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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소, 미친 돈 (Mad Money), 미친 한국> 사회, 경제 개혁

 
(간단요약) “정부나 신문방송이 하는 말에 속아넘어가지 말라!”적자생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교육”으로 가르쳐야 한다. 교육으로서 개인주의를 완화시킬 수가 있다.

“공유된 목적감을 가지지 않고서는 한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자기실현 추구는 성공할 수 없다. 자기자신만을 위해서 최고를 달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런 삶은 너무 스트레스받는 것이고 너무 외롭고 말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보다 더 큰 비상구가 필요하고 또 중압감에서 벗어날 새로운 사고를 필요로 한다.
===>우선, 유럽선진국식 사회체제로 전환하도록 사회개혁을 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다시 요약 정리) 현재 한국의 미디어들이란 극소수 부패기득권층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치들에 불과하며,
한국의 미디어들은 진실왜곡적 보도를 통하여 무수한 무지랭이 대중들을 속여서 기득권층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여론형성이 되도록 유도할 뿐이다.
현재 한국사회처럼, 온갖 부당, 불법, 편법이 판치는 구조하에서의 약육강식적 무한경쟁 체제는 다만....
경쟁에서 낙오된 95%의 무수한 무지랭이 노예들을 양산할 뿐이다.
따라서 대중들은 사회개혁을 통하여 그러한 부당 경쟁 구조틀 자체를 깨뜨리는 것만이,
95%의 경쟁낙오 대중들도 어느 정도의 행복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약육강식적 무한경쟁 구도....그러나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자사고, 특목고 제도 등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사실은 기득권층 자녀들이 출발선부터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 무한경쟁 구도일 뿐이다.
95% 이상의 무지랭이 서민들의 자녀들은 출발선에서부터 불리한 여건을 가지고,
자신이 왜 그런 불리한 무한경쟁 구도에 빠져야만 하는지도 모르고 "경쟁지옥"에 빠져 허우적 거리며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나의 결론: 유럽식 사회보장제도 강화가 바로 그런 부당한 경쟁구도를 깨뜨려 줄 것이다. 따라서 의식있는 국민들이라면, 그런 방향으로 가는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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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646327



 
  • 경제토론 <미친 소, 미친 돈 (Mad Money), 미친 한국> [91]
  • Kramer Kramer님프로필이미지   번호 646327 | 2009.05.12 IP 124.179.***.216    조회 17470 주소복사



사랑하고 존경하는 내 영혼의 친구, 마음의 벗, SOULMATE들에게

외딴 섬에서 ㅋㅋㅋ 보내는 Kramer의 편지를 읽어주세요

 

 내가 꾸준히 하는 말은 바로 이거다:  제발 “정부나 신문방송이 하는 말에 속아넘어가지 말라!”
학교에서 잘못 배운 거짓 지식과 지금껏 얽매엔 매트릭스에서 깨어나라!
그렇지 않는한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거다.

 

<미친 소, 미친 돈 (Mad Money), 미친 한국>.
지금 한국을 볼 때 이게  나의 결론이다.

 

세상의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은 새가 알에서 깨어나오듯 다른 창문에서 다른 시각으로 볼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는 식민지지배를 받으며 남의 나라/ 남의 종으로 우리의 꿈꾸는 인생을 종칠 수가 없다!!!
드넓은 대륙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선구자적 삶이 너무나 억울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한다.  Don't be fooled by the media (수구꼴통언론과 정부야합언론).  + 야바위사기꾼(개돼지보다못한넘들).

 

현재 경제학과 모든 정치사회문화 모든 방면에 걸쳐 뿌리깊게 박힌 사고는 찰즈 다윈의 “적자생존”과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즉 자유방임)이다. 이것에 의해서 개인이 살아남아 행복하려면 철저한 개인이기주의가 되어야 하고 항상 1등을 하여야 하며, 개인 의사의 맡겨 놓으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학의 한 흐름은 전통적 경제학 (-막스 베버의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 개념이 출현한지 이제 100년이 지났다)의 기본적인 가정을 반박하는데 있다.  단순 GDP 수치개념은 국민복지 척도를 재는 수단으로서 부족하다. 현재의 우리사고는 행복을 통제할 권리는 신들의 쥐고 있는 영역으로서 인간들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없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현실에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가 당연히 있고 이것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군대 훈련소에서의  뺑뺑이 돌리기를 기억해 보자.  뺑뺑이 돌릴 때 마다 언제나 1등과 꼴찌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머지 한 사람 남을 때까지 1등과 꼴찌는 뺑뺑이 달리기 할 때 마다 생겨난다.  우리 사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결국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이다.  사장은 한 명만 하게 되어 있다.  2사람 모두 정상에 함께 서 있을 수 없다.  원래부터 있는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것이 승진이라고 보면 성공한 사람은 낙오자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조직이라도 승진자와 누락자는 나타나게 된다.  하바드대에서도 1등과 꼴찌는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군대 뺑뺑이 돌리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등 하는 사람은 자기 혼자 잘 나서 1등을 한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게임을 해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런 현실적 차이를 인정한다면 더 많이 버는 사람에게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함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인간 사회에서 차이는 이렇게 세금대책으로 해소할 수 있다. 이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파스칼의 정리와 같다. 그러므로 잘 산 사람이 세금 많이 내는 것을 불평한다면 그것은 사회구조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세금 이외의 가장 중요한 다음 대책은 학교교육이다. 
학교 교육으로서 "1등만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삶의 기술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경제학적 기초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아담 스미스의 "공교육" 강조 부분에 대한 그의 "국부론"의 한  부분을 번역해서 다시 추가하겠다). 


행복에 대한 개념


우리 헌법은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독립선언서나 미국 헌법도 마찬가지로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행복”이란 의미를 인식하고 있을까?   헌법으로도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막상 행복이 무엇인지는 법률로도 개념을 세워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양에서 행복이란 의미는 어원적으로  종교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복(福)이란 글자는  원래 그 어원을 보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산 짐승을 제물로 바치던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19세기에 마르크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으로 규정한 이래 런던대 경제학 교수인 라야드 (Layard)가 파악하는 것처럼 20세기에 들어서 가장 큰 변화는 '종교적 믿음의 쇄락' 이라는 것을 볼 때 종교적 믿음이 인간의 행복을 담보한다고 볼 수 없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찾기 위해서  맥마흔의  “행복의 역사” 를 찾아 본다.  맥마흔은  이 책에서 인류 역사를 통해서 행복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역사학과 교수인 맥마흔은  인류가 언제부터 행복을 생각해 온 것인지 행복은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인지에 물음을 탐구하지만  그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은 끝내 정의하지 못하고 책을 끝내고 있다.

 

프로이트는 “행복이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것이고, 전장에서 잡힌 포로가 사형에 처하는 광경을 보고 큰 공포에 떨더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정말로 어떻게 느낄지는 우리가 알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우리는 남의 기쁨이나 아픔을 알 수 없다고 보기에 프로이드는 행복을 연구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칸트도 “행복의 개념은 아주 불명확한 것이어서 모두가 행복을 얻고자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도 명확하고 일관되게 말할 수 없다”고 보왔음을 알 때 행복을 탐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또 헤겔도 “행복에 대한 관점에 역사를 생각해 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역사라는 것은 행복이 자라나는 땅이 아니다.  역사에서 행복에 대한 기록은 빈공간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 것을 볼 때 실체를 가지고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경제학에서 행복을 논한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고 보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의견이라고 본다.  

그러나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모두는 헌법이 규정하듯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과 우리 모두는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행복”이란 것에 대한 경제학적 탐구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행복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것이기에 객관적인 측면으로 이해해야 하고 또 행복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경제학의 한 흐름을 살펴보도록 한다.

 

(**"행복의 역사" 대린 맥마흔 책  원서는 500여페이지가 넘는 큰 책이어서 단숨에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한국 번역본이 나와 있다는 것을 검색으로 알았다. 그리고 Richard Layard, Happiness:Lessons from a New Science도 한글 번역본이 나와 있는 것으로 기억함.) 

 

행복의 조건

Layard의 주장을 헤드로 대강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행복은 우리의 모든 경험을 반영하는 객관적인 것이다. 
• 우리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게끔 태어났다.
• 가장 좋은 사회는 모두가 가장 행복한 사회이다.
• 인간사회는 우리들 모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하기 전에는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의 소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서로 함께 하고 싶어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서로 신뢰받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현상유지 경향이 무척 강하다.  10,000원 버는 것 보다10000원 잃는 것에 더 마음 아파한다.


사람은 사회적 위치에 무척 민감하다.  인간 사회는 다람쥐 쳇바퀴 돌기같다.  군대 훈련소에서 선착순 집합에서와 같이 선착순 집합을 할 때마다 언제나 승리자(1등)와 패배자(꼴찌)가 나오게 마련이다.  제로-섬 게임과 같다.  한 사람이 올라가면 다른 한 사람은 내려와야 한다.  뒤처진 패배자는 세금정책으로 배려할 수 밖에 없다.  또 적자생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교육”으로 가르쳐야 한다. 교육으로서 개인주의를 완화시킬 수가 있다.  이것은 아담 스미스가 공교육을 강조한 것에 맥을 닿는다.


인간은 적응성이 높다.
소득은 중독성이 강하다.  돈은 중독성이 강하다. 소득이 오르면 소비도 함께 오른다,  담배피는 사람에게 담배세를 거두듯이 소득 많은 사람에겐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다.     돈 많이 벌려고 하는 사람은 그만큼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한국에서 흔히 돈은 많이 벌려고 하면서 세금은 더 적게 내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잉여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은 줄여든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행복은 줄어 든다.  소득이 전부가 아니다.
국민소득이 $20,000 넘는 나라에서는 추가소득이 늘어난다고 해서 행복지수가 함께 따라 높아 지지 않는다.
행복은 외부적 조건 뿐만 아니라 내적 마음에 달려 있다. 
맥마흔이 “행복은 때론 고통스러운 희생을 감내하고 얻게 되는 값진 대가가 아닐까?” 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처럼  인간은 외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가 있다.  아래 “대공황의 진실”을 참조하라.
정부정책은 인간의 행복을 증가하고 불행을 제거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라야드의 “행복”의 결론 부분을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공유된 목적감을 가지지 않고서는 한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자기실현 추구는 성공할 수 없다.  자기자신만을 위해서 최고를 달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런 삶은 너무 스트레스받는 것이고 너무 외롭고 말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보다 더 큰 비상구가 필요하고 또 중압감에서  벗어날 새로운 사고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공동선의 개념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모두를 다 같이 챙기는 다수가 최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높은 이상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자신을 더 잘 알 수 있으므로 우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러한 이상은 우리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다. 

 

행복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부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생각해서는 아니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것은 암울한 생각이고 우리가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   자신보다 더 큰 목표없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에대한 지식과 자신을 인정하는 것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당연하다.  우울해지면 세상지혜를 기억하라. 바람을 피우기 보다 자신의 내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보다 낫다.

 

따라서 행복은 외부와 내부로 부터 온다.  이 두가지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순례자는 세상의 악에 대해서 싸우는 것이며 내적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다.  비밀무기는 자신과 타인을 향한 애정이고 바로 이러한 “최고행복 원칙”은 바로 그러한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가 우리 미래 문화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석기 시대 이래로 인류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  서양선진국은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본다.   그러나 석기시대에서 유용했던 근심걱정은 오늘날 불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사회가 동적 효율성 추구보다 행복 추구에 더 전념해야 한다.  인생은 살아가는 과정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절대적인 물질적 부족함은 이제 해소되었으며 무엇이 발전을 가져오는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회 진전은 가능하다고 나는 진정으로 믿는다.

 

공리주의자 벤담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책을 끝맺을 수가 없다. 벤담이 죽기 바로 전 자기친구의 어린 딸에게 보낸 생일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행복할 수 있는 모든 행복함을 추구하라.  없앨 수 있는 모든 불행을 제거하라.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무엇인가를, 또는 아픔을 줄이는 무엇인가를 날마다 행하라.    다른 사람의 가슴에 즐거움을 가득히 심는다면 그 열매는 바로 자신의 가슴 속에서 거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슬픔을 없애준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적 영혼의 안식처에서 큰 평화와 기쁨을 받게 될 것이다.”


to be contd.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Kramer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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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밀감 2009/05/12 21:31 #

    .... 이곳은 뭐하는 블로그인지...
    아고라 이글루스 지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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