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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지 Scheme (개인)자료용 글들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으로 이주한 이탈리아 이민자, 찰스 폰지(Charles Ponzi)라는 인물은 당시 캘리포니아 지방의 부동산 투기 붐을 타고, 이른바 ‘피라미드 투자’ 사기를 계획합니다.

그는 국제 우편 쿠폰(International Reply Coupon: 국제 우편 요금을 지불하는 대체 수단)과 관련된 사업 계획을 내걸고 투자자들에게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폰지는 해외에서 대량으로 국제 우편 쿠폰을 사 미국에서 유통시키면, 두 나라 사이의 물가 차이 때문에 3배에서 6배 사이의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선전합니다.

이 국제 우편 쿠폰이 국가 간의 시세 차이 때문에 미국에서 더 비싸게 팔리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우체국에서 그런 식의 쿠폰 유통을 허용한 전례가 없을 뿐더러, 그런 식으로 통화를 환전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일이 걸렸죠. 한 마디로, 폰지가 내세운 사업 계획은 사기를 위한 명분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먼저 주변의 아는 이들을 끌어 모아 성공적인 투자를 받은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폰지는 자신의 가짜 사업 계획과 위장 투자 금액을 통해 ‘2차’ 투자자들을 끌어 들였죠. 이 돈으로 첫번째 투자자들에게 약속된 이윤을 지불하고 해주고, 쉽게 돈을 번 초기 투자자들에 관한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 더 많은 수의 3차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이들의 돈으로 2차 투자자들의 이윤을 지불하고… 이렇게, 피라미드 모양으로, 밑으로 내려갈수록 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돈을 불리는 방법으로 폰지의 피라미드 투자 사기는 크게 번창합니다.

폰지의 유가 증권.
45일 후 50%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투자가 늘고 입 소문이 퍼지면서, 목사 변호사, 정치가, 금융 전문가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폰지의 피라미드 투자에 참여합니다. 투자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1920년 초, 폰지의 은행에는 10억 달러가 넘는 돈이 쌓입니다. 단 수개월 만에 무일푼 노동자에서 10억 달러 재산의 갑부가 된 폰지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됩니다.


폰지의 사기 증권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당시 은행마다 이 증권을 사기 위해 종일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고.


폼나게 차려 입은 찰스 폰지.
그는 160cm도 되지 않은 작은 체구였다.
그러나 1920년 여름, 보스턴 우체국이 폰지의 국제 우편 쿠폰 사업에 사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폰지의 사업에 급제동이 걸립니다. 폰지가 사기 의혹에 휘말렸다는 소문을 들은 일부 투자자들은 돈을 회수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폰지의 피라미드 사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끝도 없이 매번 더 많은 수의 투자자들을 끌어들여야 했으나, 투자가 끊기고 기존 투자금마저 빠져 나가자 ‘사업’은 순식간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결국 1920년 8월, 파산 신고를 한 폰지는 사기 혐의로 구속됩니다. 단 6개월 만에 막을 내린 폰지의 사기극은 사상 유래 없는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약 4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총 1억 4000만 달러라는 돈을 날렸고, 5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으며, 수많은 고소 고발이 줄을 이었습니다.


재판장으로 끌려 들어가는 찰스 폰지 (가운데 지팡이를 짚은 사람)
그는 이 와중에도 특유의 명랑함과 대범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11년형을 언도 받는다. 그뒤 유럽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비참한 생을 마친다.

이때 희대의 사기극으로 폰지란 이름은 전세계 널리 알려졌고, ‘폰지’는 오늘날 ‘거품 투자’를 뜻하는 경제학 용어로 정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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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8월2일] 찰스 폰지
[서울경제신문 2006-08-01 16:48:19]

찰스 폰지(Charles Ponzi). 피라미드 사기판매의 원조다. ‘강남 부동산 시장은 폰지게임과 같은 상황’이라던 청와대의 경고가 떠오른다.
놀기를 좋아해 로마대학에서 쫓겨난 21세 청년 폰지가 미국에 발을 들인 것은 1903년. 2달러50센트가 재산의 전부였다. 선상도박으로 잃었기 때문. 식당과 은행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낭비벽이 없어지지 않아 밀수단에 끼고 은행장의 돈을 훔쳤다. 감옥에서는 이탈리아 친척들에게 ‘교도소장의 특별보좌역으로 채용됐다’는 편지를 보냈다.
5년 복역 후 출소한 폰지는 1919년부터 앉아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비법은 환차익. 호황을 구가한 미국 달러화의 강세로 환율이 급변했지만 각국 우표는 전쟁 전 환율대로 교환되는 점을 교묘히 이용, 수익률 400%를 올렸다.
자신이 붙은 폰지는 ‘돈을 45일간 맡기면 50%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너나없이 달라붙어 1920년 2월 5,000달러였던 모집액이 6월에는 4억5,000만달러로 불어났다. 요즘 가치로 228억달러에 해당하는 돈이다.
문제는 공급. 최소한 1억8,000만장이 필요했던 우표 공급이 3만장에도 못 미쳤다.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알고도 폰지는 투자자에게 신규 투자자의 돈을 내주며 자금을 계속 끌어당겼다.
사기행각은 1920년 8월2일 멈췄다. 신문 보도로 들통났기 때문. 최종 피해자 1만7,000여명에 피해액 10억달러. 보석으로 풀려난 폰지는 1925년 플로리다 부동산 버블이 한창일 때 부동산 피라미드 사기를 치려다 발각돼 감옥에 다시 들어갔다. 1934년 출옥 후 이탈리아ㆍ브라질을 전전하다 1948년 빈곤 속에서 죽었지만 폰지의 망령은 여전히 떠돌아 다닌다. 부동산과 유통ㆍ국민연금까지. 권홍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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