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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연예인 매춘사 - 연예인 x 파일, 심수봉 vs. 심수경 TV 방송, 문화, 연예

심수봉 “가정형편 어려워 비밀요정서 노래했다”


위 찌라시 기사댓글들을 살펴보다....몇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댓글에서...심수봉이 [나의 사랑 박정희] 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하니....그럴리가 있겠는가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간단히 구글링을 해보니...금방 검색이 되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그 노래가 실제로 있기는 한데
그건 심수봉이 부른 노래가 아니라, 심수경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였습니다.


                                              (심수경)


그렇다면.....[나의 사랑 박정희] 라는 노래 가사와 실제 노래는 무엇일까요?
그것 역시 구글에서 간단히 검색되더군요.




그런데...댓글들 중에 심수봉 관련 또다른 얘기가 있더군요.

심수봉, 차지철, 병풍인지 가림막인지 하는 내용....
그래서 간단히 구글검색을 또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아래와 같은 소위 "연예인 x 파일"이라는 것이
아예 시대별로 정리되어 있더군요.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을 처음 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시시콜콜히 다 읽지도 않았고
그저 몇부분만 살펴 보았습니다.


연예인 매춘사? 이거 좀 오래된 자료~
연애인 비화


구글링에서 아래와 같은 게시글도 끌려 나오네요.
세상 사람들은 참 잡다한 여러가지들에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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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10.26! 그때 그사람


―그 사건이 1979년 10월, 심수봉 아니 심민경(沈玟卿)이 MBC대학가요제에서 ‘그때 그 사람’으로 세인의 주목을 끈 것은 1978년, 그렇다면 궁정동 그 사건 당시도 대학생이셨겠네요?

“그렇습니다.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이었습니다. 대학가요제에서 수상은 못했지만 지구레코드사에서 저의 재능을 알아봤고 79년 1월에 제 판을 냈습니다. 그것이 5월에는 이미 공전의 힛트를 쳤고, 궁정동사건으로 제 인생에 암운이 드리우기까지 6개월간 세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저를 출연시켰고, 화려한 데뷔인생을 살았습니다. 가수로서의 제 공적인 인생은 이 6개월이 전부라 말할 수 있죠. 그 후로 8년 동안 저는 일체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13살 때부터 이미 피아노, 드럼, 기타 등 많은 악기를 잘 다루었는데 고등학교땐 가발쓰고 미8군에 들어가서 그룹활동을 하면서 소녀가장노릇을 해야만 했습니다.”

친절한 총무스님이 한 20분 산길을 올라가면 토굴에 25년이나 생식으로 연명하시는 큰스님이 계시니 거길 가보라고 하는 거예요. 밤을 꼴딱 새우고 동트자마자 토굴에 올라갔는데 아! 이럴 수가! 바로 꿈에 본 그 사람이 쬐그만 단칸방에 앉아계신거예요. 그분은 동경에서 대학을 나왔다 했는데, 첫 말씀이 경전을 가까이 하면 도와 멀어질 터이니 각을 해라! 게으르지 말고 참선을 해라! 하시면서, 제게 새이름을 지어주셨어요. 도(봉우리)를 지키라는 뜻으로 수봉(守峰)이라 했지요. 난 신을 발견했어요. 여러번 그분을 시봉하러 다녔지요.”

―그 뒤로 그분과는 어떻게 됐나요?

어느날이었죠. 그분이 날 껴안았어요. 나의 신이! 지족선사가 황진이를 안아 도가 깨졌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은 보살심일 뿐이라 하시면서. 나의 신은 범인에 불과했어요. 이렇게 나의 구도행은 일그러지기 시작했죠.”

―실망이 컸겠군요. 그것이 종말이었나요?

“그 스님의 예언대로 나는 수봉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가수가 되었어요. 그리곤 생각했어요. 황진이에 대한 일시적 보살심도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법주사를 찾아가보니 전두환정권법난으로 토굴이 다 철거되어 버렸고 스님의 자취도 없더군요. 

어렵게 수소문하여 여기저기 족적을 헤맨 끝에 대전의 어느 토굴에서 쓸쓸한 그를 발견했어요. 스님께 큰절하고 서있는데 또 날 껴안으시는 거예요. 난 그길로 하산하면서 어찌나 울었는지, 지는 낙엽과 더불어 어찌나 눈물이 펑펑 쏟아졌는지, 내가 만든 신이었지만 나의 생애에 있어서 신이 사라지는 비극적 순간이었지요.”

 심수봉의 장한(長恨)은 심령도사 한씨를 만나 정신병원에까지 강제수용되었다가 결국 그와 아들 하나 낳고 보름만에 업고나온 이야기, 그리고 진해업소의 무시무시한 사장님에게 코꿰어 딸 하나 낳고 8년이나 시달린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대에게 음악은?

“음악은 호흡입니다. 그것으로 호흡했기에 오늘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노래라는 게 결국 가사쓰고 멜로디붙여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자기얘기하고 위로받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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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위 얘기는 10.26 사태후 위와같이 방황했다는 얘기인가 봅니다.
아래와 같은 추리소설을 쓴 사람도 있군요.

[출처] 심수봉 - 그때 그사람 - 박정희|작성자 목동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심수봉씨 노래들은 어딘지 참 청승맞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수봉의 음악적 실력은 대단한 것 같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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