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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개발 역사 북핵 문제의 본질

(아래 기사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북한은 이미 80년대 말~90년대 초에 핵무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대북지원이 북한의 핵개발을 도왔다고 하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억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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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기술·인력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겨레]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이 성공했다면 북한은 과연 어떤 수준의 핵 관련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고 있을까. 인구 2300만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몇 백 달러에 지나지 않는 북한이 어떻게 핵실험을 성공시킬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 인력을 배양해냈을까.

맥아더의 핵 공격 발언에 자극

북한은 한국전쟁 때 맥아더 원수의 원자탄 공격 발언에 크게 자극을 받은 데다, 종전 뒤에도 미군이 한국에 북한을 겨냥한 전술 핵무기를 배치함에 따라, 일찍부터 핵무기 개발계획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북한은 인민군을 개편하면서 ‘핵무기 방위 부문’을 따로 설치했다.

이미 1947년부터 소련 전문가의 도움으로 우라늄 광산에 대한 탐측을 시작한 북한은 1949~1950년부터는 대동, 신진 등 광산에서 대규모 우라늄 채취 작업을 시작했다. 1964년엔 전국적으로 우라늄광 조사 작업을 벌여 채취할 수 있는 매장량이 400만t에 이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의 우라늄 매장량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우라늄과 더불어 핵무기 제조에 중요한 또 다른 광물인 흑연 매장량도 풍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술 문제만 남은 셈이다.

1980년대 이미 상당 수준 연구

초기 북한의 핵 연구는 소련으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다. 1955년 핵물리연구소를 창설한 북한은 1956년 소련과 ‘핵에너지 평화 이용 협력협정’을 맺었다. 이후 북한은 적지 않은 과학자와 기술자를 소련에 파견해 소련의 핵 기술을 배워왔다. 북한의 과학·기술자들이 연수한 곳은 소련 두브나의 ‘연합 핵연구소’이다.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110㎞ 떨어진 두브나시에 세워진 이 과학기지에는 소련 최대의 핵실험실이 있었으며, 왕간창, 저우광자오, 자오중야오, 팡서우센 등 중국의 주요 핵물리학자들도 이곳에서 배양됐다. 1956년 이 연구소의 설립 이후 1990년 북·러 사이 과학연구 협력이 중단될 때까지 30여년 동안 모두 250여명의 북한 과학자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1960년대부터 북한은 국내 핵물리학 연구진을 본격 길러낸다. 1962년 평북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세운 데 이어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에 핵물리학원을 설립해 핵 과학자와 기술자를 양성하도록 했다. 1965년에는 영변에 소련의 도움으로 IRT-2000 연구용 핵반응로를 건설했으며, 이 때부터 북한의 핵 연구는 일정한 규모를 갖추게 된다.

1969년부터 북한은 ‘국책사업’으로 핵무기 개발에 본격 손을 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에는 자체 기술로 실험용 핵반응로 건설에 착수해 1986년 정식 운전을 시작했다. 1985년에는 영변 핵시설에 사용한 핵 연료봉을 써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실험실 건설에 착수했으나, 1994년 ‘제네바 협약’으로 일시 중단됐다. 북한은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영변 핵시설 내부의 모래밭에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고온폭발 실험을 70여 차례 실시했다.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1980년대 말 북한은 처음으로 원시적인 ‘핵장치’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월북 과학자들이 핵연구 주도

북한의 초기 핵 연구는 도상록, 리승기, 한인석 등 월북 과학자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교토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도상록(1903~1990)은 개성중학 교사 시절 미국 학술지에 두 편의 뛰어난 이론물리학 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크게 받았으며, 해방 뒤 서울대 교수를 지내다 1946년 5월 월북해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과 주임을 맡았다. 북한 핵 개발의 ‘태두’라 불리는 그가 재직시절 직접 지휘해 만든 핵 가속기는 지금도 김일성종합대학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상록과 더불어 북한 초기 핵 연구의 중심인물인 한인석은 해방 후 연세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월북한 뒤 김일성종합대학 고급 교사를 맡았으며, 모스크바에서 장기간 첨단 물리학을 배우고 돌아와 1960년대 대량의 핵물리학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리승기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월북해 북의 핵 연구진에 합류했다.

도상록, 한인석, 리승기가 북 핵개발의 1세대라면, 정근, 최학근, 서상국 등 소련 유학파들이 2세대로 그 뒤를 이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정근은 소련에 유학해 핵무기와 직접 연관이 있는 핵반응로 물리학을 연구했으며, 역시 소련 유학 출신으로 원자력연구소 소장, 원자력공업부장 등 요직을 역임한 최학근은 특히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 가입 이후 1975년부터 비엔나에서 국제원자력기구 파견관으로 4년 동안 근무하면서 이 기구의 도서관에서 세계 각국의 원자반응로 설계도와 관련 자료를 복사해 북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핵실험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서상국(68)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강좌장(학과장) 또한 1966년 소련 유학을 마친 뒤 돌아와 김일성대 교수로 재직해왔다.

가장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

북한의 핵 관련 연구 인력은 북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로 채워지고 있다. 현재 대략 3000명의 과학·기술자들이 핵 관련 연구 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고급 인력은 200여명이라고 전해진다.

핵물리학 분야의 핵심 교육기관은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성이과대학이다. 특히 평성이과대학은 핵물리학, 화학, 수학 등 다섯 개 학과로만 구성된 특수대학이다. 이 대학의 학생은 모두 고등학생 전국 과학경연대회에서 5등 안에 입상한 최우수 인재들로 구성되며, 각 학과는 다섯 명만 뽑아 6년제 교육을 실시한다.

이밖에도 평양고등물리학교, 김일성고등물리학교 등도 물리학 연구 인력을 배출하는 주요 교육기관이다. 1989년 5월 주로 기술 인력을 배출해온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연구진이 ‘실내온도하 핵융합 반응의 실현’이란 수준 높은 논문을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북 핵탄두 소형화 성공 여부 초점

9일 북한의 핵실험이 성공했다면, 북한은 1990년대에 핵 기술의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989년 소련 해체 뒤 혼란스러웠던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에서 수십명의 핵과학자들이 북한에 초청돼 핵무기 연구개발에 직접 종사했다. 또 1990년대에 창궐한 국제 핵 암시장도 북한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북한은 소련에서 떨어져나온 중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우라늄235와 239를 비롯해 적지 않은 핵무기 재료와 장치를 사들인 것으로 러시아쪽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1일 최근 발간된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자서전 <도화선 주변>을 따 파키스탄 ‘핵폭탄의 아버지’ 카디얼 칸이 1990년대에 북한에 20여기의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를 팔았으며, 북한을 직접 방문해 원심분리기의 설치 등에 도움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보도는 칸이 북에 구형인 p-1과 신형인 p-2 등 두 종류를 제공했으며, 1999년 북한의 핵 과학자가 신분을 위장한 뒤 파키스탄 핵연구소에 와 관련 기술을 배우고 갔다고 전했다.

30년의 노력 끝에 북한은 현재 우라늄 광산에서 채취한 원료로 핵반응로를 가동한 뒤 핵폐기물을 재처리하기까지 일련의 기술을 확보하기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현재 핵과 관련한 시설을 7개 지역에 걸쳐 20여개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994년 ‘제네바 협약’ 이전에 이미 영변의 핵반응로에서 10~12㎏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평가한다. 이 정도의 플루토늄이면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탄에 상당하는 핵무기 1~2개를 만들 수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북한이 추출해낸 플루토늄이 40㎏에 이르며, 이는 6~1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에이피통신>은 9일 2002년 북·미 협약이 깨진 뒤 북한이 핵무기 제조를 서둘렀으며, 지금까지 북한이 44~116파운드의 농축 우라늄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현재 북한 핵 기술과 관련한 최대의 쟁점은 북한이 미사일 탑재가 가능할 정도로 핵무기를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느냐 여부다. 한국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는 북한이 2~3개의 핵탄두를 만들었으며, 이들은 미사일 탑재는 가능하지 않고 IL-28형 폭격기에만 실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환구시보>를 보면, 파키스탄의 핵 대부 카디얼 칸은 일찍이 자기 눈으로 직접 북한이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한 걸 본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의 핵 기술에 대해 과소평가로 일관하다가는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한겨레> 국제팀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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