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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내년 가계·中企 줄파산, 진짜 위기" '돈'(money)과 경제

[경향과의 만남]“이대로 가면 내년 가계·中企 줄파산, 진짜 위기 온다”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12.22 17:56


ㆍ한국 경제위기 진단 이동걸 금융연구원장

세계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침체로 국내 경제가 난관에 봉착했다.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국내 경제성장률도 2%대로 낮아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감세와 부동산 경기부양 등 '대증요법식 처방'에만 매달리며 시장과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어 우리 경제가 어디까지 추락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지난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국내 경제는 유동성에 어려움이 있었을 뿐 진짜 위기는 시작되지 않았다"며 "내년에 가계와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금융기관의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면 진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원장은 정부가 부실 기업에 대한 '옥석가리기'는 외면한 채 자금 공급에 치중하는 것에 대해 "마치 동맥경화 환자에게 수혈하는 격으로 자칫 혈관이 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여당이 금융규제 완화 법안의 강행처리에 나서고 있는 데 대해서는 "규제완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인터뷰 도중 '어떨 땐 미네르바였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 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 "경제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때가 많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올해 우리 경제가 휘청거렸던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사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부실 사태가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환위기 이후 건전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보고, 안이하게 대응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은 좋아졌지만 양극화로 경제전반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은 나빠졌습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정부의 지원이 주로 대기업에 몰리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경제 전체가 위기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일각에선 정부의 경제정책이 일본이 장기불황을 겪을 때와 유사하다고 지적합니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기업에 대한 '옥석가리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자금지원만 하면 경제회복이 더뎌지게 됩니다. 경쟁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장기불황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죠. 일본은 그래도 제조업이 강해 빈사상태로도 10년을 버텼지만 우리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이 없으니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부양에 필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적극적으로 풀어야 하겠지만 건설업에 집중적으로 자금지원을 해서는 안됩니다. 국내 건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선진국보다 2%포인트 이상 높습니다. 부동산 경기부양을 통해 다시 거품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빠져드는 것보다는 다른 경제부문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지금 정부의 정책을 보면 한가하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정부는 시장의 비판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지만 시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장 불만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시장이 뭘 모른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금융시장 상황은 일시적으로 호전된 느낌입니다.

"경제위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금융시장이 다소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니 위기상황에서 벗어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침체되면 진짜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구조조정 대신 대기업과 건설업에 자금 지원을 집중하면서 대증요법식 처방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유동성 부족 사태는 다소 진정됐지만 신용경색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빈혈상태는 벗어났지만 동맥경화를 겪고 있는 셈이지요. 빈혈 때는 수혈을 하면 되지만 동맥경화에 걸렸을 때 수혈을 하면 혈압이 올라가 터질 수 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돈을 풀면 효험도 없고, 부작용만 나게 됩니다. 헬기로 돈을 마구 뿌려대면 알아서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흘러가겠지 하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경제위기의 진행 양상이 달라 정부가 구조조정에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은 무너지는 게 눈에 보였고, 구조조정 대상도 명확했습니다. 지금은 무수한 중소기업들이 넘어지고 있지만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어렵다고 해서 정부가 자금을 무차별적으로 지원한다는 인상은 주지 말아야 합니다. 경기부양책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하고, 금융기관이 옥석을 가릴 수 있게 인센티브를 줄 필요도 있습니다. 감세 여력이 있다면 그 돈으로 신용보증기금을 10조원가량 늘리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100% 보증해주지 말고, 90%가량만 보증하도록 해 은행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단행될 때는 산업은행이 시중은행을 이끌었는데 최근에는 정부가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노하우를 가진 산업은행이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포워드 룩킹(Forward Looking)' 같은 제도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기업 대출자산에 대한 평가를 기업의 미래가치를 반영해 판단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은행들이 장래성 있는 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릴 수 있게 됩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금융규제 법안의 강행처리에 나서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장 큰 교훈은 위험관리를 과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험을 관리할 수 있으니 사전적으로 규제를 다 풀고 사후에 규제하면 된다고 생각하다 선진국 금융이 무너진 것입니다. 정부가 자본시장통합법 제정과 보험업법 개정으로 증권사와 보험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해주고, 금산분리 완화로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면서 사후규제로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정말로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정부가 금융규제 완화를 강행한다면 5~10년 뒤 또 한 차례 금융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런 법안들을 '개혁입법'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금융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금융규제 완화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가 신용등급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정부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마디로 선수(=전문가)들이 없습니다. 목표를 정하면 아이디어가 나오게 마련인데 정부는 의견수렴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금융조직 개편도 실패작입니다. 국내 금융정책은 기획재정부로 옮기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합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정부는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관성 있게 대책을 내놔야 시장이 따라 가는데 지금 상태로는 안됩니다. 내년에 경기침체가 본격화되고 가계와 중소기업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사태는 달라집니다. 금융기관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신용위험이 커지면서 대외신인도가 하락하면 진짜 외환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는 금융위기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인해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을 빠져 나갔다면 내년에는 한국경제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탈출할 가능성이 커 전혀 차원이 다른 경제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내년 성장률 목표치를 3%로 잡았습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데도 정부가 무리하게 성장률 목표치를 잡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부가 위기를 위기라고 확실하게 인식하고, 위기관리에 들어가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보다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를 더 믿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떨 땐 미네르바처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미네르바가 등장하게 된 것은 정부가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최근 들어 정보를 차단할 뿐 아니라 건전한 의견마저 용납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하려 하면 위기극복을 위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습니다."

△ 이동걸은 누구

195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예일대에서 금융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금융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정책경험도 풍부한 전문가이다. 금융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연구기관을 거쳐 김대중 정부 초기인 98년 청와대에 들어가 금융정책 입안에 참여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대기업 경영투명성 강화를 위한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을 주도하는 등 재벌 개혁에 주력했다.

이 원장은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와 생명보험사 상장 등 주요 금융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2004년 금감위 부위원장에서 물러나자 삼성생명 상장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지난해 금융연구원장으로 취임한 뒤 국내 금융계가 잘되려면 '이헌재 사단'이 청산돼야 한다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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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단테스 2008/12/23 14:35 # 삭제

    아 "마치 동맥경화 환자에게 수혈하는 격으로 자칫 혈관이 터질 수 있다" 이부분 정말 와닿네요

    동맥경화 환자에게 필요한건 수혈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관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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