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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상??? 북한 사회의 실상

"지옥같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상???

"정치범 수용소"란.....대개는 지옥같은 무엇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일제시대 정치범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다루었는지는 아마
모두 다 잘 알 것입니다.

예컨데, 일제시대 서대문 형무소에서 "유관순" 의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는...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누울 수도 없이 그저 서 있어야만 하는 매우 비좁은 방에
가두어두고 온갖 혹독한 고문들을 자행하다 결국 죽였지요.

유신반공독재 정권 시절의 정치범에 대한 탄압도
사실 그에 못지 않았었지요.

친일매국노가 권력을 장악하다보니....정치범에 대한 탄압 방법도
왜놈들 것을 모방해 온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유신독재 정권 시절
물고문 등 온갖 잔인한 고문들이 성행했었지요.

그래서.....유신반공교육 내용에 의하면
북한의 정치범들에 대한 탄압은 남한의 그런 잔인한 탄압 보다도 훨씬 더
잔혹하다고 교육해 왔었지요.

예컨데....북한에서는 걸핏하면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
잔혹한 중노동에 시달리다 죽도록 만드는 그런 거.....등등..

그래서 "아오지 탄광"이 남한에서 유명해지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웃기는 것은.....나중에 찌라시 보도들을 통해서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한에서 "아오지 탄광" 등 탄광노동자들은 비교적 중노동을 하기 때문에
월급이 당간부 정도로 매우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도
중노동이라고 해서 하루에 고작 4~6시간만 하도록 되어 있으며
탄광노동자 등 중노동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제도도 매우 잘 되어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유신반공교육이 남한 국민들을 속여서 세뇌시키는 교육, 즉
철저히 거짓말 교육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은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나왔네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무려 28년간이나 살다 나온 사람의 증언이라고...

그래서.....아래 기사내용들 중 매우 해괴한 부분들을 한번 살펴 볼까 합니다.


北 수용소서 28년 김혜숙씨 “마을 전체 전기 철조망…뚫린 곳은 하늘뿐”

서울신문 | 입력 2011.04.20 05:03

"'자유'라는 말은 남한에서 처음 들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인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수용생활을 했던 김혜숙(49·가명)씨는 "행동과 생각까지 어느 하나 자유가 없었던 북한의 실상을 토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는 겉보기에 평범한 마을같지만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뚫린 곳이라고는 하늘뿐이었다. 그는 "보위부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배고픔과 주민 간의 불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인정한 최장기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인 김씨가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 신고센터를 찾아 북한 당국과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을 상대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인권침해 실상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개인 자격으로 신고센터에 진정을 제기한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관리소 들어가서 처음 본 게 공개총살


정치범 수용소는 어떤 곳인가.


-내가 있던 곳은 평안남도 북창군에 있는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였다. 평양에서 180리쯤 들어간 산골이다. 정치범 수용소라는 이름은 남한에 와서 알았다. 북한에서는 수용소를 14호 관리소, 18호 관리소 이런 식으로 부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주민이라고 한다. 18호 관리소에만 2만명 정도의 주민들이 있었다. 그 중에 보위부 사람, 병사들, 관리원, 당 사람들 빼고 나면 1만 7000여명 정도가 이주민이었다.


수용소 하면 감옥이 연상되는데 실제로 그런가.


-관리소는 1)산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18호 관리소는 끝에서 끝까지 100리 정도 된다. 마을 주변을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서 뚫린 곳은 하늘뿐이다.


→13살 때부터 수용소 생활을 했는데….


-1975년 우리 5남매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까지 전부 수용소에 들어갔다. 2)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안 돌아오길래 집 나간 줄만 알았지 남조선으로 갔다는 건 알지 못했다.


→28년 만에 수용소를 나오게 된 것은 어떤 계기 때문인가.


-13살 때 관리소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부모님도 다 죽고 없으니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김씨의 아버지는 관리소로 온 직후 보위부에 끌려 갔고, 어머니는 농장일을 하다 1979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3)10년 넘게 토끼, 닭, 돼지를 길러서 당 일꾼들에게 바치고 '모범일꾼' 평가를 받아 2002년 2월 16일 해제받았다.


→수용소에 처음 가서 받은 인상은.


-거기서 처음 본 게 공개 총살이었다. 사람 매달아 놓고 총으로 쏴 죽인 뒤 시체를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실어 갔다. 개 죽은 걸 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가슴이 계속 할랑대고 공포감에 질려 견디기가 어려웠다.


→수용소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굶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알았다. 배급이란 게 강냉이만 주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4)일곱 식구가 한달에 7.5~8㎏을 받았으니…. 강냉이도 다 젖은 걸 줘 놔서 말려놓으면 절반으로 줄곤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파랗다는 건 모두 뜯어먹고, 한달에 딱 하루 쉬는 날에는 온 가족이 입산증을 받아 산에 가서 도토리나무 잎을 뜯어다 먹곤 했다.


●배고픔보다 무서운 건 주민끼리 감시


→열악한 상황에서 도망칠 생각은 못했는가.


-관리소 주위 철조망에는 전기가 흐르는데 멀리서도 '징~' 하고 전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전원들이 순회하면서 철조망 주위에서 발자국이라도 보이는 날에는 바로 색출해서 총살한다. 5)28년을 살면서 도주하는 사람은 못 봤다.


→배고픔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나.


-주민들끼리 서로 경계하는 것이다. 3세대를 한 조로 묶어 서로 감시하게 했는데, 서로 말하는 걸 듣고 쪽지에 적어서 한달에 한번씩 담당 지도원 방에 넣어 줘야 했다. '어떤 동무가 몇날 며칠에 무슨 말을 했다.'고 아주 자세하게 적어야 한다. 그저 입을 꼭 다물고 생활해야 했다.


→노동생활은 어땠는가.


-6)학교 졸업하면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무조건 탄광일을 해야 했다. 남자들은 돌 깨고, 여자들은 석탄 캐고…, 마흔 살만 넘으면 진폐증으로 쓰러져들 나갔다. 나도 열 일곱살 때부터 탄광에서 일했는데, 얼굴 한번 제대로 씻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 8시간 노동제인데, 말이 8시간이지 막장에서 나와 또 산에 가서 나무 해다가 막장에 들여놓고 하다 보면 16시간이 훌쩍 갔다.


→그래도 수용소 안에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뒀는데….


-결혼이라고 자유는 아니다. 남자는 30살, 여자는 28살이 되어야 결혼할 수 있고, 그것도 일을 잘해야지만 승인을 해줬다. 초급당, 보위부, 관리과장, 행정부서장 이렇게 단계를 거쳐서 승인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고, '누구누구는 일 잘했으니 결혼 승인해준다.' 이런 식으로 공표한다( 7)김씨의 남편은 2001년 4월 탄광에서 얼어 죽었고, 2명의 자녀는 수용소를 나온 뒤 2003년 수해 때 사망했다).


→인권과 자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근 30년 동안 '불복종하면 죽인다.'는 말만 듣고 살다가 자유란 말을 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 자유란 내가 제주도 가고 싶으면 가고, 강릉 가고 싶으면 가는 것 아니겠는가.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01&newsid=20110420050326886&p=seoul





1)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란?

어느 나라든.....정치범들을 비교적 가혹하게 다루는 편이다.
왜냐면 일반 잡범들과 달리 정치범이란....사상범이자 체제전복 세력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는 매우 비좁은 감방에 가두어놓고, 가혹한 고문들을 가하기 마련이다.

예컨데, 남한의 소위 "비전향 장기수"들이 남한의 감옥에서 
얼마나 가혹한 대우를 받았는지를 안다면
그 상황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런데.....북한의 소위 "정치범 수용소"라고 하는 곳은
매우 이상하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범죄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단지 "이주민"이라고 부르며
무슨 비좁은 감옥에 사는 것이 아니라....그 크기가 무려 100리에 달하는
거대한 마을에 집단 거주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남한 시골의 조그만 군이나 읍 정도의 거대한 지역에
무려 2만명 정도가 사는 마을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무려 100리나 되는 마을 주변에 전기철조망을 설치한다?
전기도 부족하다는 북한에서 과연 그것이 정말로 가능할까요?

그리고 가만 살펴보니....."정치범 수용소"라는 곳에 살던 이주민들이
무슨 비좁은 감방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일반 시골촌민들과 다를 바 없는
일반적 마을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이상한 정치범 수용소로군요.


2) 할아버지 월남이 이유....

그 진술이 사실인지 아닌지.....우리는 모른다.
그런데 만일 그 진술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보면....
그녀가 말하는 소위 "정치범 수용소"란 말하자면
북한에서 성분이 나쁜 사람들을 별도의 마을에 모여 살도록 하는 곳인가 보다.
즉, 남한에서 말하는 무시무시한 "감옥"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란 말이다.

하긴, 탈북자들이 말하는 "정치범 수용소"라는 것이 매우 이상하다고는
이미 진즉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면 탈북자들 증언에 의하면....정치범 수용소에서 애들도 낳고 살고
심지어 장사도 하는 등 일반 마을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쉽게 탈출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즉, 남한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 "감옥"과는 매우 다른 
무엇이라는 말이다. 


3) 10년 넘게 닭, 토끼, 돼지를 길러.....

13살에 "수용소"에 들어가 무려 10년 이상을 닭, 돼지, 토끼들을 길렀다는 말은
일반 농민들처럼 생활했다는 말이 아닌가?

북한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로서
개인들이 닭, 돼지 등을 기를 수 없다.

그런 것들을 기른 사람들은 당연히 국가나 당에 바쳐야 할 것이다.
그대신 배급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그녀는 정치범으로서 가혹한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단지 북한 농민으로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여튼......10년간 농민생활을 했다면
나머지 18년간은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학교교육 문제는.....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학교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 된 것일까?
아니면, 거기에 학교도 있어서 18년간은 학교를 다닌 것일까요?

그리고....거기서 "해제" 되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북한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거기서 "해제" 되어 보았자....어차피 달리 갈 곳도 없지 않은가?
뭔가 너무 이상하다.


4) 일곱 식구가 한달에 강냉이 8kg....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그런 "수용소"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당간부들 조차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동안 탈북자들이나 찌라시들이
떠들어오지 않았던가? 하물며 그런 이상한 수용소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그런 상황에서는
모두 굶어죽었야만 할 것 같은데....놀랍게도 대부분 살아남은 모양이다.

우선, 그것부터가 매우 이상하다.

다시 말하면....."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거기에 살기 때문에 배급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북한 전체 사회에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즉, "수용소"였기 때문에...그런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마도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말이다.


5) 28년을 살면서 도주하는 사람은 못봤다.


매우 이상한 증언으로 느껴지는데....
왜냐면 탈북자들의 증언 중에는....."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다가
다시 탈출했다는 사람들의 증언들도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는 아마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려 28년 동안이나 아무도 탈출할 생각을 한 사람들이 없었다니?
뭔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하긴, 남한에서도 일반 농민들이 자기 고향마을에서 몰래 도망가려는 사람들이
없기는 하지만.....빚을 지거나 죄를 짓기 전에는 말이다.


6) 학교 졸업하면 모두 탄광일 해야....

이제 밝혀졌군요. 결국 그녀도 학교를 정식으로 다녔다는 말이네요.
그러니까.....매우 이상한 수용소로군요.
정식으로 학교도 다니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탄광에 가서 일하고....
그런데 탄광노동자가 되었어야 할 그녀가....도대체 언제
닭, 돼지 등을 길렀을까요? 참 신기한 일이네요.

닭, 돼지 등을 여가시간에 기른다?
탄광일이 그만큼 쉬운 일이었던 것일까요?

암튼, 그녀가 열일곱살 때부터 탄광노동자가 되었다면
결국 16세까지...그러니까 중학교 졸업을 했다는 말이군요.


7) 김씨의 남편은 2001년 4월에 탄광에서 사망.....2002년 "해제"...

그러니까.....일반 상식적 판단에 의해 위 사건들을 재구성해 보면
원래는 아래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즉, 김씨의 남편은 탄광노동자였고, 김씨는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그 지역에 살았는데
어떤 사고로 남편이 사망하자 김씨는 자녀들과 더불어 더 이상 탄광지역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자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여 살게 되었는데.....수해로 자녀들이 사망했다는....

즉, 어느 탄광노동자 가정의 매우 평범한 얘기가....
졸지에 "수용소" 얘기로 둔갑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북한전체 사회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아마 북한 어느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든 모두 극도로 부족했던 식량사정을 들며
그것을 마치 "수용소"였다고 주장해도 별로 이상할 것도 없을 것 같네요.


암튼, 탈북자들의 거짓말들을 듣는 것도 이제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로 진짜 진실을 그들로부터 듣게 되는 것은 도대체 언제쯤에나 가능하게 될런지?
ㅉ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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