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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드림!" 고려인 1020세대 한국어 열풍 한국의 해외동포 현황

"코리안 드림!" 고려인 1020세대 한국어 열풍
올해로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 연해주 18만 고려인들이 맨몸으로 끌려가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지 70년이 됐다. 그들은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척박한 땅에서도 한민족 특유의 근면함과 개척 정신을 발휘해 농업 일꾼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옛 소련에서 독립한 이들 국가의 정치·경제 상황이 크게 바뀌면서 고려인들은 또다시 변화의 기로에 놓였다.강제이주 70년, 지금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국에 갔을 때 일입니다. 버스에서 누군가 제 가방을 잡아당겨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방을 들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람들이 참 인정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위치한 세종한글학교. 4학년 중급반 수업이 한창이다. 대학 1학년 한올가(16)양이 교재의 예문을 다 읽자 이리나 교사가 “인정이 무슨 뜻이죠?”라고 묻는다. 원탁에 둘러앉은 학생 10여명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다가 교사가 러시아말로 설명해주자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우즈베키스탄의 젊은 고려인 세대 사이에서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거세다. 젊은이들끼리 모이면 러시아말보다 한국어를 더 많이 쓸 정도이다. 현재 이 나라 고려인의 40%가 살고 있는 타슈켄트를 비롯해 우즈베크 전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한글학교는 114곳에 달한다. 이곳에서 한글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은 무려 1만2000여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고려인은 30% 정도. 대부분 고려인 이주 3, 4세대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단지 모국어라서가 아니라 한국에 가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 때문이다.
실제 이들 가운데 열에 여섯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로 “한국에 가서 공부하거나 돈을 벌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벼와 목화 농장을 일구고 발전시킨 ‘농업 주역’으로서 국민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으며 부유하게 살았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국가 경제가 급속히 어려워졌고 고려인들의 삶도 고달파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식량 자급 대책의 일환으로 농경지를 늘리고 농산물 저가 정책을 펴면서 농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고려인들의 경쟁력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또 우즈베크 정부와 관공서, 기업 등이 우즈베크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공식 문서에 러시아어 대신 우즈베크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러시아어밖에 모르는 고려인들은 더욱 소외되기 시작했다.
◇개교 15주년을 맞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 세종한글학교에서 4학년 중급반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다. 타슈켄트=이경희 기자
급기야 고려인들이 러시아나 한국, 비교적 경제 상황이 좋은 카자흐스탄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모국이라는 친근감과 한류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가장 선호도가 높다.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등록금을 벌고 있다는 제율리아(19)양은 “국립 사범대 한국어과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며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졸업하면 반드시 한국에 가서 대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우즈베크에서 이같이 한국어 열풍이 일면서 한국어 교사는 인기 직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운영하는 현지 한국교육원은 전국 114개 한글학교 교사 118명에게 매달 특별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수학이나 과학 등 일반적인 과목의 교사 월급은 한 달에 7만5000숨(약 7만원) 정도지만 한국어 교사는 이보다 5만숨 정도 더 받는다. 평균 임금이 5만숨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 한국어 교사는 중산층 이상에 속한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전통무용 등 문화 또한 관심 대상이다. 대표적인 한류 스타로 손꼽히는 배용준과 안재욱은 이곳에서도 이미 스타덤에 오른 지 오래고, 드라마 ‘겨울연가’는 우즈베크방송을 통해 무려 4번이나 방영됐다. 10∼21세 고려인 여학생들로 구성된 고려무용단도 이곳에선 스타다. 부채춤과 장구춤 등 한국 전통 춤을 잘 추기로 유명해 고려인 행사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시민행사에 초청을 받을 정도다.
타슈켄트=이경희 기자
한글학교 학생 50명에게 물어보니 "한국 좋지만 난 한국인 아니다” 94%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 고려인들은 대부분 강제이주 3, 4세대로 한국 땅을 한 번이라도 밟아 본 사람이 거의 없다. 심지어 한국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다고 한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자란 사실상 러시아 사람이다. 한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점만 빼면 한국과 별다른 연관도 없다.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 등의 고향이 한국인 경우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북한 출신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 세종한글학교와 한국교육원 한글학교 재학생 등 총 5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94%(47명)가 “한국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한류 열풍과 한국인의 친근한 이미지 등을 꼽았다.
하지만 이들 중 한국을 ‘모국’이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도 안 됐다. 자신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6%(3명)에 그쳤다. 반면 ‘한국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고려인’이라는 응답이 54%(27명)로 가장 많았고, 러시아·우즈베키스탄 사람이라는 답변도 40%(20명)나 됐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로는 “한국에 가서 공부하거나 취직하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60%(30명)로 가장 많았고, 30%(15명)는 “취직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모국어라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학생은 10%(5명)에 그쳤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이나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들어가려면 한국어가 필수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살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한민족의 후손인 것은 분명하지만 삶의 터전은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옛 소련,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경희 기자 sorimo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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