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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멕시코 침략사가 던지는 역사적 교훈[특별기고] 한-미 FTA

미국의 멕시코 침략사가 던지는 역사적 교훈[특별기고]


(미국도 금융위기를 비교적 자주 겪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멕시코도 매우 심각한 금융위기를....자주 겪는 나라로 유명하다.

그런데.....멕시코가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대개는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나 경제부 장관은......
미국 유명대학들의 경제학 박사 출신들인 경우들이 많았다.

그래서.....그런 현상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아마도 그들이.....미국식 경제학 교과서를 그저 원론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즉, 맹목적 암기의 결과 및 그것을 멕시코에 잘못 적용한 결과로
멕시코가 수시로 금융위기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왔었다.

그런데.......아래 글을 읽어보니......

멕시코가 그동안 왜 그렇게 금융위기에 취약했었는지를
이제야 확연히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즉, 멕시코에서도 숭미사대 매국노들이.....정권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자국의 이익과 자국 국민들 삶에는 거의 무관심하고
자국 경제가 죽거나 말거나.....미국 정부나 cia의 지시대로
일방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경제정책들만 시행했을 것이니.....
그 놈의 나라가 쉽게 망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ㅉㅉ

한국정부가 하는 짓도.....그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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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미국의 멕시코 침략사가 던지는 역사적 교훈


재미통일운동 원로인 유태영 박사는 그 동안 남미나라들과 미국과의 관계를 조명하는데 많은 연구활동을 해 왔다.

이번에는 멕시코와 미국과의 관계를 조명했다. 그는 "미국의 멕시코 침략역사가 우리 민족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도 크다. 스페인의 3백년 침략사에 이어 또 다시 미국의 침략사로 이어진 멕시코의 비극적 운명은 지금 이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침략사가 던지는 역사적 교훈들은 아직도 분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며 강대국 미국에 기생하여 사대주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게 큰 경종을 울려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민족통신 편집실]


[유태영 박사 특별기고]

미국의 멕시코 침략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역사적 교훈

미국의 멕시코 침략역사가 우리 민족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도 크다. 스페인의 3백년 침략사에 이어 또 다시 미국의 침략사로 이어진 멕시코의 비극적 운명은 지금 이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침략사가 던지는 역사적 교훈들은 아직도 분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며 강대국 미국에 기생하여 사대주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게 큰 경종을 울려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미국의 멕시코 침략사가 던지는 역사적 교훈>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번 글을 통하여 <하나님과 멀고, 미국과 가까운 캐토릭 나라 멕시코, 국토의 2/3를 미국에게 빼앗긴 이달고 조약>을 포함하여 식민지 통치수법과 그 내막을 연구했다.

하나님과 멀고 미국과 가까운 Catholic 나라 멕시코
국토의2/3를 미국에게 빼앗긴 이달고 조약
필자:유태영 박사

“미국의 코 밑에 있는 멕시코는 미국의 뒷마당이며,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는 편의와 복종의 관계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 으로 맺어진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는 ‘주말연인의 관계’를 벗어나지 않는 ‘편의상의 결혼’과 같은 것이다”

위에 인용한 두 문구는 ‘바른 말 잘 하다’ 해고된 멕시코의 전 유엔대사 아돌포 아길라르가 한 말 이다. 아길라르는 미국의 이락 침략을 맹공격 함으로 미국의‘눈의가시’ 와 같은 인물로 결국 관직에서 쫒겨 났다.

아길라르의 이야기는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잘 설명 해 주는 이야기 이다.

1. 멕시코 식민통치 300년

스페인은 1521년에 멕시코에서 식민통치를 시작하면서 초급의 속도로 영토를 확장 해 나아갔다.

스페인은 멕시코 남쪽의 유카탄반도를 기점으로 하여 멕시코 본토와 북쪽으로 진격하여 현재의 미국의 텍사스, 캘리포니이와 뉴멕시코, 아리조나와 네바다 그리고 유타주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여 남미(Latin America)에서 제일 크고 제일 넓은 땅을 소유한 대국으로써 식민통치를 하면서 300년 역사를 과시하고 있었다.

멕시코 원주민의 역사와 스페인의 멕시코 식민통치의 역사를 간략하게 되돌아 보면 다음과 같다. .

기원전3,500년경부터 알라스카 베링 해협이 육지로 연걸되여 있을때 아시아의 몽골족이 멕시코에 정착하여 옥수수 농사와 조상숭배 제사를 행하는 ‘고전기 문명시대’ 를 열어 놓았다.

오늘의 멕시코 원주민들이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 때부터 전해 내려 오고 있는 인디오의 전통이라고 여겨진다.

올맥문명시대(기원전 1200-900), 마야문명시대(기원후 250-900)를 지나 그 후에 멕시코 전역에 원주민 왕국들이 이곳 저곳에 다양하게 건설되여 저들끼리의 태평시대를 대대손손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짜기 예고도 없이 1521년에 에스파냐 탐험대의H코르테스 를 선두로한 무장한 침입자들이 멕시코를 정복 하였다.도끼와 활을 가지고 있는 원주민들은 화약으로 총과 대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무법자 침입군들을 도저히 막을 수 가 없었다. 그 후부터 300년 동안의 난폭한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가 시작 되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을 통치하기위하여 무자비하게 살육, 강탈과 함께 노예노동을 강요했다. 식민통치자들은 자기들의 말을 고분고분히 잘 듣지 않는 인디언들을 마구 살해 했다. 그때 흘린 인디언들의 피는 강이 될 정도로 엄청난 살육의 역사였다.

1535년에 에스파냐 국왕은 ‘부왕’ 을 멕시코에 파송했는데 ‘부왕’은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왕권의 대행자 이었다.

에스파냐 식민통치 300년 동안에 멕시코의 민중들의 구성은 4개의 부류로 되고 있었다.첫째, ‘물라토’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족이었고, 둘째, ‘메스티소’는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족이었고, 셋째, ‘크리오요’는 백인혈통을 이어 받은 혼혈되지 않은 순종 백인들이었고, 그리고 네째, ‘피온’은 원주민 혈통을 이어 받은 혼혈되지 않은 순종 인디오들이었다. 이런 부류는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부왕의 통치가 오래 계속되는 동안에 부왕의 왕권은 날로 쇠약해 졌으며 민중의 4개의 부류들의 부류간의 불화와 갈등은 극에 이르고 있었다. 이중에 ‘크리오요’의 부류에 속하는 백인들이 모든 면에서 주권행사를 하고 있었다. 스페인 으로부터 멕시코가 독립을 쟁취할 때 앞장선 것도 ‘크리오요’들 이었다.

그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동향 이였는데,불란서와 스페인의 전쟁에서 나폴레온의 승리는 결정적 이였다. 불란서와의 전쟁에서 스페인의 패전은 길고 긴 300년 동안의 식민통치의 종말을 예고하는 징표로 작용하고 있었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자랑스러운 고대문명의 터 위에 스페인 침입자들은 십자가를 세워 놓고 300년 동안 잔인한 식민통치를 했다. 그러나 스페인 침략자들은 역사적 변천에 따라 드디어 막을 내리고 멕시코를 떠나 스페인으로 돌아 갔다.


2. 독립과 미국-멕시코 전쟁

1823년에 멕시코는 독립국으로 창설되였고 빅또리아 장군이 ‘미국의 헌법’과 ‘스페인의 헌법’ 을 혼합하여 새 헌법을 제정하고 자기자신이 5년 단임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을 했다.

멕시코 공화국이 창설 되고 대통령이 취임하기는 했지만 멕시코는 창설된 그 다음 날 부터 내란으로 인하여 나라는 혼란의 극에 달하고 있었다..

내란의 원인은 ‘보수파’와 ’자유주의파’의 대립이였는데 제멋대로 정권을 탈취하고 저들의 기분에 떠라 정책을 바꿔서 정국을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이였다. 독립 후 불과 10여년 동안에 대통령이 네번이나 바뀌는 혼란이 계속 되었다.

보수주의자A.L.산타 아나 장군이 군부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쟁취했는데 그는 강력한 보수주의자 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무능한 대통령 이었다. 그가 집권하는 기간에 멕시코는 국토의2/3를 미국에게 빼았기는 비운에 처했다.

1836년에 석유가 무진장 매장되여 있는 텍사스에 살고 있는 멕시코 국적을 가지고 있는 백인들은 미국의 사주를 받아 반란을 일으켜 멕시코 로부터 텍사스의 분리를 선주장했다.

멕시코 정부는 텍사스 백인들의 분리 선주장을 용납할 수 없음으로 수비대를 동원하여 텍사스 알라모 요새를 공격했다. 하지만 오히려 수비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텍사스에 살고 있는 멕시코 백인들이 멕시코 정부를 향하여 반기를 들고 분리를 주장 하게된 근본적이며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

미국의 사주도 물론 큰 이유 이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노예문제’ 때문 이였다. 텍사스의 백인 대지주들은 광활하고 넓은 땅에 농사를 짓기 위하여 무진장한 노예들이 필요했다.

필요한 노예를 확보 할려고 하는 백인들의 요구에 대하여 제동을 거는것은 멕시코 정부이었다. 멕시코 정부는 그때 오히려 노예해방을 위한 방향으로 정책을 구상하고 있었다. 텍사스의 백인 지주들은 멕시코 정부의 이런 동향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미국의 사주도 한 몫을 했다. 반란을 일으켜서 승리한 백인들은 곧 텍사스의 독립을 선언했으며, 1836년에 미국은 곧 바로 텍사스의 독립을 승인했다. 그 후부터 만일 멕시코 군대가 텍사스 를 공격하면 그것은 미국에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라고 미국은 호통으로 협박했다.

미국은 1836년에 텍사스의 독립을 승인하고 그 후 1854년에 텍사스를 미국의 28 번째 주 (State)로 병합시켜 자기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와 같은 이웃 나라의 땅을 빼앗는 미국의 수법은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기 위하여 파나마를 콜롬비아 에서 분리시켜 독립을 하도록 음모를 꾸민 수법과 똑 같은 수법 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한(조선)반도를 지배하기 위하여 일본을 내세워 ‘가쯔라-테프트 밀약’ 을 맺은 역사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미국은 어떤 나라 이였나?

미국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한 때 보다 30년이나 먼저 북미에서 영국인들을 선두로 하여 식민지 점령을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은 1776년에 멕시코 보다 47년 먼저 북미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미국은 독립을 먼저 선포하기는 했지만 뉴잉글랜드와 뉴욕 그리고 남쪽으로 버지니아 근방등 불과 13주(State) 를 기본으로하여 초대 대통령 워싱톤을 중심으로 독립했다. 독립을 쟁취한 미국의 영토는 불과 13개 주 뿐 이며 멕시코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소규모의 영토였다.

그럼으로 미국은 독립 초창기부터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에 불탔다. 영토의 확장과 자원의 확보를 위한 미국의 욕심은 끝이 없이 계속되었다. 1844년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제임스 폴크 대통령은 텍사스를 강탈한 데 만족하지 않고 멕시코에 속해 있는 무진장하고 광활한 땅을 닥치는대로 탈취할 흉계를 꾸몄다.

결국 미국의 폴크 대통령은 <멕시코 전쟁>을 일으켰다. 그것은 곧 멕사코 땅을 빼앗을 목적이라는 것은 공개된 비밀일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1847년 8월에 미국은 의도적으로 멕시코 국경을 침범하여 국경 분쟁을 유발시켰고, 스코트 장군의 지휘로 1만2천명의 미해병대가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를 공격하여 강점 하기에 이르렀다.

보수주의자인 싼타 안나 멕시코 대통령은 전쟁포로 붙잡히는 수모를 당하면서 완전한 참패로 미국에 항복했다.패전한 멕시코는 미국의 강압에 못이겨 <과달루베 – 이달고 평화조약>을 체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조약에 의하여 멕시코는 이미 빼앗긴 텍사스를 포함하여, 캘리포니아, 네바다,뉴멕시코, 아리조나, 유타 그리고 콜로라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단돈 1천5백만 달러의 헐값으로 미국에 팔아 넘겨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멕시코는 전쟁 배상금으로 오히려 325만 달러를 미국에게 지불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 졌다.

<과달루베-이달고 평화조약>

<과달루베-이달고 평화조약>에 의하여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국경이 정해 졌는데 현재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국경선인 ‘리오그란데’ 강은 바로 그 때에 정해 졌던 국경선이다.

국토의 2/3를 미국에게 빼앗긴 산따 안나 대통령은 멕시코의 민중봉기에 의하여 추방되여1855년에 미국으로 망명하고 말았다.

산따 안나 대통령을 추방한 후에 멕시코의 보수파와 자유파는 서로 정권을 잡기위하여 물고 뜯으며 3년동안 내전을 벌였다. 그 결과 3년 동안의 내전의 승리자는 자유파 로 결판났었다.

자유파 베니또 후아레스는 1861년에 대통령에 취임하여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다. 후아레스 대통령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광활한 토지와 성직자와 군인이 소유하고 있는 부당한 특권들을 몰수하고 박탈했다.

후아레스 대통령은 교회와 신부들과 그리고 지주들과 결탁한 군인들이 멕시코의 개혁과 근대화 운동에 큰 장해물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후아레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정책으로 인하여 큰 타격을 입게된 보수세력과 천주교(Catholic Church)교회는 강하게 반발 하였다. 교회에서 몰수한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해 주었지만 농민들은 감당할 재력이 없기 때문에 다시 자본가들의 손으로 넘어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후아레스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운동은 막강한 권력를 가지고 있는 교회와 지주들과 군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10여년 후에 막을 내렸다.

1876년에 새로 집권한 쁘로파라오 디아스 대통령은 극우 보수주의 자이며 전형적인 독재자 이었다. 그는 외국 자본을 무분별하게 끌어 들여와 멕시코의 토지 1/5을 외국인의 소유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빠른 경제성장을 역설하며 선전 했지만 대부분의 상업과 공업이 외국인의 손으로 운영되었으며 멕시코의 경제는 순전히 미국의 ‘당근과 채찍’에 의하여 좌우되는 종속적 체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멕시코의 철도와 석유와 광산은 95%가 외국인의 소유가 되었다. ‘멕시코는 외국인에게는 어머니이고 멕시코인에게는 계모이다’ 라는 비웃음이 나올 정도로 친미주의적 대통령 이었다.

디아스 대통령은8회에 걸쳐 대통령에 재선 되면서 35년동안 무서운 독재를 하다가 1911년에 권좌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망명 했다. 디아스 대통령의 35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은 교회와 미국을 비롯한 외국자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디아스 대통령의 정치는 미국문화 숭배와 민족문화를 멸시하는 입장과 자세였다.

그래서 멕시코 민중들은 “재선 반대 재선반대”를 유일한 구호로 외치며 친미사대주의에 빠진 디아스를 규탄했다. 바로 이 구호를 외치면 투쟁한 민중들 때문에 멕시코의 다음 세대에 전개된 “멕시코 혁명”이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3. 멕시코 혁명의 공헌과 실패

멕시코 민중들은 지긋지긋한 디아스 독재자의 35년동안의 장기집권과 무능한 지도자들로 인하여 광활한 멕시코의 국토를 미국에게 몽땅 빼았긴 실정에 대하여 분노를 품고 있었다. 이러한 민중의 거센 분노와 반발이 결국 ’멕시코 혁명’의 도화선으로 이어졌다.

1910년에 혁명가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과거 독재자들에게 강제로 빼았겼던 농지를 모두 인디언들에게 되돌려 줄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여덟차례나 재선하여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일인 독재를 한 정권에 도전하여 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투쟁한 것은 오로지 민중들이었다. 이들이 봉기의 선두에 나섰다.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혁명의 기수로서 성공하여 드디어 혁명정부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 하게 되었다. 하지만 3년후1913년에 미국이 후원하는 우에르따 장군의 친미 우익 쿠테타로 인하여 마데로 대통령은 암살 당하고 말았다. 그 후 우익 군사쿠테타를 일으킨 우에르따 장군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바람에 민중혁명의 불길은 잠간 동안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친미 군사 독재정권이 들어 서서 반혁명적 탄압과 암살의 공포 분이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미국은 멕시코 민중들의 투쟁을 무식하고 천박한 행동이라고 비방하면서 우에르따 군사정권을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1917년에 미국이 지원하는 우에르따의 군사 독재정권은 혁명군에 의하여 완전히 타도되고 멕시코 혁명의불길은 또 다시 타올랐다.

1917년에 카란사-오브레곤 두 사람의 연합으로 형성된 혁명의 주체세력은 우선 외국 자본이 국내 경제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헌법을 개정하고 과거에 독재정권을 지원한 Catholic 교회를 개혁정부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다. 농민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하는 개혁도 과감하게 시행했다.

또 혁명에 과감하게 참여한 메소티소(흑인 혼혈) 와 인디오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으며 흑인과 인디오의 문화가 멕시코 문화로 자리매김 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었다.

멕시코 혁명을 통하여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은 ‘멕시코는 백인의 국가가 아니다’ 라고 하는 인식의 뿌리를 민중의 마음속에 깊이 내리게 한 것이였다.

민중의 인식변화로 인하여 원주민들은 ‘마야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적 불행에대한 민족적 정체성을 밝히는데도 멕시코의 혁명운동은 크게 기여하였다.

그후에 멕시코의 혁명은 어떻게 진행 되었나?

혁명운동 내부에 분파와 분열의 문제가 있긴 하였으나 이 문제는 어느정도 극복이 되었고, 혁명운동의 진행은 차질없이 진행되었다고 평가 될 수 있다.

카란사-오브래곤 두 혁명가들이 결속 된 혁명정권은 1917년부터1927년까지 10년동안 수 없이 많은 우연곡절 속에서 부분적 개혁을 진행하면서 혁명정권을 견지해 나아갔다.

1927년에 멕시코에서 뿐 만 아니라 중남미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당이라고 평가 받는 멕시코의 ‘제도혁명당(PRI)’이 새로 창당 되었다. 그런데 이 새로 창당된 ‘제도혁명당(PRI)’은 집권 여당으로써 1927년부터 2000년 까지 장장 73년 동안 장기집권을 했다.

‘제도혁명당(PRI)은 창당 이후73년동안 대통령 선거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지방 주지사 선거와 상 하원 선거에서도 항상 95% 이상의 득표로 승리해 왔다.

카르테니스 대통령(1934-1940)의 정권하에서 멕시코 노동당총연합회(CTM)가 창설되였고, 전국농민총연합회(CNC)가 창립 되였으며, 멕시코 혁명당((PRM)등 다양한 민중 중심의 사회운동 정당과 사회 단체들이 창립되고 활동을 전개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있어서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에게 큰 시련과 난관이 대두 되였다. 미국의 영향하에서 ‘제도혁명당’은 집권당 으로써 방향을 잃고 개혁정신은 표류하기 시작 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말레만 대통령’ 과 ‘코르티네스 대통령’이 집권을 하고 있었는데 이 두 개의 정권 하에서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좌파 운동’ 이라는 이유로 모두 다 추방을 당했다.

놀랍게도 멕시코 제도혁명당이 혁명의 전통을 완전히 망각하고 친미반공 정책을 더 중요시하는 우익 노선으로 변질 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 자본이 대학도시를 건설 하고 고속도로와 댐과 거대한 공공 투자등 미국의 수입대체 공업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다.

멕시코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시대 하에서 반공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당시 멕시코는 미국의 자본주의적 지배가 노골화 되고 있던 1960년대에 농업생산이 한계점에 도달 했고 소득 격차가 심화되는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었다. 빈곤과 실업자 문제와 농촌을 떠난 도시인구 폭발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으며 그리고 장기간 계속된 독재 정권에 따른 정치적 부패등으로 인하여 멕시코는 온 나라가 통채로 혼란에 빠져드는 국면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런 혼란중 에서도 한가지 특기할 것은 마테오스 대통령(1657-1964)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쿠바 혁명 정부와 자주외교를 통한 친교를 계속 했다. 이 때문에 마테오스 대통령은 자연히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게 되었다.

그 당시 멕시코 민중들은 무조건 반정부적이며 혁명정신을 상실한 현직 대통령을 불신임했다. 그런데 친쿠바 노선을 고집하고 있던 마테오스 대통령에게 만은 민중들이 지지와 호의를 나타 냈다. 그때 멕시코 민중의 마음은 마치도 역사의 시계 바늘 역할과 같았다.

그런데 1967년에는 ‘67 멕시코 올림픽’이 멕시코시티에서 진행 되었으나 멕시코 학생들과 노동자 그리고 빈곤에 시달리는 민중들은 일제히 이 올림픽 대회를 반대하며 민중들의 단결단합을 시도했다.

오르다스 대통령은 농촌게릴라와 과격 학생들의 데모를 몹시 염려 했다. 이 때 대통령은 군대를 총동원하여 민중들의 투쟁을 강압적으로 탄압하면서 올림픽을 불안 속에서 겨우 치룰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멕시코 정치풍토는 변화되는 계기가 왔다. 2000년7월 멕시코의 ‘제도혁명당’ 은73년의 집권역사를 마감했다. 이 집권 여당은 드디어 제일 야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대선은 중도 우파 노선을 주장한 폭스가 대통령이 되어 ‘제도혁명당’으로부터 정권을 이양 받았다.

멕시코 혁명의 실과 허는 무엇 인가?

멕시코 혁명은 민중들에게 역사를 바로 알게 하는데 공헌했다. 멕시코 국민의 대다수인 혼혈족과 원주민들은 왜 우리는 세상에 태어 나서 죽을 때 까지 빈곤과 억압속에서 살아 가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역사의식의 눈을 뜨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이70여년이나 장기 집권을 하면서 초심을 망각하였기 때문에 실패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정당은 ‘초지일관’ 하지못했다. 그 결과는 곧 실패로 나타났다.

멕시코는 1986년에 GATT에 가입 했고, 1992년에 북미지역자유무역협정(NAFTA)에 가입 했고, 이어 1996년에는 미국과 단독으로 자유무역협정(FTA)에 가입했다.

미국-멕시코 자유무역협정(FTA)은 강대국의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사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멕시코 경제의75% 이상이 미국에 의존하게 되었고 종속구조화 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곧 민중들의 의식을 흔들어 주었다. 역사적 견지 에서 볼때 오늘 멕시코의 민중들이 미국에 대하여 당당한 자세를 갖고 반미감정을 노출해 온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제도혁명당’이 완전히 망하고 폭스 대통령의 정권이 극우적 정권으로
완전히 돌아서면서 오늘의 멕시코는 또 다시 미국에 휘들리는 전형적인 친미 예속 국가로 전락 하고 있는 과정에 있어 이를 바라보는 민중들은 매우 허무한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다.

4. 멕시코를 망치는 자유무역협정(NAFTA)

‘자유무역협정’이라는 말 자체가 총체적으로 약소국에 대하여 경제적 약탈이며 인권 침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멕시코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이 체결된지 16년이된 오늘에 있어서 멕시코의 경제문제와 민중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른바 나프타(NAFTA)가 멕시코에 끼친 해독에 대하여 세계 각계 각층의 언론들과 사회과학자들은 이구동성 으로 미국에 대하여 비판적 발언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프타’는 미국의 대기업들의 이윤만을 생각하고 멕시코사람들의 생존권 따위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나프타로 인하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중되여 빈곤에 못 이겨 농 촌을 떠나 무조건 도시로 이동한 사람들의 수는 지난 10년 동안에 250만이 되었다.

이들은 도시 어느곳 에서 든지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곳 이라면 노점상을 열어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으로 멕시코 는 가는 곳 마다 노점상으로 차고 넘치는 기형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가 견디지 못해 생명을 내 놓고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최근에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멕시코인 불법 이민자들의 수는 30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 강제 추방 되는 멕시코 사람들이 한 해에23만명 가량된다.

이런 현상으로 인하여 흑인들이 일자리를 멕시컨들에게 빼앗길가 염려하는 인종적 갈등이 미국에서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FTA는 ‘미국과 멕시코가 협상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대기업이 협상한 것이다’라고 비판하는 소리들이 대중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시장개방은 곧 수많은 멕시코인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채 잃게 만들어 왔다.

사회분석가 Sedsol이 2005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나프타로 인하여 5천4백만명의 멕시코 민중들이 기초생활도 유지하기 어려운 절대빈곤층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와 정반대로 가장 돈 많은 상위층은 전체 인구의 20% 이며 이들이 국가 소득 의 절반이상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은 인간을 위한 협정이 아니라 대기업의 이윤 증대만을 생각하는 극히 비윤리적이며 비인간적 협정이다. 이 때문에 시장개방으로 인하여 미국에서 멕시코로 유입되는 식량의 대부분이 미국 시장에서 소비가 거부된 불량품들이고 가난한 멕시코인들에게 차려지는 것은 암을 유발하는 불량품을 비롯하여 공업용이나 사료용인 옥수수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식량 대량수입을 하면서 농민들에게는 꽃이나 채소를 재배하도록 장려 했다. 처음에 농촌 진흥 보조금을 약속 했지만 그것도 말 뿐이고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친미 정권은 뭐라고 항변하고 있는가?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외국 자본이 국내에서 고용을 창줄하며, 국내 기업은 품질 이 좋은 제품을 생산하여 경제성장을 시킬 수 있음으로 자유무역과 국제적인 경제통합이 멕시코 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라고 괴변을 역설하고 있다.

이와같은 괴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국제적 경제통합을 주장하면서 세계화 를 외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주장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

자유무역과 세계화 정잭으로 인하여 파괴된 농촌의 농부들은 저임금 노동자가 되여 도시로 집중되고 도시의 극빈자로 전락한다. 일단 극빈자로 전락하면 그들의 일생동안에 회복은 불가능 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박정희 군사정권 때부터 이미 시작된 한국의 비운과 유사하다.

멕시코에서 ‘나프타’가 시작된 1994년1월1일을 기하여 원주민 사빠띠스타 부족인들이 집단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멕시코 정부는 군대5만을 동원하여 진압에 총력을 기우렸지만 원주민의 저항은 5년이나 지속 되었다.

멕시코 언론은 원주민의 무장봉기를 과소 평가하여 소수의 ‘게릴라 집단’으로만 보도 했다. 하지만 멕시코 정부는 원주민들에게 평화조약을 제의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나타 나고 있다.

원주민들의 봉기의 유일한 이유는 국가를 반대 하는것이 아니라 국가를 망치는 자본주의적 ‘나프타’ 같은 악법을 우리는 반대한다 라고 했다. 그외에는 아무 조건이 없었다고 했다.

2000년 7월에 집권한 폭스 대통령은 6년의 임기를 끝내고 2006년9원1일 국회에서 고별연설을 하려고 했으나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그는 고별연설도 못하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폭스 대통령은 나프타의 열성적 지지자 이라고 맹열히 비난하면서 ‘나는 미국의 강아지 하고는 안놀아’ 라고 충격적 발언을 하여 전 남미 국가들에게 파문을 일으켰다.

차베스 대통령은 폭스 대통령과 영국의 블레어 총리를 가리켜 미국의 ‘길 들여 진 강아지’ 라고 혹평 하기도 했다.

폭스가 떠난 후에 오늘의 멕시코는 또 어떻한가?

2006년7월 2일에 멕시코의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진행 되었다. 폭스 대통령이 추천하고 부쉬가 지원한 칼데론 후보자가 출마 했다. 칼데론의 경쟁자로 민주혁명당의 후보자 오브라도르가 등장 했다.

‘나프타 지지’ 와 ‘나프타 반대 재협상’ 이 멕시코의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이슈 가 되었다.

선거전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진보 진영의 오브라도르가 36.5%이고 보수진영의 칼데론 후보자가32.5%로 나타남으로 진보 진영의 당선이 거의 확정적 이었다.

하지만 돈과 중상이 난무하는 부정서거로 인하여 투표 결과는 불과 ㅇ.5%의 차이로 보수진영의 후보자 칼데론의 승리로 발표 되었다. 그 누가 그런 발표를 곧이 듣겠는가?

국 내외의 언론들은 일제이 부정선거의 가능성을 보도했다.

투표 재검표 요구가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멕시코 대법원은 난장판이 된 선거 결과에 대하여 수주가 지난후에 극우 친미 보수주의자 칼데론의 승리를 발표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민중들은 오브라도르를 우리들의 ‘거리의대통령’ 이라고 추앙하고 있다.

멕시코 정국의 ’난장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멕시코의 또 하나 난장판은 ‘멕시코의 마약’ 문제이다.

멕시코에서 마약 문제를 근절 시킬 수 없는 이유는 미국이 멕시코 불법 이민을 근절 시킬 수 없는 이유와 일맥 상통하는 이유이다.

멕시코는 옛날부터 미국의 착취의 대상이였다. 지금은 자유무역협정, 즉 ‘나프타’로 역시 빈곤의 유산을 이어 받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공무원들과 경찰들 까지도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부에서 아무리 ‘마약 근절’ 을 외처도 ‘소 귀에 경 읽기’ 가 되고 있을 뿐이다.

부쉬는 헬리콥터와 군장비를 제공 해 주고 5억달러의 지원을 약속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미국이 멕시코의 불법 이민을 해결할 수 없는것 처럼 역시 마약 문제도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우익정권 칼데론 대통령도 취임후 79억 달러를 배정하여 마약과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2008년6월 25일에 멕시코 연방 경찰국의 마약 감시국장이 멕시코시티의 한 식당에서 총에 맞아 즉사 했다. 이렇게 죽는 사람들이 해마다 수천명에 이르고 있다.

미국과 칼데론 정권은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보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지 않는 한 그 해결은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무력과 강압적인 재래식 방법은 ‘병 주고 약 주는 식’ 뿐이기 때문에 결코 그 문제 해결이 불가능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기 어려운 현상도 보인다. 그것은 멕시코의 친미 극우파로 알려진 칼데론 대통령이 최근 외신 기자들에게 “나는 남미의 좌파정부들과 협력 하겠다. 또 나는 쿠바의 카스트로와 베네스엘라의 차베스 대통령과도 건설적 대화가 필요하며 관계개선에 노력하겠다” 라고 말 했다. 이것이 믿어 지지는 않지만 하나님과는 멀고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를 두고 보아야 하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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