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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후족의 언어와 문화 치앙마이 라후족


동남아 고산지대 라후족의 언어와 문화
한글을 배우는 고산지대 라후족의 언어와 문화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은 우리 나라에서 이주해간 이민의 역사가 분명하고 그들의 말도 비록 여러 가지로 특이한 면이 있긴 하나 그래도 우리말의 여러 방언적인 차이를 보일 뿐, 분명히 우리말을 쓰고는 있다. 그런데 기록된 역사가 없는 동남아의 어느 산족이 쓰는 말이 우리 국어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면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리 민족과 해외 동포이외에도 우리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국 북부와 미얀마의 북동부, 그리고 라오스의 서북부 및 중국 운남성의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의 삼각지대" (Golden Triangle) 주변에 흩어져 사는 산족중에 "라후"(Lahu) 족이 있다. 이들의 언어 역시 "라후어"라고 한다. 이들은 화전으로 농사를 짓고 쌀을 주식으로 하나 항상 먹거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태국인들이 가늘고 긴 알랑미로 밥을 지어 먹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과거에는 양귀비 재배로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양귀비 재배가 법으로 금지되어있다. 필자가 접촉한 태국 북부에 사는 라후족은 국적이 없고 여권도 가질 수가 없어 해외 여행이 불가능하며 태국 안에서의 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다.

라후족은 검은 라후(Lahu Na), 노란 라후(Lahu Shi), 붉은 라후(Lahu Ni) 와 라후 셀레로 나뉘어 방언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이중에서 검은 라후의 말이 대표적인 표준말로 되어 있어 널리 통용된다. 라후족은 6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중에서 중국에 36만, 미얀마에 20만, 태국에 6만, 라오스에 2천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발 1200 미터 이상의 높은 산속에 사는 라후족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단순한 집에서 산다. 한 쪽 면을 산비탈에 맞대고 마루 바닥을 땅에서 들어 올려 높다랗게 지은 대나무 집 아래와 주변 마당에는 닭, 개, 돼지 등의 가축이 사람과 어울려서 사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며 옛날 우리 나라 산골 농촌의 풍경에서 그리 멀지 않다. 단순하고 작은 집이긴 하나 집집마다 방안에는 취사를 위한 부엌 세간이 있고 한 쭉 위에는 간소한 신단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 들의 토속 신앙을 엿보게 한다. 라후족은 태양신을 믿고 호랑이를 숭배하는 산족이다. 라후족을 일컬어 태국인들은 뭇수르(mussur) 라고도 하는데, 이는 옛부터 활을 잘 쏘고 사냥을 잘하는 데서 부쳐진 "사냥꾼"이라는 뜻이다. 길게 연결한 대나무 대롱에 산골짜기의 물줄기를 실어 집 마당까지 끌어 드려 식수로 쓸 뿐 아니라 세면 목욕에까지 이용하는 생활의 지혜에는 절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태국인들은 높은 산속에서 가난하게 사는 라후인들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며 깔보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배운 것 없이 산속에서 곤궁하게 사는 산족들이니 그렇게 대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후족이라고 제대로 된 농토를 원하지 않겠는가 ! 넓고 편편한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싶지만 심산유곡에서는 그것이 어려운 일이고, 산을 내려와 평지에 접근하면 태국인과 마찰을 빚고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이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라후인이 산아래 쪽으로 내려와 버려진 땅을 밭으로 개간하여 놓으면 이를 빼앗으려는 태국인과 마찰을 일으키기 마련이고 때로는 살인사건이 빚어지기도 한다. 라후족은 이렇게 험난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린 딸을 싼값에 팔아 넘기는 부모가 적지 않다. 겨우 십 사오 세가 될까말까한 나이가 되면 가난에 찌든 부모, 특히 아편에 중독된 아버지는 돈 몇 푼에 쉽게 딸을 팔아 넘기곤 한다. 상대는 태국인, 중국인 등 외국인에 팔려 가는 경우가 많으며, 근래에는 방콕 등 대도시의 유흥가로 흘러 들어가는 일이 적지 않다.

라후족은 언어, 풍속, 생활 양식 등에서 인근의 태국인이나 라오스인, 미얀마인, 중국인 등과는 전혀 다른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라후족은 얼굴의 생김새나 식생활이 한국인에 가깝다. 퍼슬퍼슬한 알랑미가 아닌 둥근 쌀로 지은 밥에 김치같은 반찬을 먹을 뿐 아니라, 축제 때에는 우리와 유사한 색동옷을 입는다. 특히 음력 설 무렵의 축제는 라후인들에게 가장 즐겁고 풍요로운 잔치이다. 한껏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은 마을의 공터에서 둥그런 원을 그리며 앞장선 남자의 호로생 악기 연주에 맞추어 16박의 리듬으로 힘차게 땅을 내리 디디고 몸을 틀며 춤을 춘다. 이런 축제가 젊은 남녀에게는 서로 짝을 찾고 사랑을 나누며, 결혼으로 이어지는 뜻깊은 기회가 된다.

카토릭대학의 한승호 교수는 현지 조사를 통하여 라후족의 머리 형태를 조사 분석한 결과 라후인이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짧은머리형" 과 "높은머리형"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머리 형태는 형태학적으로 체질인류학적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한다. 또한 라후족의 남자는 한국인과 비슷한 위턱 앞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카토릭 대학의 미생물학교실팀은 라후족의 혈청에서 백혈구항원을 검사한 결과, 한국인 등 몇몇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HLA-B59 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라후족은 민속 음악에 있어서도 한국의 민요와 맥을 같이 한다고 중앙대학의 전인평 교수가 지적하였다: "......라후 셀레의 민요를 듣는 순간, 온 몸이 얼어 붙는 듯, 등골이 오싹해 진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이게 웬일일까 ? 수만리 떨어진 태국 북부의 산 속에서 흡사 강원도 아낙네가 푸념하듯 내뱉는 노래가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사만 바꾸면 그냥 강원도 민요다. 노래의 시김새, 장단, 노래의 시작하고 끝나는 법, 특히 잔잔한 우수가 깃든 음악의 정서가 완전히 일치한다. ... 이러한 상관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

라후어와 한국어의 유사성

특히 라후어는 그 구조가 한국어에 아주 유사하다. 소설가이며 문화탐험가인 김병호 박사는 라후족을 고구려의 유민으로 보고 있다. 라-당 연합군에 멸망한 고구려의 유민이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 갔다는 삼국사기와 중국 사서의 기록을 근거로, 그 들 중 역경을 딛고 남으로 남으로 떠내려온 고구려인의 후예가 바로 라후 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쓰는 말 역시 고구려 유민의 언어, 즉 우리말의 일종이라고 본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Matisoff 교수는 한국어와 라후어의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라후말의 구절 구조는 일본어와 한국어에 대단히 유사하다."

그러면 라후어가 우리말과 어느 면에서 유사하며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 보기로 한다. <너레 까울리로 까이베요> 는 "너는 한국으로 간다." 라는 뜻이다. 우선 이 문장을 이루는 낱말의 배열 순서가 (주어 + 보어 + 술어) 로 한국어와 일치한다. 그리고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술부의 동사가 문장의 끝에 온다. 영어라면, You go to Korea. 이니 술어가 바로 주어 다음에 오게 된다. 독일어나 중국어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너레> 의 <너> 는 우리말의 "너" 라는 대명사와 형태가 아주 유사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격조사 <레> 이다. 이는 북한 사투리에서 <내레... 내레> 할 때의 주격 조사와 연관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작의 방향을 나타내는 <로> 는 현대 국어에서도 <서울-로>, <김포-로> 에서와 같이 일상 쓰이는 조사로서 형태와 기능이 일치한다.
물론, "간다" 는 뜻의 라후말 <까이> 도 국어의 <가다> 와 비슷하다. <까울리> 는 중국이나 태국 등에서 "고구려" 나 "고려"를 뜻하는 말로서 바로 우리 나라를 말한다. 이렇게 볼 때, 라후말로 문장을 구성할 때는 우리말 순서대로 라후말 단어를 대입만 하면 되며, 단어 중에는 형태마져 같은 것이 있으니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실제로 어휘에 있어서는 한국어와 유사한 말이 그리 많지 않다.

상대를 부를 때 쓰는 호격도 우리말과 유사하다. 가령, 국어에서 인순이를 부를 때
<인순아 !> 하듯이 라후사람들도 <나시> 라는 이름을 부를 때 <나시아 !> 라고 한다. 부르는 상대의 이름 다음에 <아> 라는 어미를 더하는 것이 틀림없는 한국식이다. 명사에 붙는 라후어의 소유격 <베> 역시 한국어의 <의>처럼 쓰이다. <너베 예> 는 <너의 집> 이다. 분류사를 쓰는 방법도 같다. 우리말의 <소 두 마리>에서 <마리>를 분류사로 볼 수 있는데 라후어에서는 <마리> 에 해당하는 분류사 <케> 가 <둘>을 뜻하는 수사 <니> 다음에 연결되어 <누 니 케> 로 대응된다. 라후말 <누 니 케> 와 우리말 <소 두 마리> 는 그 구성이 똑 같다.
라후어는 음성체계가 한국어와 유사한 면이 많다. 음성체계가 유사하다는 것은 발음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우선, 자음에서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삼중대립을 나타난다. 가령, ㅂ/ㅍ/ㅃ 같은 파열음이 삼중으로 대립을 하여 한국어에서 비/피/삐 같은 낱말을 이루어 내듯이, 라후말도 이같은 삼중대립을 보인다. 영어 등의 서양말이 b/p 의 두 가지 밖에 구별을 안 하여 bay/pay 같은 이중대립밖에 없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삼중 대립은 ㄱ/ㅋ/ㄲ, ㄷ/ㅌ/ㄸ, ㅈ/ㅊ/ㅉ 같은 계열에서도 쓰인다. 실제로 라후어는 우리말에 없는 소리가 너 댓 개 더 있다. 가령, 목젖으로 나는 ㄱ/ㅋ/ㄲ 도 있어서 한글로는 표기할 수가 없다.
라후어의 모음 역시 한국어와 유사하다. 우리와 같이 이/에/애/아/오/우/어/으 같은 모음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소리 값 역시 아주 유사하다. 특히 다른 외국어에서 찾아보기 힘든 <으> 나 <어>를 한국어와 라후어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런데 라후어에는 제주도 말에 지금도 남아 있다고 추정되는 15세기 국어의 아래 아 모음이 하나 더 존재한다. 이 소리는 표준말의 [오] 보다 입을 더 벌리고 혀를 내려서 내는 열린 모음이다. 이렇게 볼 때 라후어는 한국어보다도 자음과 모음의 수가 더 많다. 그러나 라후어는 성조(목소리의 높낮이)가 7개나 있어서 우리말에 비해 복잡한 면도 있다.
라후어는 특히 한국인에게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라후어가 위에서 간추려 보인바와 같이 음성적, 문법적인 구조와 특성에 있어서 한국어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음성과 음운의 체계가 유사할 뿐 아니라, 형태론 및 통사론적 특성에 있어서도 라후어는 우리말과 유사한 면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언어학적으로 라후어는 "싸이노-티베트(Sino-Tibetan)" 라는 거대한 어족에 속하며, 더 자세히 말하면 이 어족의 한 분파인 "티베트-버마계로 이어지며 그 하위 분파인 "롤로-버마계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편 한국어는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렇다면 어족적으로 전혀 계통을 달리하는 라후어가 어찌하여 한국어와 유사성을 지니는지 큰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라후어는 과연 한국어와 계통이 같은 언어인가 ? 아니면 단지 유형적으로 유사성을 지니는 것인가 ? 아니면 역사적으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우리말과 유사한 면을 지니게 된 것인가 ? 이러한 의문을 풀려면 먼저 라후어 자체에 관한 언어학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어서 라후어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어와 구조적 특성을 비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라후족과 한국인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도 앞으로 계속 연구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라후족의 한글 배우기

라후족은 고유의 언어인 라후어를 쓰고 있으나 이를 적을 글자가 없는 무문자 산족이다. 일부 기독교로 개종한 라후의 젊은이들은 선교사들이 만든 로마자 표기를 이용하여 라후말을 적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못한 대다수의 라후인들은 아직도 글자를 모르고 음성언어에만 의존하고 산다. 이같이 문자가 없고 기록이 없으니 이들은 자신들의 뿌리와 역사에 대한 기억도 겨우 구전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라후족은 자신의 조상들이 아주 먼 옛날 흰 눈이 내리는 추운 곳에서 왔다는 정도로 내력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1994년 처음 태국 북부 치앙라이 시 인근의 산중에서 라후, 아카, 리수 등의 산족 마을에 들어가 보고 놀라움과 함께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40여년 동안 필자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국가와 일본 등의 문명사회의 언어와 문화에 관심을 가져왔을 뿐, 문명을 등지고 사는 오지의 사람들과는 만나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하나 순박하고 여유롭게 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연민과 함께 일종의 동경마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특히 고구려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라후족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라후어를 조사 연구하며 우리말과의 관련성을 비교 검토하는데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고유의 글자가 없는 라후족에게 한글을 도입하여 자유롭게 글자생활을 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라후어의 음성체계를 볼 때에 라후어를 표기하는데 한글이상으로 적합한 글자가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두 언어의 음성체계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라후어에는 우리말과 일치하는 모음이 여덟 개나 되고, 자음에서는 ㄱ/ㅋ/ㄲ, ㄷ/ㅌ/ㄸ, ㅂ/ㅍ/ㅃ, ㅈ/ㅊ/ㅉ, ㅁ/ㄴ/ㅇ, ㅅ/ㄹ/ㅎ 의 18개가 대응되니 몇 개만 더 보완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라후어가 한국어보다 모음과 자음의 수가 많은 것이 문제이다. 우리말은 모음 8개 자음 19개를 적을 수 있으면 되나 라후어는 모음이 9개 자음이 23개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행 한글자모만으로는 라후어를 완벽하게 적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오래 전에 필자가 고안해 발표한 <국제한글음성문자> 중에서 라후어에 필요한 기호를 택해 추가하는 방법으로 라후어의 한글표기체계를 완성하였다. 국제한글음성문자는 한글을 바탕으로 개발한 발음기호로 이를 이용하면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정확하게 적을 수 있다. 가령, 현행 한글 자모로는 서양어의 f v th, sh 같은 소리를 적을 수 없으나 한글음성문자로는 이런 소리를 모두 적어 낼 수 있다. 라후어에는 목젖소리나 우리말의 <오> 보다 더 입을 열고 내는 모음이 있는데 이들을 현행 한글로는 적을 수 없으니 이에 해당하는 한글음성기호를 골라 활용하게 된다.

라후어에 맞는 한글 표기체계를 마련하는 것과 이를 라후인에게 가르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 나라에 훌륭한 한글이 있었어도 실제로 이를 배우지 못한 눈 뜬 장님이 많았던 것처럼, 라후말을 적을 수 있는 한글음성문자 체계를 만들어 내도 이를 실제로 가르치고 학습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일이다. 라후의 어른들은 아편이나 피우며 무의도식하는 하는 이들이 많고 여자들은 집안일, 밭일 등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니 억지로 불러 앉힐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무리 없이 가르치기 좋은 층은 어린이 들이며 여기에 일부 청년들과 여인들이 참여하게 된다.
한마디로 라후인의 한글 습득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진도가 빠른 사람들은 몇일 간의 학습으로 자신과 가족의 이름이며 마을 명칭 등을 한글로 쓸 수 있고 일상의 간단한 표현을 적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있는 일인가 ! 지하의 세종대왕이 이를 보신다면 얼마나 대견스러워 하실까! 15세기에 우리 고유의 문자가 없이 어려운 한자에 고통을 겪던 우리 민족을 위하여 창제한 훈민정음이 21세기에 이르러 동남아의 오지에 사는 산족의 손으로 쓰이고 있다니! 그것도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적는 데 쓰인다니 ! 이 것은 바로 한글의 국제화이며 동시에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펼치는 길이기도 하다.

라후인들이 한글을 쉽게 익힐 수 있는 데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글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ㄱ>을 배우면 이와 글자 모양이 유사한 <ㅋ> 과 <ㄲ>을 쉽게 배우고 기억할 수 있게 한다. 만약에 로마자로 한다면 <g> 와 <k> 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기호를 익혀야 하는 부담이 있다. 둘째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라후어가 한국어와 같이 <ㄱ>, <ㅋ>, <ㄲ> 와 같이 삼중대립을 보이므로 한글로 대응시켜 적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합리적이다. 로마자 <g>와 <k> 만 가지고는 라후어의 세 가지 소리 <ㄱ>, <ㅋ>, <ㄲ>를 간편하게 적어 낼수가 없는 것이다.

라후족을 대상으로 한 한글 보급 운동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깊은 산 속 이곳 저곳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 수만의 라후족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하려면 많은 교사와 긴 세월의 노력이 필요하다. 라후족이 진정 고구려의 유민이라면 우리는 1300년의 긴 단절 끝에 우리의 동포를 다시 만난 셈이다. 글자를 모르는 이들은 한글을 학습할 권리가 있고 우리는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글을 전수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글은 그들의 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출처] 라후족의 언어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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