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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적 맥락 인식 노무현 타살 의혹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적 맥락 인식


아래 첨부한 오연호 기자의 글 일부를 읽어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노대통령은 통찰력 있고, 참으로 명쾌한 인식능력을 가진 분이었음에 틀림없다.

특히나 무엇보다도 대통령 노무현으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맥락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탁월한 인식능력의 소유자 노대통령이...자신의 재임기간 동안에
대북송금특검, 한미 FTA 추진, 대연정 제안, 로스쿨제도 도입, 부동산 정책 실패 등등
왜 그렇게 많은 실정들을 했던 것일까???

노대통령은 바로 기존 지지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반하는 그런 실정들로 인하여,
임기초부터 이미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의 대부분의 지지를 상실하여
임기내내 낮은 지지율로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노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시절 지지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돌출적 상황이 두번 있었는데

한번은 뜬금없이 김영삼을 찾아가 옛날에 김영삼에게 선물받은 시계를
아직도 차고 있노라고 아부했던 "영삼시계" 사건이었고

또다른 돌출사건은.....정몽준과의 연대로 대선 바로 전날 저녁
마지막 공동 선거유세를 하던 중....갑자기
노대통령 다음의 차기는 정동영이나 추미애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발언을 했던가...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정몽준으로서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연대철회를 선언해 버린 것이고, 그래서 노무현 후보 등이
정몽준의 집앞에까지 찾아가 사죄를 하며 애걸하였지만
정몽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리지나 않을지 걱정하며
지지자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지지자들은 인터넷을 활용하여 밤새 표지키기 운동을
열렬히 펼치게 되었던 것이고, 그 결과 극적으로 노대통령이 당선되었던 것이다.

노대통령이 참 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가끔 그런 돌출적 상황을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나와 같은 지지자들은 사실
노대통령에 대한 신뢰성 측면에서 미래가 좀 불안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김대중 정책 계승자라고 떠들던 노대통령이
집권하자 마자 맨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대북송금특검이었고
그래서 지지자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 격렬하게 반발하며, 그래도 반신반의하며
일말의 기대를 접지는 못하였다.

다음 정책들은....지지자들의 기대에 맞는 정책들이겠거니 믿었다.
그러나....나오는 정책들마다....지지자들을 황당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황우석 사건에 대한 이상한 방치, 한미 FTA 적극 자진추진, 로스쿨제도 도입, 부동산 정책 실패, 대연정 등등등...

결국.....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은....그로부터 점점 멀어져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노대통령의 인간적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의 진정성은 믿는다.
즉, 자신은 그런 것들이 국민들에게 이익이라고 확신을 하고 그렇게 밀어부쳤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대다수 지지자들의 판단으로는 그런 것들은 국익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만일...현재의 이명박씨도....그와 같이....자신이 추진하는 정책들이
국민, 국가의 이익에 맞다고 확신하며 밀어부치고 있다면???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그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래도 무조건 지지해야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그런 맹목적 지지는 넌센스다.

결국.....내가 보기에는.....노대통령의 진정성 자체는 신뢰할만 하지만
불운하게도....노대통령은.....주변 참모나 장관들이
너무 무능해서 나쁘거나 또는 대통령을 감언이설로 속여
자기 이익만 취하려던 사악한 인간들이 아니었을까...싶다.

그래도 결국 책임은 노대통령 몫으로 돌아간다.
왜냐면 주변의 그런 간신배나 무능한 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고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대통령에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한편으로 노대통령은 매우 탁월한 역사적 안목과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들의 본질에 대한 판단능력은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싶다.

설령 노대통령이 그런 점에서 좀 부족했다고 할지라도
주변 측근들이 그가 더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좋은 고언을 해줄 수 있는 자들이 없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불운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된다.

유감스럽게도.....노대통령 주변엔 그저 아부만 잘하는 놈들이
바글거렸던 것 같다.

그런데....요즘 "무뇌노빠"라고 불리는 무리들이
바로 그 "아부꾼"들을 노대통령의 후계자랍시고 밀고 있는 것 같다.
ㅉㅉ

나로서는....그런 기회주의적인 아부꾼놈들을 결단코 지지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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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노대통령이.....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는 관점에서 비록 실정들이 많았다고 해서
결코 무능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훨씬 더 잘할 수 있었는데....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아쉽다는 말이다.

그리고....노대통령이 아무리 실정들이 많다고 해서....
딴나라당 출신 대통령들과는.....결코 비교될 수 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탁월한 분임에 틀림이 없다.

딴나라당 출신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모두
반국익적, 반서민적, 숭미사대적 매국노 같은 자들이라
언급 자체도 하고 싶지 않다.

끝으로.....노대통령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그리고....노대통령님에 대한 무수한 '타살의혹'들은
결코 덮여져서는 안된다.
앞으로 언젠가라도 그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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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무현 역사 이어달리기, 질투는 없다
"DJ는 그 시기에 가장 탁월했던 정치인" - 오마이뉴스


(일부만 펌)

보수언론으로부터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자주 들었던 노무현에게
바로 전임이었던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분은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완전한 정치인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분을 평가할 때 그 점을 우리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칭찬을 하든, 비판을 하든 그 기본적인 전제를 먼저 우리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와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창조적인 것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머리를 빌려서 하는 지도자와는 다르다고 했다.

 

"아까 곳곳에 그분의 발자취가 남아있다고 내가 말했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스스로 비전, 전략, 정책에서 역시 탁월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강대강 주변의 학자들이 적어준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한 수준을 뛰어넘는 거죠. 머리를 빌려서 하는 지도자와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철학과 가치, 전략, 정책 모두 탁월한 정치인입니다."

 

노 대통령은 그 청와대 인터뷰보다 3개월 전에 있었던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해외 다니면서, 외교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인데요, 한국이 국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등장한 때는 국민의 정부부터입니다. 지도자의 정통성이 국가위신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많이 실감하고 다닙니다. 제가 국민의 정부의 정책을 다시 한번 평가해 보면서 과연 지도자의 자리는 머리를 빌려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해박한 지식, 지식과 정보에 대한 탐욕, 깊이 있는 사고력, 잘 정리된 가치와 철학이 꼭 필요한 자리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DJ는 천재"라는 표현까지 썼다. 2006년 2월 26일 청와대 출입기자와 취임 3주년 기념 오찬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천재성 탐구"를 권했다.

 

"내가 그동안 부품소재산업에 대해 많이 떠들었는데 알고 보니 지난 2001년에 DJ가 법까지 다 만들어놓았더군요. 손댈 만한 것은 대개 한 번씩 손질을 해두었더군요. DJ 시절 일어났던 시스템의 정리나 정책 시스템의 과정들을 한번 연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다른 DJ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의 천재 DJ가 아니라 정책에 있어서도 천재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양반은 총체적인 능력, 역량이 천재급 정치인입니다."

 

김대중 지지자들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그날 오찬에서 웃으면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당 시절) 당내에서 DJ는 '교사(敎師) 정치인'이었습니다. 대정부 질문을 앞둔 의원들을 다 모아놓고 강연을 했어요. 내용은 물론 질문 기법까지 세세하게 가르쳤습니다."

 

"보통 그분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분에 대한 감정을 먼저 앞세웁니다. 옛날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만들어 놓은, 특히 <조선일보>가 만들어 놓은 그런 선입견을 먼저 내세웁니다. 그래서 '빨갱이, 거짓말쟁이 아니냐' 그러는 거죠. 우리 고향에서는 그분을 빨갱이, 거짓말쟁이, 전라도, 이 세 가지를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그렇게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큰 틀에서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일부 386세대가 그분을 볼 때도 반칙이 많지 않았느냐, 정치적인 술수라든지, 권위주의라든지 그런 것들이 있지 않았느냐고 볼 수도 있지만 한두 가지 상황들, 몇몇 실책들만을 가지고 지도자를 평가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정하게 평가를 해야지요."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시대의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분도 사람입니다.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열성적 지지자도 많지만) 권위주의적이라고, 권모술수를 부린다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분이 (정계은퇴 선언 번복 등의 경우처럼) 그렇게 욕먹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정권교체도 없었고 대통령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섭섭한 대목은 없었을까? 그는 1987년 양김씨(김대중-김영삼)의 분열, 후보단일화 실패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하나, 지금도 동의할 수 없는 것은 1987년 대선에서 YS하고 후보단일화에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집권당인 노태우 후보에) 이길 방법이 없으면 그랬어야 하는 것인데, 타협했어야 하는 것인데…." 

 

그는 덧붙였다.

 

"그때 생긴 일 때문에 (영호남의 민주화세력이) 분열됐고, 나는 그 분열의 상처를 한 번 꿰매 보려고 내 나름대로 정치에서 필사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공 못하고 있습니다. 나한테는 그분의 공(功)과(過) 모두 거울일 뿐입니다."


"국가 운영의 전략적 관점이랄까, 국가 운영의 시스템에 대해 상당히 전략적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 국민의 정부 때부터입니다. 그 전 김영삼 정부 때는, 물론 제도 개혁도 일부 있었지만, 주로 단발적 개혁이 많았고 정부의 시스템 자체를 놓고 개혁을 한 것은 없었어요.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의, 뭐랄까, 사고의 깊이라고 할까요? 그 사고력의 수준만큼 국가 운영 시스템이 개혁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정부에 와서는 내가 또 그 쪽에 취미가 있으니까 정부 혁신을 미시적인 부분까지 5년 내내 진행했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이어달리기 게임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했다.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도 그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국민의 정부 덕분에 참여정부가 열매를 따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책의 성과가 성장률로 나타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먹고 살고 있는 반도체, 휴대폰, 그밖에 여러 가지 수준 높은 기술들은 우리 정부에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 수출 3000억 불을 초과 달성한 것도 다 이전 정부에서 준비하고 성장시켜온 것들을, 저희 정부에서 열매를 따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 때문에 진보의 정책이 채택될 수 있었고 라면 사재기가 없는 사회가 됐다고 했다.

 

"국가 발전전략의 전환은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됐습니다.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고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설치 등 많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에서 복지정책의 토대가 구축됐습니다. 생산적 복지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바로 국민의 정부가 진보의 정책을 채택한 것이고요, 그 국민의 정부가 시장경제를 강조함으로써 시장경제와 진보정책의 조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평화주의 전략, 포용정책을 통해 안정과 활력을 조화시켰지요. 그래서 라면 사재기, 방독면 사재기와 같은 얘기는 국민의 정부 이래 지금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노 대통령은 아예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똑같다"고까지 했다.

 

"참여정부는 진보를 지향하는 정부입니다. 참여정부는 역시 평화를 지향하는 정부입니다. 국민의 정부하고 똑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농담을 해서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좀 다른 게 있어야 하는데…."


김대중은 정권교체, 평화통일의 염원을 안고, 노무현은 특권 없는 사회, 지역주의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달렸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한 길 위에서였다. 두 사람은 역사와 대결에서 한 몸이었다.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바보 노무현의 죽음을 접하고 "내 몸의 반이 무너진 심정"이라고 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출처 : 노무현 역사 이어달리기, 질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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