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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아!!, 너 죽고 나라 살자!!" 광우병 쇠고기 문제

대한민국 국민은 밤새 안녕하지 못했다
이명박 '독재' 정권을 직접 심판하겠다는 시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강기희 (gihi307) 기자
▲ 참다 참다 오죽 했으면 이런 글을 쓸까.
ⓒ 강기희
이명박
네온이 휘황한 서울 거리를 걸었다. 서울 광장을 출발해 신세계백화점으로, 신세계백화점에서 광교를 지나 종로 거리와 을지로, 광화문까지 걸었다. 그것도 인도가 아닌 넓은 차도로 촛불을 들고 걸었다. 혼자가 아닌 이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수만명의 시민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21년 만에 걸었던 서울 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
얼마 만에 서울의 밤 거리를 걷는 것일까. 그때가 1987년 봄이었으니까 족히 21년은 되는 듯 싶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낮 시간에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 몇 차례 걸어본 일이 있지만, 밤 시간의 서울 거리를 마음 놓고 걸었던 적은 없었다.
도로를 걸으며 처음 한 동안은 회한에 차 감격스러웠다.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서울 거리를 걷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87년의 봄은 한 젊은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그 무렵 국가 권력은 채 피어 보지도 못한 학생들을 많이 죽이거나 죽음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박종철의 죽음은 국가 권력이 자행한 살인이었다. 수백의 인명을 죽이고 탄생한 전두환 살인 정권은 그 버릇을 끝내 고치지 않았다.
박종철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저항은 가히 국민적이었다. 전 국민이 민주화 투사였던 그 시절, 국민은 6·10 민주 항쟁을 이끌어냈다. 그때 나는 순진하게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팍팍한 흙과 태극기가 미국의 것이 아닌 내 나라 대한민국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 나도 불복종할래요! 어린 소녀가 서울 시청 현관문에 '독재 이명박 국민 불복종'이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붙이고 있다.
ⓒ 강기희
이명박퇴진
▲ 독재 이명박. 그대는 누굴 닮고 싶어 국민에게 군림하는가.
ⓒ 강기희
독재
강원도 촌놈이었던 나는 당시 서울에서 살다시피 했다. 연일 이어지는 데모대를 쫓아 다니며 시민들과 함께 소리치며 돌을 던지고 도망쳤다. 그러다 힘들면 고향으로 도망치듯 내려왔다가 서울의 안부가 궁금해 며칠도 지나지 않아 다시 서울행 새벽 기차를 타곤 했다.
조용히 흐르던 내 피를 끓게 만든 것은 이명박 정부
그렇게 만났던 서울 거리를 21년 만에 걸었다. 당시처럼 대한민국의 안부가 궁금했던 것이었다. 오마이뉴스에서 생중계 하는 화면을 새벽까지 지켜보면서 끓어 오르는 울분과 화를 삭히지 못한 까닭이었다.
아직 내 피가 뜨거웠던가. 그동안 내 몸을 흐르는 피는 뜨거웠지만 조용히 흘렀다. 시골에 사는 나를 서울까지 오게 한 것은 이명박 정부. 그러니 조용히 흐르고 있던 내 피를 끓게 만든 것은 이명박 정부인 것이다. 나는 결국 노모를 산골짜기에 홀로 두게 하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서울은 밤새 안녕하지 못했다. 아니 대한민국이 안녕하지 못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21년 전보다 많았고 걸음 또한 발랄했다. 그들은 축제를 즐기듯 거리를 걸었다. 평화로운 표정들이 전혀 평화롭지 않은 나라의 도심 거리를 걷고 있었다.
독재 정권 타도하라! 이명박은 물러가라!!
이명박이 물러가라 훌라 훌라~이명박이 물러가라 훌라훌라~
어디서 많이 듣던 구호와 노래. 귀에 익숙했다. 그러고보니 21년 전에도 그런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서울 거리를 행진했다. 대상만 '전두환'에서 '이명박'으로 바뀐 것 뿐.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비슷했다.
▲ 찌라시 신문 거부. 국민의 편에 서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왜곡에 국민을 우롱한다는 이유로 조중동 신문을 평생 보지 않겠습니다.
ⓒ 강기희
구독거부
▲ 외국인인 나도 싫어요. 이명박 한국 싸람 맞아요? 한국 싸람이라면 이런 일 하지 않아요.
ⓒ 강기희
이명박
21년 전. 서울의 밤 하늘은 최루탄 가스로 자욱했다. 전경대가 쏘아 올린 최루탄은 밤 하늘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페퍼포그에서 쏜 지랄탄은 참으로 지랄 같이도 사람을 괴롭혔다. 오죽하면 그 이름이 지랄탄이었을까.
여성들이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그 무렵 전두환 군사 독재는 당시 가격으로 한 개에 만 원도 넘는 최루탄을 국민을 향해 엄청나게 쏘아 올렸다. 거리에 나섰던 시민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최루탄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그것은 죽음을 불사한 전쟁이었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듯 싶었다.
21년이 지난 2008년. 서울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의 손에는 촛불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살고 싶다고 소리쳤다. 교복을 입은 학생도 있고,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넥타이를 맨 아저씨도 있었고, 하이힐에 미니스커트를 차려 입은 멋쟁이 처녀들도 많았다.
한 손에 촛불,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할아버지는 힘이 들어 자주 다리쉼을 했지만 끝까지 행진에 참여했다. 21년 전 태어나지도 않았을 학생들이 촉발시킨 촛불문화제. 학생들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원했다. 그럼에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는 않았다. 죽음으로서 평화를 지킬 수만 있다면 감수하겠다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시작된 축제의 한마당은 벌써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간밤엔 교복을 입은 고3인 여학생이 살수차를 막아섰다. 여학생은 당당하게 전경과 맞섰다. 그랬다. 이 나라를 바꾸어 온 것은 언제나 철없다고 꾸중 듣던 학생들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거리에 나섰을 때, 대한민국은 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냈다.
학생들 보기 부끄럽다며 거리로 나온 시민들. 어쩐 일로 여성들이 많았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젊은 엄마들과 여학생, 아리따운 처녀들까지. 여성들이 광우병에 더 많이 걸릴 것이라는 말도 없는데, 촛불 든 여성들이 많았다.
그 이유를 설명할 길은 없지만 언젠가부터 이 나라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여성들이었다. 박정희 독재 말기에 터진 YH 투쟁 등으로부터 시작된 최근 이랜드와 KTX 투쟁까지. 여성들은 투쟁을 하면서 '적당히' 타협하는 일이 없었다. 지난 투쟁의 역사가 그걸 증명했다.
▲ 협상 무효!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협상무효! 고시 철회를 외치고 있다.
ⓒ 강기희
협상무효
▲ 누굴 위해?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나온 경찰이 아니었다.
ⓒ 강기희
전경
21년 만에 걸어 본 서울 거리. 예전처럼 최루탄을 쏘지 않으니 걸을만 했다. 도망치지 않아도 되니 신발끈을 애써 조여 맬 일도 없었다. 경찰이 다가와도 두렵지 않았다. 촛불을 든 모든 시민들이 그랬다. 그들은 스스로 '나도 잡아 가라' 며 '닭장 투어'를 선택했고, 그것을 즐겼다.
방패 찍기는 여전해도 시민들은 "나도 잡아 가라!"
곤혹스러운 것은 경찰이었다. 방패 찍기로 유명한 대한민국 경찰도 나도 잡아 가라며 나서는 데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경찰이 아무리 엄벌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아도 2008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먹히지 않았다.
왜일까. 촛불 든 손이 당당하기 때문이겠다. 당당하니까 모든 게 자유롭다. 죄가 없으니 잡혀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다. 촛불 든 손에 수갑을 채우는 일은 권력에 아부하거나 혹은 멍청한 경찰이나 할 짓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일까.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토론이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국민을 연일 거리로 나서게 만든 이명박 정부는 대화와 토론을 거부한다. 숱한 문제를 던지고도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국민들은 신경 쓰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뒷짐을 지고 있다. 국민이 죽어 나가도 그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래서는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독재 정권'이라 칭한다. 국민들은 귀지개로 이명박 대통령의 귓밥을 파주고 싶지만 그는 그 일 또한 거부한다. 대단한 오만이다. 그러니 이승만 독재 때 유행하던 '못살겠다 갈아보자' 라는 구호가 새삼스레 등장하는 것이다.
자정을 넘긴 시간, 전경들은 방패를 앞세우고 알아 듣지도 못할 고함을 질렀다. 그것을 무슨 소리라고 명해야 할까. 예전엔 그 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끼치곤 했지만 촛불 든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깔깔 호호 흐흐' 하고 웃었다. 전경의 행동을 병정놀이를 구경하듯 바라보는 촛불들. 그럴 수 있는 자신감은 스스로 생각해도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방패로 촛불을 위협하는 전경들. 아직도 촛불 든 사람의 얼굴을 방패로 찍어 누르려고 한다. 하긴 그 동안에도 전경의 방패에 찍혀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전경들은 함부로 방패를 들어서는 안된다. 언제 어느 순간 그 잘난 얼굴이 인터넷에 공개 될지 모르는 일 아니던가.
▲ 소녀들의 외침. 당신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 강기희
권력
▲ 이명박! 한 여학생이 직접 만든 손 팻말을 들고 거리 행진을 했다.
ⓒ 강기희
거리행진
경찰과 촛불이 엉켜있는 곳이라면 어김 없이 수십 개의 동영상 카메라와 휴대폰이 떴다. 경찰의 진압 장면을 찍겠다며 작심하고 나온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경찰이 촛불들을 채증하듯 경찰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었다. 얼굴과 이름은 기본이다. 이쯤 되면 '경찰짓도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중국에 간 대통령에게 시민들 "오지마라!"
그럼에도 그들은 매일 밤 서울 거리를 막아섰다. 간밤에도 경찰의 진압에 부상 당한 시민들이 많았다. 시민을 향해 방패를 휘두르는 장면도 있었다. 그런 장면을 사진에 담는 내 앞을 가로 막는 전경도 있었다. 어린 전경에게 "나도 잡아 갈래?"라고 물었더니 가만히 있었다.
386 세대라고 밝힌 신림동 사람은 프락치를 찾아 내는 일만 한다고 했다. 그는 새벽 4시가 넘는 시간에도 촛불 사이를 오고가며 프락치로 의심되는 이들을 좇았다. 그들의 발언이나 행동을 살피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임무라는 것이다. 스스로 나선 이들이 이렇게 많으니 프락치 짓도 힘들어진 시절이다. 그럼에도 프락치가 많단다. 해바라기가 다른 꽃보다 키 큰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경대도 군화소리를 내며 숙소로 돌아간 시간. 날이 환하게 밝아 왔지만, 거리에 나선 촛불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거리를 질주하면서 들려주는 차들의 팔음절 경적 소리는 촛불들의 구호를 대신했다.
신 새벽을 지난 아침 5시 30분. 나는 아직 남아 있는 촛불들을 뒤로 하고 근처의 목욕탕으로 갔다. 목욕탕에는 밤새 몇 번이나 얼굴을 마주쳤던 이들이 제법 보였다. 서로 익숙해진 얼굴이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 받았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경상도 진주 땅에서 왔다고 하는데, 서울 온 지 열흘 째라고 한다.
사십대 중반을 넘긴 그가 집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촛불을 들기 위해서다. 작은 촛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까닭 또한 거침 없다.
"대통령이라면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말아야지예. 반대하는 일을 한다면 이명박이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하는 거 아입미꺼."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수면실로 들어갔다. 서울의 하루는 그렇게 길었고, 그런 날이 벌써 일주일 째 이어지고 있었다. 미친 소를 먹기도 전에 미쳐버린 이명박 정부. 그가 중국으로 갔을 때 국민들이 '오지 마라!'라고 외친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 태극기. 전경버스에 태극기를 달고 있는 시민.
ⓒ 강기희
태극기
2008.05.31 15:37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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