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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의사가 말하는 광우병 이야기 건강 상식

의과대학에서 배운 식인종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광우병으로 덩달아 유명해진 ‘kuru'라는 질환 때문인데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가 않는군요. 파푸아뉴기니의 포어 부족에서만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이 이상한 전염성 질환에 대한 보고가 1950년대에 있었던 이후로 이 질환이 상당히 많은 의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차도 5분 거리) 한인들도 많이 사는 용커스라는 뉴욕 주의 도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용커스 태생의 Daniel Carleton Gajdusek 박사라는 분이 바로 세계 최초로 프라이온 단백에 의한 질환인 이 kuru를 연구해서 1976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했었습니다.

식인종의 뇌질환 '쿠루'

어쨌거나 kuru라는 이 질환의 원인은 이 부족의 식인의 풍습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부족은 사람이 죽으면 고인의 시신을 나누어 먹었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주로 고기를 먹고 여자와 아이들은 남은 부위를 처리했는데 뇌도 이렇게 힘없는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부위중의 하나였나 봅니다. 그래서 이 kuru가 여자와 어린아이에 많았고 이 질환의 원인이 밝혀진 후로는 식인의 풍습이 근절되었다고 교과서에서 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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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제가 학교에 다닐 때 프라이온 단백으로 생기는 질환 중 kuru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배웠던 것은 바로 Creutzfeldt-Jakob병이라는 질환입니다. kuru는 어차피 한 지역에서 독특한 풍습으로 유지되던 병이지만 이 Creutzfeldt-Jakob병은 식인을 하지 않는 정상적인(?) 사람에게 생기는 질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병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프라이온 단백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건 일반인이건 전염성 질환이라고 한다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혹은 하다못해 기생충이라도 뭔가 살아 있는 생물이 옮기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물론 무기물인 납, 수은 같은 것도 몸에 축적되면 병을 일으키지만 전염성이 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프라이온은 생물이 아닙니다. 구조적으로는 가장 간단하다는 측면에서 바이러스와 비견될만하지만 유전정보를 가지는 핵도 없고 감염체인 자기 자신과 외계를 분리하는 세포막 같은 것도 없습니다. 세균을 대포, 바이러스를 권총에 비교한다면 프라이온은 그저 나사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나사하나가 온 세상(한 생물체)을 파괴할 능력이 있다면 정말 경악스러울 따름입니다.

좀비와 같은 prion 단백

이 프라이온은 위에서 언급한 Creutzfeldt-Jakob병과 양에서 생기는 병인 scrapie의 발병 가설로서 1960년대에 처음 제시되었습니다. scrapie는 18세기 때부터 이미 기술이 되었다고 합니다. 병에 걸린 양이나 염소가 나무 등에 자기 몸을 대고 가려운 것처럼 긁는 현상에서 이름이 왔다고 하는데 이런 동물의 사체를 부검해보면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에서 생기는 병인 Creutzfeldt-Jakob병도 이와 같은 현상이 관찰되기 때문에 이 두 병의 유사성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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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8일 후의 한 장면
이 프라이온의 가설이 제시된 이후로 많은 의학자들이 프라이온 자체를 분리해내려는 노력을 했고 이에 성공한 UCSF의 프루시너 박사는 1997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프라이온의 연구 초기부터 프라이온이 생물체가 아니라는 힌트는 많이 있었습니다. 프라이온은 핵산을 변형시키는 강력한 자외선으로도 파괴되지 않으며, 열에도 강하고 단백 분해 효소로도 잘 분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 현대에 와서 이 단백으로 초래되는 병인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더 키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나사 하나에 비견할 만한 하찮은 작은 단백질 구조가 무서운 점이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중추 신경 조직에 도달하게 되면 자기 복제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봄직한 지구인에 침투한 에이리언들이 퍼지는 것보다도 더 무섭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생물도 아닌 것들이 어떻게 자기 복제를 하면서 퍼져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단백은 좀비에 물린 사람들이 좀비처럼 되어가는 영화 속의 장면처럼 주위의 정상 단백들을 자기와 같은 비정상적인 단백으로 변형시키고 결국은 이것이 축적된 세포를 죽게 만듭니다.

세균도 체면이 있다

바이러스나 세균의 생리를 공부하다보면 발견하는 것이 이들 균들은 그래도 최소한의 체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균은 바로 감염되고 사람이 얼마 못가서 바로 죽는 그런 독성이 강한 균일 것입니다. 그런데 균들이 인간들을 만나면 처음에는 무시무시하게 독하게 굴지만 이렇게 독하게 구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라도 하는 듯 점차 순화되어 갑니다. 물론 균이 생각이 있어서 인간을 배려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균에도 수많은 균종이 있고 감염된 사람이 순식간에 죽게 된다는 것은 사람을 숙주로 생존해야 하는 그 균도 충분히 증식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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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disease의 뇌의 조직사진
이런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독한 균들 보다는 덜 독한 균들이 더 많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예를 들어 1968년 미국에서만 5천만을 감염시키고 3만4천명을 사망케 했던 홍콩 독감 같은 것이 이제는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인지도 모릅니다.(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물론 언제든지 이런 독한 균(혹은 바이러스)의 유행은 다시 올 수 있지만 다시 이런 대유행이 온다면 이는 인간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균들에(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고 힘을 믿고 날뛰는 초보 조폭처럼) 의해 올 수가 있지 우리의 곁에 오랫동안 있어온 보통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는(합법적인 사업으로 진출하는 기반이 잡힌 조폭처럼) 그나마 통제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스나 조류독감이 독감보다도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발병하지만 국가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유일 겁니다.

그런데 이 프라이온 단백은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약한 놈들이 선택되고 오래 지속되는, 자기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택하는 세균과 바이러스 같은 체면이 없습니다. 다른 식으로 비유하면 뇌가 없는 좀비와 같은 존재들이죠. 무차별로 공격하고 비록 음식을 익혀 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아마 태워먹는 것은 괜찮을 겁니다.)

프라이온 좀비들의 치명적인 약점

하지만 아무리 무서운 놈들이라도 이 좀비들에게 인류가 멸망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놈들이 가진 치명적 약점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놈들은 자기 발로 돌아다닐 능력이 없습니다. 즉 아무리 광우병에 감염된 사람과 같이 지내도 이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 병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병에 감염된 동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를 안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 지는 것 같습니다. 국가는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가 대중에 유통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 이 병의 공포가 숨어있습니다. 이는 이 병의 잠복기가 엄청나게 길다는 점입니다. 일부의 주장에 의하면 잠복기가 50년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에 병에 감염된 음식을 먹고도 모르고 지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병이 수십 년 후에 폭발적으로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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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뜯는 복받은(?) 소
kuru가 식인의 풍습에서 왔다면 인간 광우병은 감염된 동물을 섭취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양이나 소들의 동물은 도대체 어떻게 이 병에 걸릴까요. 그것은 바로 이들 초식동물에게 성장을 촉진하고 육질을 좋게 할 목적으로 동물성 사료를 먹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양에게 양을 먹이고 소에게 소를 먹이는 것이죠. 소에게 사료대신 자연의 풀을 뜯게 하는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는 그래서 광우병의 보고가 없습니다. 식인종들은 식인의 풍습으로 고통 받았고 초식동물에게 고기를 먹이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간이 이제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쇠고기를 즐겨 먹었는데....

저는 미국에 와서 미국산 쇠고기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미국 정부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를 미리미리 발견해서 다른 소에 퍼지지 않게 노력해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를 떠나서 그냥 상식으로 정말 광우병에 걸린 소가 100% 격리되었고 내가 먹었던 쇠고기는 괜찮았을까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프리이온이 발견되는 뼈나 뇌는 먹지 않고 고기(근육)만 먹었고 저도 제가 찾아서 소의 뼈나 뇌를 먹어본 일은 없습니다.(제가 자주 가는 설렁탕집에서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프라이온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이미 체내에 들어온 프라이온 단백을 가지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미국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도리가 없습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한우와 호주, 뉴질랜드산 쇠고기만 먹어왔습니다. 그래서 굳이 확률을 따지면 미국 사람보다 인간 광우병의 가능성이 정말 희박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 Creutzfeldt-Jakob병의 발병이 백만 명 당 하나라고 하는데 한국은 5천만명에 하나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교통사고의 불안에 떨면서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인간 광우병이 아무리 무서워도 모든 국민이 불안에 떨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상의 조처를 고안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에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광우병 검사를 더 철저히 하고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의 유통을 더 신속히 막아 달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우선순위는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는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부터 중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지금은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지만 나중에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먹는 것도 안심하지 못하고 먹는 참 이상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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