서의 학교 교육이나 주류언론을 통해 교육받고 선전되는 훌륭한 인물은 지배계급(착취계급)의 이해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된다. 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으면 <훌륭한 인물>로 평가받거나 선전될 수 없다. 김구는 훌륭한 인물 인물이나 김일성 주석은 훌륭한 인물로 될 수 없는 경우가 바로 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조건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남북연석회의 이전의 김구는 <반공주의 민족주의자>로서 미제와 그 앞잡이 이남 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남의 학교 교육이나 주류 언론이 김구를 훌륭한 인물로 칭송하는 것이다. 즉 김구는 미국이나 남쪽 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남쪽의 학교 교육이나 주류 언론이 김구를 훌륭한 인물로 칭송하는 것이다.

남북연석회의 이전의 김구는 <부루주아 민족주의자> 였기 때문에 반공(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친민중, 부루주아 민족주의는 반민중)을 외치고 다녔고, 이승만을 우남형님, 우남형님 하면서 따라다녔고, 반탁을 함으로 해서 조국분단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였다. 이런 김구의 사상과 활동은 미제와 그 앞잡이 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한다. 이런 김구를 미제와 그 앞잡이 지배계급이 살해할 까닭이 있겠는가? 김구가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여 연공(사상 전향, 발전)으로 전향하지 않았다면 김구는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구가 미제와 그 앞잡이들에게 살해되었던 것은 남북연석회의 이후 연공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김구가 학교 교육이나 주류 언론으로부터 훌륭한 인물로 칭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연석회의 이후 연공활동을 해보지도 못한 채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김구가 남북연석회의 이후 <연공>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자연사하였다면 김구는 남쪽의 학교 교육이나 주류 언론으로부터 훌륭한 인물로 칭송받기는커녕, 빨갱이 딱지가 붙여진 채 매장당하였을 것이다.)

적대적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착취계급)과 피지배계급(민중)은 적대적 모순관계이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는 훌륭한 인물이란 피지배계급에게는 <반동>이 되는 것이고, 피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는 훌륭한 인물이란 지배계급에게는 <반동>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쪽의 지배계급이 학교 교육이나 주류 언론을 통해 인도의 간디를 <훌륭한>인물로 교육하고 선전하는 것은 간디의 <비폭력 저항> 때문이며, 이러한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인도는 물론이요, 자본주의 세계 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나라 남쪽 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계급과 적대적 관계인 민중에게는 인도의 간디가 <반동>일 수밖에 없고, <비폭력 저항>은 민중의 이해에 반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남쪽의 지배계급이 학교 교육이나 주류 언론을 통해 인도의 간디를 훌륭한 인물로 칭송하는 것은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 지배계급의 이해에 부합하기 때문이며, 지배계급은 간디의 <비폭력 저항>을 미화하고 부각시킴으로 해서 피지배 민중이 <폭력 저항>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위해 <무장 투쟁>하였던 사회주의공산주의자들(친민중)을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도록 길들이기 위해서이다. 또한 민중이 <폭력투쟁>을 나쁜 것, 옳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서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대한 민중의 무장투쟁, 무장혁명 의식의 싹 조차 발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 인도를 영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켰는가? 그렇게 말한다면 이는 소가 배꼽잡고 구를 개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제국주의가 <비폭력 저항>에 굴복하여 식민 지배를 포기한다??? 이렇게 말한다면 개구리가 배꼽을 잡고 팔딱팔딱 뛸 개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가 영국의 지배에서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은 간디의 <비폭력 저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국이 더 이상 인도를 지배할 힘이 없기 때문에 인도에 대한 지배를 포기한 결과다. 영국이 더 이상 인도를 지배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인도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고 국가 권력을 인도의 지배계급에게 넘겨준 것이다.

인도의 지배계급에게 있어서 간디는 훌륭한 인물일 수 있다. 왜냐면 인도 민중의 폭력투쟁에 의해서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면 인도 국가의 권력은 인도의 지배계급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이 쟁취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인도의 피지배계급인 민중이 권력을 쟁취했을 경우 인도의 사회체제는 민중이 주인인 체제, 즉 사회주의 체제로 발전했을 것이다. 인도가 사회주의 체제로 발전하였다면 필연적으로 인도의 신분제가 폐지되고 계급해방이 실현되는 쪽으로 발전했을 것이고, 그 동안 인도의 지배계급이 누렸던 부와 권력은 박탈당하였을 것이다.

영국으로부터 해방된 인도의 지배계급은 영국이 누렸던 권력을 물려받고 영국의 지배와 간섭 없이 인도의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의 지배계급은 영국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도의 피지배계급인 민중에게는 해방 전이나 해방 후나 다를 것이 무엇인가? 영국 놈들이 착취하고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이나 인도의 지배계급이 착취하고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이나 인도의 민중에게는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인도의 지배계급이지 인도의 민중은 아닌 것이다.

인도의 간디는 인도의 지배계급으로 지배계급의 이해에 충실했고, 지배계급의 지배체제에 충실한 인물로 인도의 민중에게는 반동이다. 계급해방은 고사하고 신분제 해방조차 실현하지 않은 간디가 어찌 민중에게 훌륭한 인물이 수 있겠는가?

사회주의는 과학이고, 자본주의(부루주아 민족주의)는 미신이다. 과학은 친민중이고 미신은 반민중이다.

의식의 발전과정은 민족주의에서 사회주의로다. 사회 역사의 발전과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 역시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은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의 발전을 낳는다. 역으로 사회주의자에서 민족주의자로의 발전은 없다. 만일 사회주의자에서 민족주의자로 전향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이는 <발전>이 아니라 <변절>이다.

적대적 계급사회에서는 처음부터 사회주의자가 될 수 없다. 민중의 이해와 자신의 이해를 일치시키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한계(모순)를 깨달고 사회주의자로 발전하게 된다. 민중의 이해에 부합하는 훌륭한 인물, 위대한 인물들은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의 전환(발전)이 매우 젊은(어린)시기에 이뤄지고고, 그 전환의 기간이 매우 짧다는 점이다. 대표적 인물이 김일성 주석, 카스트로, 체게바라 등이다.

남북통일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해 가는 발전의 한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의 한 시기 목표가 남북통일이다. 민중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와 목적은 인간의 본성인 자주성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건설이고, 이런 토대를 통해 인류의 평화와 행복, 공동번영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세계의 자주화>라 한다.

새로운 것이 출현하면 낡은 것과의 사이에 모순이 발생한다. 이러한 모순은 대립과 투쟁을 유발한다.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발전하지 못하면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반동>으로 전락할 수 있다. 어제의 긍정적인(민족주의) 것들이 발전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부정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반성과 자아비판이 없으면 갈수록 반동화가 된다.

단체나 조직의 운영 역시 마찬가지다. 어제는 긍정적이었던 것들이 발전해 감으로 해서 오늘, 내일은 부정적인 것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제의 긍정적인 것들이 계속해서 긍정적인 것들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것들 속에 내재했던 부정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투쟁이 있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작업(반성과 자아비판)이 없으면 어제의 긍정적인 요소들이 오늘은 질곡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위 글 외에도.....추가적 내용이 있어서
아래 추가합니다.

김구의 흉상이 조선의 애국열사릉에 있다 ?
 
번호 21210  글쓴이 고양이  조회 297  누리 -15 (40-55, 3:6:7)  등록일 2011-1-4 22:22

어제 나는 김구가 김일성 암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는 글을 올렸다.

댓글에 출처를 요구하기에 찾아보았다.

" 임정의 김일성 암살 미수 " 란 소제목의 내용을 대충 옮긴다.


    -   1946 년 평양역에서 3.1 운동 27주년 기념식을 열던중 김일성에 대한 폭탄테러 미수사건이 일어났다. 경비를 담당하던 소련군 장교 노비첸코가 수류탄을 되잡아 던지려다 그의 손에서 폭발했고, 이 폭발로 노비첸고는 오른팔이 잘리고 한쪽눈을 다치는 중상을 입었으나, 김일성은 무사했다.


백의사는 3명의 테려요원을 평양으로 보냈는데, 나머지 두명의 요원들은 최용건과 김책의 집에도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했고, 강양욱의 집에 던진 폭탄은 강양욱의 아들과 딸을 죽게 만들었다.

암살단은 임정내부부장(신익희) 명의로 발급된 '승차편의 공여에 관한 의뢰장' 과 신임장을 갖고 있었다.   -


상기내용은 <한국 현대사 산책 > 강준만 저, 230 쪽에서 대충 인용

과연 신익희가 김구와 상의없이 독자적으로 실행하지 않았다고 보는것이 타당하겠지요.

어쨋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의 흉상이 조선의 애국열사릉에 있다니 ......

역시 김일성 답다고나 할까요 ?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21210




                                    (뒷모습)
                                    
                                    (앞모습 - 세계에서 가장 강한 여성)


덧글

  • 단소도사 2011/01/04 06:28 #

    어제 댓글달았던게 여기에 있네요...심사숙고 해야겠지만....제가 쓴 글이예요. 도올선생이 강의 한것 까지 찾아서 참고로 했으면 좋겠는데....뒤에 ㅁ 씨가 올린 [최상원]선생님의 기고글에서 많은 걸 느끼게 합니다. 남한 정서에 부합되는 인물이라 는 말씀과 인도에 간디를 잘 비유하신 주옥같은 글을... 어제는 일찍 자고 오늘에서야 봅니다. 남한에서는 김구편은 '민중을 대표하는 애국자...이승만은 친미 반역자' 로만 각인되어 오늘날까지 살아왔습니다. 곧 사실이 밝혀지겠지요. 그렇게만 인식해도 중질은 된다고 생각하면서 자위를 해야겠네요. 지금도 이승만 박사'라고 하는 부류들에 비하면....6.25때 인민군에게 부역좀 했다고 남편을 잃은 우리 먼 형수님은 지금도 이승만박사 라고 칭송하는데....세뇌가 무섭긴 무섭습니다. 멧돼지 어미를 잡으면 어린 새끼는 사람이 지 어민줄알고 집에까지 따라오는걸 봤습니다. 우리가 상당부분 사육 당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지금 까지 똑똑하진 못해도 역사에 대한 인식은 그런데로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고개를 다시 떨구는 충격적인 글을 접합니다.
  • 단소도사 2011/01/04 06:47 #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부 글까지 삭제하진 동녁님이 배려에 다시한번 훌륭한 인품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삭제한 글이 뭔지 궁금합니다. 그것까지 봤으면 궁금증이 더 풀릴판인데...아쉬우면서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니...이해를 합니다. 하기사 진보진영에 프락치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혼란(무기력, 의욕상실, 탈퇴)이 염려되어서 끝까지 입을 다물고 계신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 단소도사 2011/01/04 14:07 #

    김구 선생님의 뒷얘기가 좀 들어 있어서 올려 봅니다. 이것 기지도고 논란이 소지가 있어 보이긴 한데...거의 정확한 이야기 같아서...

    [1/5] 가다가 110.174.36.112 작성일 2011년1월4일 13시09분

    참국민/필명 "고양이"의 김구에 대한 글은 100% 정확한 사실입니다...그러나 김구는 방북 후 조선의 사회주의 체제에 감명받고 친북 친공으로 전향 합니다... 그래서 방북 후 연공 연북 운동을 하려다가 배신을 눈치깐 미제와 그 괴뢰인 이승만 도당에게 암살 당하는 것이구요...한때 반동이었던 김구를 조선이 그의 흉상을 애국 열사 능에 안치 하고 높이 인정 하는 이유는 과오를 반성 하고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죠... 이걸 조선에선 광폭정치라고 하죠..

    그런데 필명 "고양이" 가 분명 위 사실에 대해 모를리가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쏙 빼놓고 김구의 잘못 된 과거만 부각 시킨 행동에 대해서는 나도 의아 합니다....이 분 보면 조선을 지지 하는 것 처럼 말하지만 김일성 주석을 칭할 때 김일성이라고 칭하는등 조선 지지 자 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좀 하네요...이분 혹시 조선족 입니까?


  • 단소도사 2011/01/04 14:11 #

    고양이님이 일부러 뒷부분은 기재를 안한건 아니겠지요. '자기가 좋아하는분 보다 과오가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요. 이쯤에서 저는 물러나서 신경 꺼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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