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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을 찾아서]舊蘇 해체 후 홀대정책에 중앙亞 떠돌아 한국의 해외동포 현황

[고려인을 찾아서]舊蘇 해체 후 홀대정책에 중앙亞 떠돌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 외곽 백테미르 지역에 위치한 ‘쿠일류크 시장’에서 고려인 부녀자들이 김치 등 손수 만든 밑반찬을 팔고 있다.
“아이고, 한국에서 왔습네? 반가우이.”
지난해 12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시 ‘쿠일류크 시장’에서 만난 고려인 허마이아(69·여)씨. 그는 부모에게서 배운 북한말을 구사했다. 20년째 시장에서 콩나물 무침과 백김치 등 각종 밑반찬을 팔고 있는 그는 그 옛날 ‘농업영웅’으로 부와 명예를 누렸던 고려인 2세다.
예전엔 시장에서 장사하는 고려인이 수백명이 넘어 ‘쿠일류크 시장=고려인 시장’이라고 인식될 정도였지만 지금은 고려인 상인이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고려인들이 상당하지만 대부분 고려인 동포들의 삶은 허씨처럼 고달프기 그지없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600달러에 불과한 우즈베키스탄. 경제난과 독립 이후 심해진 이민족 차별 정책은 이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근면하고 우수한 농업기술을 갖고 있던 고려인들은 과거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1937년 옛 소련에서 맨몸으로 쫓겨나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한 뒤 강한 정신력과 의지로 황무지를 논밭으로 만들었고, 재배에 부적합한 땅을 개간해 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소련 국가 중 우즈베크가 농업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고려인 덕분인 셈이다.
◇옛 소련 시절 국가로부터 농업영웅 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고려인 1세대 김병화씨. 우즈베크 타슈켄트시 백테미르 김병화 농장 한쪽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과 흉상이 세워져 있다.
당시 고려인들이 일군 농장은 40여곳.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김병화·황만금 집단농장이다. 타슈켄트 외곽 벡테미르에 위치한 김병화 농장은 대표적인 목화와 벼 재배 농장으로, 김씨가 농장장을 맡은 1940년부터 급성장했다. 김씨는 소련정부에서 수여하는 노력영웅 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인물이다.
3127ha 규모의 이 농장에는 현재 3000명의 농민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고려인은 800명 정도이다. 예전엔 고려인이 90%가 넘었다. 이 농장에 거주하는 최고령 고려인 김안나(94) 할머니는 김병화 농장을 만든 주역으로, 고향은 함경북도 길주이다. 14세 때 부모와 러시아로 건너온 뒤 24세 때 이곳 우즈베크로 와 1500여명의 고려인들과 함께 3년 동안 남의 집 마당과 맨땅에서 먹고 자면서 집을 짓고 밭을 일궜다. 김 할머니는 “우즈베크에 와서 처음엔 힘들었지만 농사짓고 장사해서 6남매 키우고 모두 대학을 보냈다”면서 “이곳(우즈베크) 사람들이 우리 고려인들을 얼마나 존경하고 우러러봤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타슈켄트시 외곽의 김병화 농장 내 주택가. 예전엔 고려인이 250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800여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났다. 농업, 공업, 군사기지 등 지역별 분업 형태의 연방제가 무너지면서 농업 분야에서 우즈베크가 차지하던 비중이 급감하자 수출을 늘리기 위해 정부는 농산물 저가 정책을 펴고 농지를 마구잡이로 개간했다. 이에 따라 농민 수가 급격히 늘면서 그동안 독점적인 위치에 있던 고려인들의 경쟁력은 낮아졌다.
농장 운영 방식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땅에서 농사를 지어 수확량의 일부만 농장에 내면 됐지만 독립 이후에는 농사를 지으려면 돈을 내고 땅을 빌려야 했고, 돈이 없으면 더 이상 농사도 지을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이농현상’이 심화됐고 취직도 여의치 않아 고려인들은 살길을 찾아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인근에 있는 황만금 농장도 마찬가지이다. 타슈켄트시의 150여개 농장 가운데 가장 큰 규모와 생산량을 자랑하는 이 농장은 한때 고려인들 사이에서 최고 부자 동네로 꼽히기도 했지만 농사짓는 고려인이 점점 줄면서 그 명성을 잃었다.
고려인 중 일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혹은 부모의 고향을 찾아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현재 연해주 지역에는 4만여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3년부터 러시아 정부가 외국인에게 49년 동안 농지 임대를 허용하는 토지보유법이 발효되면서 이들의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동북아평화재단과 러시아 지역 고려인들이 함께 만든 연해주 우스리스크의 고려인 집성촌 ‘우정마을’에는 현재 우즈베크 등에서 돌아온 33가구, 100여명의 고려인이 모여 살고 있다.
99년 우즈베크에서 러시아로 건너와 방황하다가 2002년 이 마을에 정착한 강나시자(47·여)씨는 “재산은 집과 비닐하우스 1개동에 불과하지만 내 땅에서 농사를 마음껏 지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면서 “러시아는 고려인들에게 또 다른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타슈켄트·우수리스크=이경희 기자
"3월부터 한국 방문·취업 쉬워져 고려인들에 뜻깊은 한 해 될 것”
■문하영 駐우즈베크 대사
“올해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에게 매우 뜻 깊은 해가 될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의 문하영 대사(사진)는 올해가 고려인 사회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인 강제이주 70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식이 열리고 재외동포들을 위한 한국 사회의 지원도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2005년 초 우즈베크에 부임해 임기를 마치고 2월 고국으로 돌아가는 문 대사는 2년 동안 많은 일들을 해냈다. 그 중에서도 고려인들에게서 가장 지지를 받는 것은 오는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방문취업제가 꼽힌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25세 이상 독립국가연합(CIS) 고려인과 재중동포 등 우리 동포들이 한국어 시험만 통과하면 자유롭게 한국에서 취업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문 대사는 “우즈베키스탄은 교육제도상 21살이면 대학을 졸업하기 때문에 25세 이상으로 나이를 제한하면 실효성이 떨어지므로 나이 제한을 낮춰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즈베크 한국대사관의 노력으로 고국 땅을 밟은 고려인도 크게 늘어났다. 특별 산업연수생 600명을 비롯해 어학연수, 유학 등으로 800여명이 한국을 찾았다.
문 대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한명숙 국무총리가 우즈베크를 잇달아 방문해 고려인 동포들과 접촉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증폭된 것도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고려인 사회에 대한 분석과 조명도 본격화된다. 이를 위해 우즈베크 한국대사관은 14개 지역 고려인문화협회와 연계해 정확한 지역별 고려인 인구를 파악 중이다. 또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있다. 지금까지는 각종 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지원을 받는 쪽이나 해주는 쪽이나 모두 불편을 겪어왔다. 타슈켄트=이경희 기자 sorimo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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