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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남대문이 10개가 탄다 하더라도..... 사회, 경제 개혁

이 땅의 사회적 부도덕함은 고쳐져야만 한다.
아래 참으로 좋은 글을 소개하니......모두 일독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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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의 위기 1
번호 89249 글쓴이 개굴이네 집 (goo630510) 조회 613 누리 197 (213/16) 등록일 2008-2-14 09:34 대문 6 톡톡 2
개인들의 위기 1
-누가 우리를 갈라놓나,
그리고
왜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졌나?
1.
1.5m높이에서 거푸집(유로폼) 해체작업을 하던 용역 아저씨가 뒤로 떨어졌다. 안전모를 착용했는데도 불구하고 목뼈가 어긋나면서 신경이 짓눌렸다. 치료는 불가능하다. 전신마비다. 잠깐의 실수가 한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이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 는 공방이 금새 시작됐다. 용역을 관리하는 전문건설업체측에서 용역잡부에게 목수가 하는 거푸집 해체를 지시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됐다. 그리고 안전시설과 안전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등이 지적됐다. 경찰과 산업안전공단은 해당 건설 전문업체와 시공사측이 하는 설명을 듣는 것으로 현장조사를 마쳤다. 그는 우리 나이로 42세다. 조그만 슈퍼를 운영하다가 대형마트에 밀려 장사를 접고 한 2년 놀다가 생활비를 벌려고 용역회사에 나온지 한 달도 안됐다.
병원 입구에서 만난 그의 안사람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무얼 어째야 하는지 감을 못잡고 멍한 눈으로 뭔가를 자꾸 물었다. 대꾸한다고 해서 그녀가 무얼 알아듣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듯 했다. 시공사 안전과장이 그런 그녀를 한쪽으로 부축해 갔다. 아마 녹음기를 켜놓고 그녀를 달랠 것이다. 그래서 협상에 유리한 것이면 뭐든 흔적으로 남겨놓을려고 할 것이다. 그녀가 생각없이 말하고, 또 생각 없이 서둘러.... 작성된 합의 서류에 지장을 찍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면에서 시공사 안전과장은 베테랑이다.
2.
한사람이 망가졌다. 그리고 그에게 딸려 있는 식구들이 연쇄적으로 망가지고 있다. 그를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1) 식구중에 산재사고처리에 경험이 있는 사람 2) 절친한 사람 가운데 법을 좀 아는 사람 3) 양심적인 사고현장의 책임자 4) 남의 일로 버려두지 않고 자기일처럼 생각하고 나서는 동료.... 등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시공사에서 용역회사 사장을 불러 일이 시끄러워지면 더이상 발주를 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상시적으로 현장에 오는 용역들에게 " 사고자가 안전수칙을 무시하였고, 작업에 하등 필요하지 않은 동작으로 인해 재해를 입었으므로 회사가 법적인 책임외에 도의적인 책임을 질 이유는 없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계속 발생하면 발주업체를 당장 바꾸겠다. 동절기이고 경기침체로 공사가 거의 없는 이 지역에서 우리한테 발주가 끊어지면 당신들은 실업자가 된다." 고 을러놓았다.
사고가 난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의 가족중에서 특별하게 나서는 사람도 없다. 시공사와 하도급 업체는 그것을 천만 다행이라 여기는 눈치다. 현장은 원래대로 안정을 찾았다. 42세의 가장과 그에게 딸려있는 가족들은 모두에게 남(다른사람,타인들)에 불과했다.
3.
눈은 안오고 날만 추워졌다. 대관령이 영하 22도고, 서울이 영하 12도란다. 숭례문이 어제 새벽에 무너졌다. 방화용의자로 70대의 노인이 붙잡혔다. 그는 창덕궁? 방화전과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강화도에 있는 그의 두번째 부인의 집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다리와 신나통이 발견됐다고 경찰은 발표했다. 숭례문 방화 이유로 그는 '땅 보상에 대한 불만' 을 들은 모양이다. 그에게 '종신형' 을 내려야 한다는 주문이 언론에서 나온다. 70대의 노인에게 '종신형' 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각종 미군에 의한 범죄에서 언론이 한 번이라도 그처럼 미리 형량을 주문한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70대의 힘없는 노인에게 언론이 지나치게 구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는 경찰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수사결과를 밝혔을 뿐이지, 아직 법원 판결이 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를 '확정범' 으로 언론이 일제히 확인해주는 것은 '언론 폭력' 이다. 그가 '진범' 이 아니면, 언론은 그와 그의 가족들이 겪고 있는 정서적인 고통들을 어떻게 원래대로 되돌려놓을 건가. 언론의 수준이 그리고 서둘러 노인을 잡아들이고 그를 '피고인' 으로 확정 발표한 경찰의 수준이 한심하다.
그는 범인일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숭례문 방화 범행의 여러 정황들이 70대 노인의 단독 범행으로 단정짓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소방소 관계자가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다리는 뭐고,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화도의 철제 사다리는 뭔가? 70대 노인이 그것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철제사다리와 신나통을 들고 숭례문에 들어갔다가 그것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 그를 목격한 사람은 왜 없나? 화재가 날 당시 숭례문 인근에서 범인으로 생각되는 ' 머리가 벗어지고 가죽점퍼를 입은 50대 남자' 를 태웠다는 택시기사의 진술은 또 뭔가. 힘없고 빽이 없으면 없는 죄도 뒤집어쓴다. 그러나 삼성비자금,김승연의 납치.폭행사건,이명박BBK-도곡동땅 의혹...의 경우처럼 힘과 돈이 있는 경우에 경찰과 언론들이 최선을 다해서 '무죄 또는 무혐의' 를 입증하기 위해서 용을 쓰기 때문에 대부분 있는 죄도 벗는다. 진실과 힘을 그렇게 맞교환해도 괜찮은가? 그 노인이 힘이 없는 한 그는 숭례문을 불싸지른 '반역' 으로 일생을 종료한다. 그의 가족들은 '반역자' 의 일가족이라는 오명을 쓴다. 이 진실을 가리는 것이 '힘' 의 유무다. 이게 온당한가.
4.
우리사회에 그다지 영향력이 없는 몇사람에게 일어난 사소한? 비극이다. 그러나 그 비극에서 발견하는 것은 의외로 끔찍한 '개인들의 절박한 위기' 다. 사실이 무엇이냐? 와는 아무 상관없이 사회가 집단적으로 '개인들' 을 학살할 수 있다는 이런 사실이 그런 단편들에 버젓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폭력을 당해도 괜찮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지는 매우 모호하다. 다만 그들이 그런 폭력에 항거할 힘이 없다는 이유로 개인들의 학살이 그렇게 자행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좋지않은 조짐이다. 그렇게 경계가 너무 완화된 폭력은 계속 잔인해지고 확산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문제가 됐을 때 그 폭력을 다스릴 수 있는 핑계가 없다.
당하는 사람이 늘 '너' 라고 믿고, 그럴 확률이.... '한자리에서 같은 사람이 번개를 세번 확률' 이라는 식으로 발뱀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보통습관이다. 이유없이 '너' 는 무참히 밟혀도 그게 '내' 일이 아니면 괜찮다? 이런 심성이 본래 우리 것은 아닐지 싶다.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굴러들어온 건지 뻔한 거지만, 우린 그것에 점차 무감하다. 그리고 태연하다. '내' 가 그 처지가 됐을때 그때 느끼게될 절망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그때 가서 고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속이 편해서 일 것이다.
5.
수백마리의 돼지가 함께 사는 돼지막사에서 돼지 몇마리를 솎아낸다. 그리고 그 돼지들이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돼지를 잡는다. 솥에서 끓인 물을 몸에 부어 '부삽(각삽)' 으로 털과 때를 밀고, 배를 가른다. 솎아진 돼지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절규하지만.... 돼지막은 의외로 평화스럽다. 남아있는 돼지들에게 솎아진 돼지들은 재수가 없고, 명이 짧은 것이다. 그리고 '내일' 이 아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모든 돼지막사에서 되풀이된다. 솎아낸 돼지 숫자만큼 돼지가 보충된다. 개나 닭,오리의 경우도 같다. 그들은 각각 개별화 돼 있다. 돼지들이 솎아져서 절명의 위기에 있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집단항의를 하거나 개들이 그 일로 주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들은 수천년 동안 사람의 먹거리로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이런 모양이라면 기겁을 할 듯 하다. 그러나 복잡하고 좀 폼이나서 그렇지 사람사이의 지배관계와 사람과 가축간의 지배관계가 그다지 차이가 나지않는다. 곰곰히 세상돌아가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그것이 확연하다. 국가와 국가, 종족과 종족간 지배패턴도 유사하다. 지배하는자는 사람의 역할을 지배당하는 자는 가축의 역할을 하도록 문명이 계속 울타리와 '핑계' 를 제공한다. 왕조시대에 기준이 '신의 선택(하늘의 선택)' 이라면, 요즈음에는 ' 자기자신의 선택(능력,운, 기회...)' 이다. 국가간,종족간 지배와 피지배도 비슷한 경계선을 그린다. 지배하는 자의 편의에 따라 더 복잡하고, 때깔나는 '장애물(경계석)' 이 설치된다. 이런 지배와 피지배구도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 이 개별화다. 이것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에 대한 존중(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신장을 위한...)' 이라고 멋있게 각색한다.
목에 진주목걸이를 하고 니체와 알튀세르의 저서를 읽는 돼지의 자유와 권리가 온당한가? 돼지가 막사 안에 있고, 소유주가 있는 한 돼지의 그러한 자유와 권리는 불필요한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발목에 순금 발목걸이를 하고, 입에 보들레르의 시집을 물고 있는 돼지도 도축이라는 절차를 벗어나 갈 수 없다. 그것이 가축으로써 돼지의 숙명이다. 이것때문에....지배당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국가,종족...이 이러한 '돼지의 자유와 권리' 를 누리기 위해서 개별화되는 것이 결국 어떤 필요 때문인지를 고민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6.
진보운동이 지지자들의 감소로 고민하고 있다. 80,90년대 군사독재로부터 뺏어온 '민주주의' 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욕망' 을 부추겼다. 80, 90년대 이전과 이후 우리사회의 흐름이 그렇게 확연하게 다르다. 미국민주주의가 빠르게 도입되면서 미국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까지도 딸아서 들어온 탓이다. 미국사회에서 무기력한 개인들의 고통은 '혼자' 라는 것이다. 그 혼자가 '충분이 대중과 씨름하면서 또는 조우하면서 잘 지낼 수 있는 혼자' 가 아니고, '완벽하게 고립된 혼자' 라는 것이 문제다.
작자의 이름과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는데.... '내' 가 벽에 갇혀있 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추적하는 소설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서유럽에 있는 어떤 나라의 시덥지않은 작자가 쓴 소설일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 '나' 는 거리의 벽들을 피해 달아나려고 한다. 낯 선 거리의 벽에서 낯익은 거리의 벽까지 도망가지만, 그것도 자기를 가두는 벽이라는 절망에 빠진다. 그래서 다시 달아나는데, 결국은 자기집이라는 벽속으로, 또 자기 방이라는 벽속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그는 그제사 깨닫는다. 몸(생)이라는 벽을 허물지 않는한 벽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은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이 상당히 지루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하려는 말이 몹시 소름돋았다고 기억한다.
7.
그 소설을 쓴 어눌한 지식인이 느낀 '벽(완벽한 고립)' 은.....실제로는 인조구조물이 아니라 살과 살, 마음과 마음이 닿지 않는 '주변인들(또는 비슷한 무리들..)' 과의 '거리' 다. 근래들어 서방의 지식인들이... 이작자처럼 '개인' 에 대해서 상당히 고민하는 흔적들이 자주 감지된다.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개인들의 막막한 고립' 은 오래전부터 화두가 되어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가 듣기에 달콤하다. 그리고 실생활에서도 그 달작지근한 맛을 끊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교묘하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편승하고 있고, 이것이 개인들을 만족시키면서 사회전반이 '개별화(각개화)' 되는 역기능이 존재한다.
이 역기능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달고 맛있는 것을 독식' 한다는 이점과 '어떤 공격으로부터 무리지어 대항해야 할 때, 무리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불편' 을 바꿔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우리도 점차 이러한 벽(개인의 절망적인 고립)을 느끼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문학작품들이 개인들의 달콤한 '드라마(사랑,인생역정, 자아의 발견과 탐닉...등)' 에 집중되기는 하지만 점차 '고립' 에 대해서 입질을 하고 있다. 80,90년대 집단화에 대한 간곡한 부탁성(선전.선동성)글질들에 혐오증이 있는 저자와 독자들이 '절망하는 개인들' 을 어떻게 해부하고 그것을 얼마만큼 관음적으로 즐길지 궁금하다.
서방이 제3세계를 두려워 하는 것이 쉽게 '집단화'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제3세계가 선진국가의 현재처럼 '개별화' 될 경우 서방세계가 제3세계를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무엇을 알게 하려고 유포되고 있는지는 아주 뻔하다.
[1/6] ㅠㅠ IP 58.235.91.x 작성일 2008년2월14일 09시51분
cctv에 그가 나타나 꼼짝 못하게 되었는데....무신 잠고대요..!

문제는 핸데 건설이 고롭기 생겼어...보상을 엉터리로 했다고 주장허니..
[2/6] 숲속의세상 IP 219.240.252.x 작성일 2008년2월14일 10시03분
'나이 50이 넘도록 나는 그림자를 보고 짓어대는 한마리의 개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매트릭스의 세계이다.
[3/6] 개굴이네 집 (goo630510) IP 211.54.210.x 작성일 2008년2월14일 10시09분
ㅠㅠ님..... 그가 범인이고 아니고는 차차 밝혀질 일입니다. 다만 너무 성급하고 뭔가 부족하다는 거지요.
이명박씨를 다루는 것하고,
그 노인을 다루는 것하고 왜 그렇게 다르냐? 는 겁니다.
수사는 '모든 가능성' 을 열어두고 해야 하는 것이고, 법원이 최종적으로 그의 유죄를 확정하기 전까지 그는 '확정범' 이 아니고, '용의선상에 있는 시민' 입니다. 그런 합리적인 배려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깡그리 무시당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지요. 제가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위치에 있는게 아닙니다.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고요.....

숲속의 세상님...
날이 그래서 더 춥답니다.
[4/6] 약한 개인끼리의 불신 IP 219.37.248.x 작성일 2008년2월14일 10시53분
개굴이네 집님,
서프라이즈에 단 며칠을 글을 안 올리셨는데도 긴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견을 기다렸습니다. 굵직한 사건들이 터질때면 더욱더 길을 밝히는 등불이 기다려집니다.

물질만능적이고 소비적인 세태, 각종 정보의 범람 속에서 그것들을 향유하는 개인들 각자의 능력과 여건의 엄연한 편차는 개인들에게 상대적 우월감과 빈곤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다는 정의는 환경의 영향을 극도로 받는 인간의 약점을 확인하게도 합니다.
강약이 부동이라서 약한 개인들에게는 날카롭고 매몰차기만 한 대중과 언론의 비판과 비난의 칼날이
힘있는 자들에게는 무디고 관대하기만 합니다.

문제는 약한편에 있는 개개인들도 누워서 침뱉기처럼 함께 자기 편의 약자들을 공격하고 소외시키는 편에 무지스럽게 가담하는 것입니다.
작금의 민노당의 대선투표율의 저조함에서도 약자들이 자신들을 대변하는 정당에 표를 주지 않고 그 반대편에서 자신들을 더욱 소외시키고 가난하게 만드는 자본의 편에 있는 정당에 표를 주는 것만 보아도 있는 자들에게 관대한 대중들의 심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게다가 민노당내의 같은 동지들끼리 편가르기를 한 평등파 역시 강한자에 대한 약한자의 영악한 아부로 보입니다.

이 댓글을 쓰는 본인도 며칠 전 한민족의 역사적 유물을 방화로 소실케 만든 70대 고령의 용의자에게 많은 비난을 퍼부었고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약한 개인이 약한 개인을 상처주는 저러한 범주들 중의 하나입니다.
다만 변명을 하자면 자본이 지배하는 세태속에서 약한 개인들의 소외와 사회적 분노를 권력과 금력을 가진 외세들과 그 하수인들이 일회용 소비재로 사용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일벌백계로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금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의 교활한 공작을 봉쇄하는 것이 된다는 의미로 더욱더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개인소외, 고립, 인간본연의 심성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듯한 개굴이네 집님의 글 감사합니다.
[5/6] 개굴이네 집 (goo630510) IP 211.54.210.x 작성일 2008년2월14일 11시03분
위에.... 님.
그의 유죄로 결정이 난다면 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법의 소관입니다.
문제는 그 법이 과연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었느냐? 입니다.
법이 그렇게 힘없는 사람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고
힘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면, 엄중한 법적 처벌이라는게 '또하나의 잔인한 폭력' 이 됩니다.

법은 공평할때만 처벌이 정당합니다.
그 원칙이 무너지면 법은 더이상 정당한 처벌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내려놓아야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법은 '단순폭력' 과 다를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얘기는 차차 하겠습니다.
아무튼 여러모로 불편한 시국입니다.
[6/6] 단군3 IP 125.141.94.x 작성일 2008년2월14일 17시38분
숭례문 방화는 언젠가는 일어날 일로 개방시 부터 예정되었다고 할수 있다
개방시 합방을 하여 잉태되고 이제 출산만 한거다
물론 합방시에 적절한 피임 방법을 사용했다면 출산도 없다
개방만 하고 이에대한 사후 조치를 방치한 자가 진정한 범인이다

70대 노인이라느니 노숙자 때문이라느니 대머리 50대 라느니 하는 건 숭례문 소실에 대한 분노를 방화자에게 돌리기 위한 모면책이다
당연히 원인제공자에 대한 여론의 추궁을 회피하기 위 하여서 이다

오죽이나 급했으면 방화에 사용한 사다리를 자기집에 까지 들고 갔다고 하겠는가
경부운하 계획을 포기 하지 않겠다는 이재오 방화장비인 사다리를 증거물로 압수했다고 발표하는 수사당국자나
그 머리속은 붕어빵이다
[7/8] 달팽이 IP 61.84.235.x 작성일 2008년2월14일 19시09분
글의 제목이 나름 깊은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충분히 제기할 만한 시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현 시기 우리사회 전반의 의식들로 볼 때,
아직도 우리사회는 개인이 바로서지 못한 사회라는 것이지요..
최근의 모습들로 볼 때 책임있는 시민의식마저 의문이 드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집단의식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모습들이 너무도 도처에 널려 있지요..
지금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는 돈이 우상화된 물질만능주의,
타인의 눈을 의식한 이기적인 성공지상주의 등등이 집단의식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한 모습들이지요..
따라서 독립적 가치들 즉 가치의 다양화가 중심이 되는 '강한 개인'(김동렬표)이
더 우선되어야 할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위기'를 지금 얘기하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되는군요..
[8/8] 개굴이네 집 (goo630510) IP 121.184.30.x 작성일 2008년2월15일 07시06분
단군3님...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그리고 달팽이 님.... '개인이 바로 선다' 는 것이 미국의 개인인지,유럽의 개인인지를 얘기해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개인이 어디를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어야 제가 님의 말을 알아들을 것 같습니다.
방문과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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