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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선배제도-조의선인(皁衣仙人) 조의선인

길림성 무용총 내부벽화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는 그림이다.
왼쪽에 음식상을 놓고 앉아서 주인과 대화하고 있는 두사람의 손님은
신분이 확실치는 않으나 조의선인들의 모습이 이들과 같았으리라 추정된다.


조의선인(衣仙人)이란 '검은 빛깔의 조복(<검은 비단 조, 검을 조>服) 을 입은 선인'이란 뜻으로 선배 또는 선비라 불렀다.
선배는 고구려의 10월 제사에 모인 군중 앞에서 무예를 선보인 데서 비롯되었고 선인(先人 또는 仙人)은 선배의 이두(吏讀)식 표기이다. 사냥과 가무, 무예 등의 여러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을 선배라 불렀고 이들은 국가에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면서 무예와 학문을 갈고 닦았다. 전시에는 이들이 자체부대를 조직하고 전장에 나가 정예군으로 활동했다. 선배는 머리를 박박 깍고 검은 옷을 입었으므로 전형적인 무사를 연상시킨다. 선배는 화랑보다도 훨씬 오래되었다. 화랑은 원화(源花)라는 여성에서 비롯되어 나중에 좋은 가문의 청년 중에 덕행 있는 자를 곱게 치장하여 화랑으로 만든 것에서 보듯이 외모와 몸치장을 중시하여 여성적인 반면 선배는 매우 남성적이다. 선배의 독특한 외양 때문에 고구려와 전쟁을 하였던 수, 당의 병사들은 이들을 승군(僧軍)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구려를 숭상(崇尙)한 고려의 최영 장군조차 '당이 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략하나 고구려는 승군(僧軍) 3만을 내어 이를 대파하였다.' 라고 선배를 찬양하였다. 고려도경(高麗圖經)¹에 나오는 재가화상(在家和尙)은 선배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¹원명(原名)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송(宋)나라 휘종(徽宗)이 고려에 국신사(國信使)를 보낼 때 수행한 서긍(徐兢)이 송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을 곁들여서 기록한 책
재가화상(在家和尙) -선화봉사고려도경 제 18 권(宣和奉使高麗圖經 第 十八 卷)
재가화상은 가사를 입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흰 모시의 좁은 옷에 검정색 깁(비단)
으로 허리를 묶고 맨발로 다니는데. 간혹 신발을 신은 자도 있다. 거처할 집을 자신이
만들며 아내를 얻고 자식을 기른다. 그들은 관청에서 기물을 져 나르고 도로를 쓸고
도랑을 내고 성과 집을 수축하는 일들에 다 종사한다. 변경에 경보가 있으면 단결해서
나가는데 비록 달리는 데 익숙하지 않기는 하나 자못 씩씩하고 용감하다. 군대에 가게 되면
각자가 양식을 마련해 가기 때문에 나라의 경비를 소모하지 않고서 전쟁할 수 있게 된다.
듣기로는 중간에 글안(거란)이 고려인에게 패전한 것도 바로 이 무리들의 힘 이었다고 한다.
이족(夷簇:고려인)의 사람들은 그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아 버린 것을 가지고 화상(和尙:승려)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조의선인(衣仙人)의 눈부신 활약이 기록으로 보이는 것이 안시성 전투였다. 당태종의 당군(唐軍)은 요동의 여러 성들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많은 공성기구(攻城機具)를 사용해 안시성을 맹렬히 공격했지만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그래서 당태종은 60일 동안 50만을 동원하여 성을 내려다보고 공격하기 위해 성의 동남쪽에 높은 토산을 쌓게 했는데 토산이 무너져 안시성 성벽을 치는 바람에 성벽 일부가 붕괴되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이때 고구려군 결사대가 일제히 돌격하여 당군을 물리치고 토산을 점령해 버리고 주변을 깎아 나무를 쌓아 불을 놓고 지키니 얼씬도 못했다고 한다. 기록은 이 장면을 '이때 성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백 명의 용사가 뛰어나와 천장의 거미줄을 걷어내듯 당나라 2만 기병을 산 아래로 팽개치고는 오히려 토산을 차지해 버렸다' 라고 적고 있다. 이 검은 옷의 용사(勇士)들을 조의선인이라 부른다. 당시 고구려의 조의선인은 3만여 명에 달했고, 그 수장은 연개소문이었다고 한다..
조의선인은 선비제도라는 특별한 교육체계에 의해 양성되는 문무겸전의 인재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유년의 어린 나이에 선발되어 신체발달에 부응하는 매우 정교한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과 교양을 통하여 보다 완벽한 심신의 능력을 갖게 된다. 조의선인은 누구보다도 사물과 현상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들이 부딪치는 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며, 이를 해결할 심리적, 물질적 능력을 갖도록 조련된다. 을파소나 명림답부, 을지문덕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모두 조의선인들이었고, 우리 문화전통에서 말하는 선비란 바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덕성과 실천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구려 제22대 안장왕(安臧王)때의 조의선인으로 선발되었던 을밀선인(乙密仙人) 문하에는 조의선도 3,000명이 다물흥방지가(多勿興邦之歌)를 부르며 심신을 수련했다고 한다. (다물:"되물린다"라는 뜻으로 단군조선시대의 태평성국으로 복고하겠다는 의지를 뜻함)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 혹은 천지화랑제도가 고구려에 와서는 조의선인 제도로, 백제에서는 무절(武節-일본의 사무라이(武士)로 이어짐)로 발전했으며, 신라에서는 화랑도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신라의 화랑제도가 시작되기 2,500여 년 전인 단군조선 시대에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며 심신을 단련하던 미혼의 자제들을 국자랑(國子郞) 이라 했으며(11대 단군인 도해단제 재위 57년 -단기 3891년, 서기 전 1891년), 그들이 출행할 때에는 머리에 천지화(天指花: 무궁화)를 꽂았기 때문에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했다한다..(13대 홀달단제 20년- 단기 3763년, 서기 전 1763년).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을파소(乙巴素)는 국상(國相)이 되더니 나이어린 준걸(俊傑)들을 뽑아서 선인도랑(仙人徒郞)이라 하였다. 교화(敎化)를 관장함을 참전(參佺)이라 하였으니 무리들을 선택하여 계(戒)를 지키고 신(神)을 위하는 일을 맡겼다. 무예(武藝)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衣)라 하였으니 바른 행동을 거듭하여 규율을 만들고 공동을 위하여 몸을 바친다. 일찍이 무리들에게 말하기를 "신시이화(神市理化)의 세상은 백성들의 지혜가 열림에 따라서 날로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만세(萬世)에 걸쳐서 바꿀 수 없는 표준이 되는 이유가 된다. 때문에 참전(參佺)²에 계(戒)가 있으니 신의 계시에 따라 무리를 교화하고, 한맹(寒盟:동맹)에 율(律)이 있으니 하늘을 대신하여 공(功)을 행한다. 모두가 스스로 마음을 써서 힘을 모아 뒤에 공이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 라고 하였다. 조의선인(衣仙人)은 모두 선택되었으니 국인(國人)이 그 선출됨을 긍지로 여기는 바였다

²참전계경(參佺戒經)-을파소(乙巴素)가 백운산(白雲山-평안북도에 있는 묘향산맥중의 천마산)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다가 어느 날 밤 자시(子時)에 국조 단군(檀君)으로부터 계시(啓示)를 받아 어느 석굴의 암벽에서 얻었다는 천서(天書,神書)이다.
참전계경(參佺戒經)은 성(誠), 신(信), 애(愛), 제(濟), 화(禍), 복(福), 보(報), 응(應)의 팔리훈(八理訓)등 기본 강목과 그 팔리훈 개개의 실덕(實德)과 체(體)와 용(用)을 각기 분설한 총 366훈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제(天帝)이신 단군(檀君)께서 하강(下降)하실 때 좌측 손과 우측 손에 가지고 내려왔다는
천부경(天經),삼일신고(三誥)와 더불어 우리민족의 3대 경전(經典)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구려때에 조의선인(衣仙人)들의 정신수양서로 사용되었다.
조선상고사에서 단재 신채호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구려의 강성은 선배제도의 창설로 비롯된 것인데 그 창설한 연대는 전사에 전해지지 아니하였으나 조의(衣)의 이름이 태조왕 본기에 처음으로 보였으니 그 창설이 태조, 차대 두 대왕 때가 됨이 옳다. '선배'는 이두자로 선인(先人), 선인(仙人)이라 쓴 것으로써 여기서의 선인(仙人)은 선배의 소리말 '선'이요 인은 '선배'의 배를 빌려 쓴 이두문이며, 백의 (帛衣), 조의(衣)는 우두머리 [上首]의 옷과 빛깔, 예속은 무사 모의 깃 절풍(折風)에서 유래한 것이다. 학자들간의 선인(先人, 仙人)을 관직으로만 보는 견해가 있으나 발해사에 선인을 '사 정병(士正兵)'이라 하고, 삼국 사기에 '선비는 싸움에 당(當)하여 물러서지 아니한다'고 한 것을 보아도 선인이 '선배'라 부르던 무사단(武士團)에서 유래한 이름을 알 수 있다.

'선배'는 원래 신수두(臣蘇塗) 교도의 보통 명칭이었는데 태조왕 때에 와서 해마다 3월과 10월 신수두(臣蘇塗)³대제(大祭)에 모든 사람을 모아 혹은 칼로 춤을 추고 혹은 활도 쏘며, 혹은 깨금질도 하고, 혹은 택권(수박 또는 택견)이도 하며, 혹은 강의 얼음을 깨고 물 속으로 들어가 물싸움도 하고 혹은 가무(歌舞)를 연(演)하여 아름다움과 추함[美惡]을 보며, 대수렵을 행하여 그 잡은 양[射獲]의 많고 적음을 보아 그 내기에서 승리한 사람[一者]를 ' 선배'라 칭하고 선배된 사람에게는 국가에서 녹(祿)을 주어 그 처자를 먹이어 가실(家室)에 누(累)가 없게 하였다.(온달과 평강공주에 보면 온달은 3월3일 낙랑언덕에서의 사냥대회에서 1등을 함으로써 선배로 뽑힌다.) '선배'가 된 사람은 각기 편대를 나누어 한 집에서 먹고 자며, 앉으면 고사(故事)를 외우고[講] 학예를 익히며 나가면 산수를 탐험하거나 성곽을 쌓거나 도로를 닦고 군중을 위하여 강습(講習)하거나 일신(一身)을 국가와 사회에 바쳐 모든 어려움[困苦]을 사양치 않았다.'
³신수두(臣蘇塗)는 하느님(天帝,天神)을 모신 대신단(大神壇)이 있는 가장 신성한 숲(樹林)인데 하늘에 제사지내는 마니산 참성단이 이에 해당한다. 수두(蘇塗)는 신수두(臣蘇塗)의 대신단(大神壇) 을 본받아 각지방에 만든 신단(神壇)으로 마을마다 남아있던 당산(堂山)의 당집,신목(神木)등은 그 유물들이다.

기마 궁술대회-평양시 덕흥리 고분벽화(408년)

선배중에서 선행과 학문과 기술이 가장 뛰어난 자를 뽑아서 스승으로 섬긴다. 일반 선배들은 머리를 깎고 조백(帛)을 허리에 두르고 그 스승은 조백으로 옷을 지어 입으며 스승 중의 제일 우두머리는 '신크마리'-두대형 혹은 태대형-이라 일컫고, 그 다음은 '마리'-대형-이라 일컫고, 맨 아래는 소형이라 일컬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신크마리'가 모든 '선배'들을 모아 스스로 한 단체를 조직하여 싸움터에 나아가서 싸움에 이기지 못하면 싸우다가 죽기를 작정하여 죽어서 돌아오는 사람은 인민들이 이를 개선하는 사람과 같이 영광스런 일로 보고, 패하여 물러나오면 이를 업신여기므로 '선배'들이 전장에서 가장 용감하였다.
당시 고구려의 여러 가지 지위는 거의 골품(명문)으로 얻어 미천한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지는 못하였지만 오직 '선배'의 단체는 귀천이 없이 학문과 기술로 자기의 지위를 획득하므로, 이 가운데서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왔다. 해상잡록(海上雜錄)에서도 '명립답부(明臨答夫), 연개소문( 淵蓋蘇文)은 조의선인(衣仙人) 출신이다.' 라고 하였고 또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男生)이 '총명하여 9세에 선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하였으니 그 사실로도 선인(先人)이 단순한 관직명이 아니고 무사단 '선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 함경북도 재가화상(在家和尙)이라는 것이 곧 고구려의 선배의 유종(遺種)이니 고려도경에 "재가화상은 화상(和尙:중)이 아니라 형(刑:형벌)을 받고 난 사람으로 중과 같이 머리를 깎았으므로 화상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실제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형벌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 것은 서긍(徐兢)이 다만 지나(支那 china:중국) 한대(漢代)의 죄인을 머리를 깎고 노(奴:노비)라 일컫는 글로 인하여 드디어 재가화상을 형벌 받은 사람이라 억지 판단을 한 것이다.
대개 고구려가 망한 뒤에 선배의 남은 무리들이 오히려 구 유풍(遺風)을 유지하여 마을에 숨어서 그 의무를 수행하여 왔는데 선배란 명칭은 유교도(儒敎徒 -글읽는 사대부를 선비라함)들에게 빼앗기고 그 머리를 깎은 까닭으로 재가화상이라는 가짜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이고 후손이 가난해서 학문을 배우지 못하여 조상의 옛 일을 갈수록 잊어 자기네의 내력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송도(고려수도 개경)의 수박(手搏)이 곧 선배 경기의 하나이니, 수박이 지나(支那)에 들어가서 권법(拳法)이 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유도(柔道)가 되고 조선에서는 이조에서 무풍(武風)을 천히 여긴 이래로 그 자취가 거의 전멸하였다.
수박(手搏)은 손바닥을 서로 마주치면서 하던 것에서 이름이 붙었으며 주로 고구려 땅인 북쪽지방에서 성행하였으며 왜정(倭政)때까지도 전수(傳受)되어왔다. 숙달되면 손이 팔랑 팔랑 보이지 않게 나가며 고수(高手)들은 일격에 치명상을 입히거나 죽게 까지 할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경지가 높아지면 비신법(飛身法)까지 올라간다. 처음에는 방안에 가만히 앉아 서서히 천정까지 올라가서 다시 사뿐히 내려앉는 연습을 하는데 익숙해지기까지 선생이 옆에서 지키고 지도해야지 그렇지않으면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 천장이나 벽,방바닥등에 머리를 들이박아 부상을 입는다고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되면 밖에나가 벼랑으로 날아 오르거나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다니는 연습을 하는데 그 때도 선생이 주의깊게 지도를 하지않으면 벼랑에 부딪히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 전통검법에 비신검법(飛身劍法)이 있는데 여기서 발달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남이(南怡)장군이나 김덕령(金德齡)장군이 날아다니며 칼쓰기를 했다고 한다. 무릎 높이로 날으는 것을 소고직당(小高直當) 머리위로 날으는 것을 대고직당(大高直當)이라 한다.
또한 고구려인들은 걸음걸이가 달음질치듯 빨랐다고 하는데 축지법을 쓰지 않았나 생각된다.

수박희

고구려의 선배제도는 조선의 선비정신으로 이어져 나라에 국난이 일어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서 외적을 물리쳤다.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 권율, 김시민, 곽재우, 김덕령 등 여러 장군들과 그 외 크고 작은 의병들을 이끌고 왜병을 공격했던 의병장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평소에 학문과 무예를 부지런히 갈고 닦아 국난에 대비했던 것이다. 흔히 권율 장군은 문과에 급제했으니 문관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항상 병법을 연구하고 나라안의 여러 지역들을 두루 유람하며 지형과 지세를 면밀히 살폈으며 검술에도 아주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행주대첩에 앞서 1592년 남원에서 1천여 명의 전라도 의병(義兵)들을 모집하여 금산에서 완주로 넘어가는 배고개(梨峙)에서 금산에서 전주로 들어오려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의 왜군 정예부대를 맞아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1진을 용감하게 지휘하던 동복현감(同福縣監) 황진(黃進)이 격전 중에 적탄을 맞아 중상을 입고 쓰러져 사기가 떨어지고 1진의 전열이 무너지자 2진에 있던 권율장군이 벽력같이 호령하며 도망치던 군사들을 베면서 독전(督戰)을 계속하여 왜군을 크게 격파하고 호남을 보존하였다. 권율장군의 군영(軍營)은 군기(軍紀)가 매우 엄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투 중에는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군사들을 독려하는 한편, 제대로 싸우지 않는 비겁한 병사들은 벙거지에 칼끝으로 표시해 두었다가 전투가 소강상태에 이르면 즉시 끌어내 즉결처형을 했다 한다.
선비정신은 일제하의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말타기와 사격을 잘 했는데 뛰어난 명사수였다고 한다. 청산리대첩으로 유명한 김좌진장군은 어려서부터 병법서를 즐겨 읽고 말타기와 칼쓰기를 부지런히 익혔는데 나라가 망해가자 15세에 종들을 해방시키고 재산을 모두 나누어 준 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만주에서 그를 만나본 독립운동가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동서양의 군사학에 통달해 있었다고 한다. 청산리 야간전투 때 독립군이 산정에 먼저 올라가서 양쪽으로 포위해 들어오는 일본군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한 후 일본군이 거의 올라왔을 때 살짝 빠져나감으로써 일본군들끼리 싸워 많은 사상자가 났는데 이를 두고 이범석 장군은 회고록에서 김좌진 장군의 뛰어난 전술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고구려는 망했지만 그들의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나라를 구했다. 이제는 이 정신을 계승하여 국가를 발전시키고 강대국들을 누르고 또한 잃었던 옛 땅도 되찾아 다시는 중국인들의 망언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더 나아가 단군 할아버지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을 구현시켜 모든 나라들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선상고사- 신채호
상식 밖의 한국사- 남경태, 새길(1995)
한국생활사박물관- 사계절출판사(2002)
이 내용은 2004년 초에 www.nanban.org에 올렸던 내용이다. 자료들이 확보되는 대로 내용을 보충할 것이다.

[출처] 고구려의 선배제도-조의선인(皁衣仙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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