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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레이스키-강제이주 70년]<3> 젊은 고려인들의 고민 한국의 해외동포 현황

[아!카레이스키-강제이주 70년]<3> 젊은 고려인들의 고민


한국말 배우기 열풍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중심가에 있는 세종한글학교 허선행 교사와 학생들. 1991년에 설립된 세종한글학교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교육기관이며 400여 명의 학생 중 80%가 고려인이다. 타슈켄트=김기현 기자
《“한국축구국가대표팀과 우즈베키스탄대표팀이 대결을 벌이면 어느 편을 응원하겠어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만난 대학생 안드레이 강 씨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20여 년 동안 살기는 했지만, 두 차례나 한국을 다녀왔고 젊은 고려인치고는 드물게 우리말과 고국의 문화를 잘 아는 그도 “이런 문제는 한번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옛 소련 해체 후의 급박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고려인 기성세대는 생존에 온 신경을 쏟느라 다음 세대에게 민족혼을 심어 주는 데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는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다.
소련권 어디에서나 교육수준이 높고 근면하고 성실한 민족으로 인정받는 고려인들. 저런 곳까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성공한 고려인 한둘이 없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고려인 사회에도 제 땅에서 뿌리 뽑힌 사람들의 우울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 떠나는 젊은이들
카자흐스탄 동남부의 에스켈디 마을. 옛 소련 때는 ‘고려인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3000여 명의 주민 중 고려인은 80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많은 고려인이 알마티와 아스타나 등 도시로 떠나고 그들이 두고 간 집과 농토에 카자흐스탄인과 위구르인이 정착했다.
이곳의 제르진스키 공립학교는 조그만 시골학교지만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에는 뜻 깊은 곳이다. 현지 고려인 중 최고위직에 올라간 유리 김(전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많은 저명인사를 배출했다. 역대 교장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려인이었다. 이름난 작가인 아나톨리 김 씨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교장으로 재직했다.
하지만 지금은 268명의 학생 중 고려인 학생은 54명에 불과하다. 겐나디 남 교장의 외동딸조차 알마티에서 대학을 나와 카자흐스탄 정부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으로 유학 갈 채비를 하고 있다.
엘리자베드 신 면장은 “학업이나 직장 때문에 먼저 도시로 나간 젊은이들이 부모를 불러 결국 가족이 다 떠난다”며 “옛 소련 시절 유명했던 고려인 협동농장은 대부분 해체된 상태”라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고려인의 40%가 수도인 타슈켄트에 모여 살고 있다. 타슈켄트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의 브루트 김 편집장은 “미래를 위해서 농촌의 젊은이들이 더 나은 곳으로 떠나는 것은 오히려 반길 일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떠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농촌을 떠난 고려인 젊은이들은 도시에서 단순 노동이나 재래시장에서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은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기도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권 내에서의 이동이 많았다. 하지만 갈수록 민족주의가 두드러지고 각국의 국경선이 높아지면서 이주도 쉽지 않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은 경제 성장과 함께 물가도 크게 올라 정착하기도 어려워졌다. 이웃 나라로 무작정 이주했다가 무국적자나 불법체류자로 떠도는 신세가 된 경우도 많다.
옛 소련 때는 고려인들끼리 경제 사회적 지위와 계층에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됐고 갈수록 격차가 커지는 추세다.
○ 한국행 꿈꾸는 고려인들

“김치도 팔아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재래시장(바자르)에서 고려인들이 한국 음식을 팔고 있다.
고향을 떠나는 고려인 젊은이들의 또 하나의 지향점은 한국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교육기관인 타슈켄트의 세종한글학교(교장 허선행)는 400여 명의 학생 중 80%가 고려인이다. 대학생과 일반인은 물론이고 고등학생까지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수업료는 한 달에 7달러(약 7000원) 정도.
1991년 설립 당시부터 학교를 운영해 온 허 교장은 “최근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 사이에 한글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최근 옆 건물을 매입해 강의실을 늘렸다.
고려인 청소년들이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재외동포법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고려인에 대한 방문 취업이 허용된 것과 관련이 많다. 방문 취업 허가를 받으면 복수 출입국사증(비자)을 받아 자유롭게 한국을 오갈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은 3000명 정도의 쿼터가 배정될 것이라며 큰 기대를 건다. 지원자에 비해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인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국어시험 성적순으로 선발할 소지가 있다. 벌써부터 한국어시험에 대비해 공부하려는 젊은이가 많다.
하지만 한국어 대신 우즈베키스탄어를 배우는 고려인 젊은이도 많다. 고려인들에게 러시아어는 모국어와 같지만 대부분 우즈베키스탄어는 못한다. 그래서 공직 등에 진출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를 우즈베키스탄 학교에 보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타슈켄트·알마티=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 고려인 생활 국가별 차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은 서로 중앙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라이벌 관계. 넓은 국토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잠재력이 큰 나라들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두 나라는 경제력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대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카자흐스탄은 2000년 이후 해마다 10% 안팎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반면에 우즈베키스탄은 10여 년째 경제가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사이의 지도력 격차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두 사람은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할 때부터 지금까지 장기 집권하면서 철권통치를 펼쳐 왔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과감한 개방경제와 개혁을 추진하는 동안 카리모프 대통령은 소련식 통제경제 체제를 고집해 왔다. 양국에 살고 있는 고려인 사이의 격차도 크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청년회 소속의 한 청년은 대학 졸업 후 일자리가 없어 소규모 자영업을 하려고 해도 규제와 부패 때문에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반면에 카자흐스탄 농촌 출신의 율라 남 씨는 알마티로 올라와 명문 카자흐스탄경제경영대(KIMEP)를 졸업하고 다국적 기업인 P&G에 취직해 매니저로 일한다. 그는 “열심히 공부만 하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1937년 강제 이주를 당한 1세대 고려인 노인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고 연금도 더 올려 줬다. 강제 이주의 직접적인 책임이 없지만 보상 차원에서 이뤄진 것. 덕분에 상당수의 고려인 노인의 생활이 안정됐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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